사기강을 아시나요?

금수강산이었던 사대강은 시커멓게 음흉한 사기강이 되어버렸다.

by 김성수


호남, 호서는 지역 이름으로 湖의 남쪽, 서쪽이란 뜻일 것이다. 호남은 전라도, 호서는 충남 서부를 말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되는 湖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중국의 경우 湖北과 湖南을 가르는 동정호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비하여 우리는 그와 같은 호수가 없다. 그래서 궁리 끝에 김제에 있는 벽골제를 기준으로 삼아 그 아래를 호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자니 저수지가 너무 작고, 그 북으로도 역시 호남지역이라 이치에 맞지 않다. 湖西는 제천에 있는 의림지를 기준삼아 그 서쪽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의림지의 서쪽 충북을 호서라고 하지는 않으니 그 또한 맞는 말이 아니다. 호남은 벽골제가 기준이 되고, 호서는 의림지가 따로 기준이 된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그런 억측보다는 금강을 기준 삼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삼국사기>에 ‘백제부흥군이 江西에서 일어났다’라고 했는데 이른바 江西가 지금의 湖西지역과 일치한다. 또 그 세력이 江東까지 세력을 뻗쳤다고 했는데, 그것은 공주를 기점으로 한 금강의 동쪽을 말한다. 江과 湖는 상통하며, 그래서 錦江을 湖江이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 熊州웅주였던 지금 세종시에는 錦湖금호라는 지명도 있다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호서는‘공주 금강 서쪽지역’이라고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중국의 동정호의 이름을 기준삼아 생각하는 이러한 발상들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가하게 호자타령이나 하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물의 비극을 한탄하자는 것이다. 물에 湖가 접미사로 쓰이면 호수의 이름이 된다. 시화호, 삽교호, 천수만호, 새만금호 등은 국력을 기울여 만든 대표적인 인공호수들이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자연호수가 드물어서 대부분이 인공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부작용이 심각하다. 그 중에 죽었던 시화호는 제방을 철거하여 원래의 생태를 되찾았으니 바다를 막은 인공호 조성이 실패임이 분명해졌고, 그 해결방안도 도출된 셈인데 이 소중한 교훈을 무시하고 시화호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역시 바다를 막은 삽교호도 안 하니만 못하게 된 지 오래이다. 천수만호도 황금어장과 생태 보고를 무참히 짓밟아 놓고, 겨우 천덕꾸러기 쌀농사나 짓고 있으니 황금을 쌀로 바꾼 바보짓을 한 셈이다. 세계 3대 갯벌인 새만금을 무참하게 망가트려놓고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 고민 중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간척의 성공사례로 꼽혔던 네덜란드마저 할 수 있다면 바다로 돌려보낼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행을 위정자들이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언론들은 정권의 눈치나 보면서 이해타산이나 하고 있고, 양심 있는 전문가들의 비판은 들어주는 사람이 적다. 새만금은 분명 안 하니만 못한 일이 되었지만 지금 새만금의 실패를 거론하는 말을 듣기 어려우니 이 땅의 양심이 죽은 것이다. 오랜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 大役事대역사였고, 그때마다 그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거세었지만 환경파괴의 만행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였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더니 필경 4대강사업에까지 이어져 온 국토를 거대한 오염지대로 만들었다. 당대의 위정자들의 잘못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지식인,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사실을 왜곡하여 사업을 합리화하여 정권에 아부, 곡학아세한 자들과 언론매체들의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나마 양심 있는 학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명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한반도 대운하’라는 엄청난 사기극을 벌였을 것이다. 길쭉한 반도의 삼면이 바다이고, 백두대간이 국토의 심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산악지대에 운하를 팔 생각을 했다면 성한 정신이 아니다. 이렇게 무모하고 한심한 역사를 반복하는 짓을 막지 못한 국민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약점은 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반성하지 못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고, 일제시대의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이 없었다. 친일파 청산이 없었다는 것은 민족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정의가 나라를 팔아먹은 不義에 압살당한 역사를 말하는 것이며, 이 땅에 정의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비극적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시화호, 삽교호, 천수만호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면 새만금호, 4대강사업 같은 만행은 저질러졌을 리가 없다.

강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흐르지 못하게 하면 강은 썩는다. 정말 수자원이 부족하다면 건기에는 물을 저장해 놓더라도 최소한 우기에는 터놓아야 강과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물의 본성이‘흐르는 것’이라는 사실은 水의 글자가 흘러가는 물의 모양을 그린 상형자라는 데에서도 분명하다. 氵부에 속하는 글자는 모두 흐르는 물이다. 그런데 4대강사업은 모든 강의 물길을 틀어막아 거대한 댐으로 만든 것으로도 부족하여 여러 번 막고, 또 막아놓았다. 강물의 숨통을 조이고, 또 조른 것이다. 그러니 하류로 갈수록 강물은 빈사상태에 가깝다. 물론 저수지도 필요하고,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江과 저수지를 구분해야 한다. 江은 흘러가야 하고, 저수지는 물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구태여 전문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흘러야 할 4대강을 온통 거대한 저수지로 만들었다. 거기에다 발전소까지 만들었으니 어린애들 소꿉놀이라면 몰라도 국책사업으로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국력을 기울여 벌인 사대강 사업이라는 것이 이런 수준인 것이다.

강물의 생명인 흐름이란 하류로 내려갈수록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의 생명의 요처는 신체 위 부분인 목에 있지만, 강물의 생명의 요처는 아래 부분인 하류에 몰려 있다. 그러므로 강의 하류, 하구를 막는 것은 강의 목줄을 조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4대강은 빈사상태에 빠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녹조가 퍼렇다 못해 더께를 입고, 강바닥은 썩어나고, 허옇게 떠오르는 물고기를 보고서도 남의 일처럼 넘기는 우리의 무감각이 더 무섭다. 저수지를 최대한 강의 상류로 올라가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저수지인 소양호, 대청호, 충주호 등은 모두 강의 상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4대강 공사는 이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마저 어긴 것이다. 상류로 올라가서는 안 될 것이 따로 있으니 그것은 축사와 공장이다. 이들은 강의 상류에서 환경오염물질을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오염물질은 육류수입에 드는 외화보다 그 손해가 더 크다. 설령 그 시설이 필요하더라도 최대한 하류지역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댐은 아래로 내려오고, 축사는 위로 올라가고 있으니 이런 청개구리 짓으로 우리의 자연환경과 미래를 어떻게 지켜낼지 난감하다.

4대강사업은 국력을 기울인 단군 이래의 대역사였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반성, 평가도 역사적이어야 한다. 그 대역사의 평가를 한답시고 환경파괴의 정도나 따지고, 홍수조절 능력의 효율성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우리의 의식수준이다. 기껏해야 강의 오염과 녹조의 심각성을 알리는 정도가 고작이다. 심지어는 사대강 사업으로 인한 피해액이 과장되었고, 반대자들의 말보다 많지 않다고 하는 자들도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피해액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그 막대한 예산을 다른 사업에 투자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따져보는 것이 올바른 반성이요, 평가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개발사업, 3D프린트사업, 로봇산업, 드론산업, BT산업, 우주산업, 4차산업, 5G 등 선진국들이 이룩한 것을 쫓아가기만 했어도 지금 우리의 위상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4대강사업은 민족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과 예산을 날려버린 역사적 실책이었다. 그것은 세계적 추세와는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미국이 백 년 전쯤 벌였던 뉴딜사업 수준의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토목사업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엄청난 착오로 헤매고 있는 동안에 주변의 경쟁자들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4대강사업에 대한 올바른 손익계산법이요, 역사에 대한 반성 평가이다. 그 사이에 중국은 G2로 성장하였고,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성공시켰다. 그들이 날고 뛸 때에 우리는 눈과 귀를 틀어막고 강바닥이나 뒤적여 자갈이나 파내고, 강물의 목이나 죄고 있었으니 시대착오자 동키호테가 아니었는가? 동키호테는 당시에도 바보였지만 대한민국의 이키호테와 한초판자들은 아직도 잘났다고 앙알대고 있으니 옛날 스페인의 세르반테스가 살아돌아와 새로 소설을 쓰자고 할 일이다. 자고로 나라가 망할 때는 토목공사가 기승을 부렸다. 사대강에서 글자 한 자만 바꾸면 그대로‘사기강’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이 명박이 자주 사기혐의로 거론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떤 역대 대통령도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참 특이한 인물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엄정한 역사의 교훈을 세워야 하는 것이 올바른 반성과 평가이다.

그러려면 우선 역사의 범죄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뻔뻔스럽게 활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한 반성과 평가이다. 그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불의가 횡행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과 같다. 요즈음 댓글사건이나 DAS, 原電비리 등에 쏠려 자원외교나 사기강사업이 뒷전에 밀려있는데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범죄이다. 그것만으로도 탄핵사유는 충분할 것이니 그는 운 좋은 대통령이었다. 박근혜는 현행범이었기 때문에 탄핵을 당하고 중형을 면하기 어렵지만 이명박의 수법에 비하면 순진한 구석이 있고, 죄질도 오히려 가볍다는 생각이다. 이명박은 국민을 속인 교활한 사기꾼이지만 박근혜는 최순실에게 사기를 당한 어리석고 불쌍한 대통령이었다. 다만 그 피해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역사를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이다’라고 했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새겨볼 일이다. 정치보복을 하고, 전직 대통령을 함부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려 후세에 교훈을 삼자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을 지낸 어른을 감옥에 가둘 수 있겠느냐는 동정은 인정이 아니라 왕정시대의 노예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관예우는 청산되어야 할 악습이다. 대통령의 잘못과 책임은 피해자가 국민과 국가이기 때문에 더 엄하게 가려야 한다. 그런 엄정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으정이뜨정이들이 함부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심판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까닭이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 과오에 동조한 것이고, 자신도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음흉한 생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능이건, 동조이건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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