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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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행세를 오랜만에 하려는데


쉽지 않다.


신길의 단점 중 하나다.


마땅히 만보를 즐길 만한 거리가 없다.


한강변에 산책로가 있긴 하지만, 거기를 걷는 것은 산책이지 '만보'라고는 할 순 없다.


기껏해야 영등포 타임스퀘어 정도가 전부인데,


왕복 30분이면 그만이다.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벤야민이나 보들레르 같은 오랜 이름들을 떠올려보면


만보객은 도심(자본)을 정처없이 떠도는 사람이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아케이드를 뒤적뒤적하는 것인데, 풀이하면 소비의 공간이자 생활의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일전에 대학로에 살 적에는


만보를 할 만한 공간이 동서남북 넘쳐났다.


집에서 나와 낡은 학교 정문을 거쳐 던킨 사거리를 지나 창경궁 또는 서울대병원을 경유해 종묘 옆길을 따라가면 종로 거리가 나온다.


종로 3가와 피카디리 극장을 지나 탑골공원을 건너면 인사동이 나온다. 종각과 광화문까지는 이제 머지 않다.


반대편으로도 길이 쫙 뻗어있다.


서울과학고 쪽으로 빠지면 성북동 또는 북악산이, 동경과 낭만의 이름 '혜화동 1번지' 골목을 지나다보면 혜화문을 거쳐 한성대입구역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성북천 산책로를 1시간 정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청계쳔이다.


오늘의 만보는 40분 만에 끝났다.


무리해서 반팔을 입었는데


은근히 땀이 났다.


진짜 여름이 왔나보다.




9시 15분 ~ 9시 25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