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영화는 '죽어야 사는 여자'였다. 여자의 몸 한복판에 매끈한 구멍이 뚫리고 목은 처참히 뒤틀렸다. 펑펑 울었고 아마 나는
일곱살이었다.
그때부터 영화는 단지 허구여야만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차라리 아직까지도 영화를 그저 허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자기 고백이다.
허구와 현실.
둘 사이에서 나의 길지 않은 영화 편력은 진동해왔다. 차라리 나의 삶이란 허구의 등 뒤에 거대한 몸뚱아리를 숨긴 채 현실의 자취들, 어두운 그림자들을 소스라치듯 외면하는
새벽 다섯 시의 신사동이었다 .
눈물이 나올라 치면 거무적적한 하늘을 올려보며 애써 환상의 공간 속에서 현실을 꿈꾸었다.
이내 부끄러운 눈물은 조약돌에 들러붙은 초라한 벚꽃잎들처럼 메말라 조각났다.
분노가 날라 치면, 이내 눈 앞에는 현실의 아우라를 삼키는 스크린의 맹목적 '되기becoming'를 백안시했다.
나는 한 번도 영화에서 공포를 느낀 적이 없다. 공포가 있었다면 언제나 영화의 환상적인 프레임 밖에서였다. 귀신, 괴물 등 허접한 장치들의 징후들에 앞서 나는 눈을 감고 그 짜릿한 공포를 보지 못했다. 다만 내가 (못) 본 것은 스크린을 벗어난 모든 공포였다. 환상 밖의 모든 흑백이었다.
이런 기묘한 설명들이 영화와 나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내게 영화는 항상 도전이자 동시에 장애물이다. 영화는 어떨 땐 나에게 강박적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는 숙제이기도 하다가, 어떨 때는 나를 흔드는 충격이기도 하다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가벼운 것이 된다.
동시에 끊임없이 나는 영화에서 멀어지려고 하고 있다.
사년여전에 썼던 cgv 대외활동 자소서ㅋㅋ
합불여부? 모름.
지원공고 다 올려놓고 마감일까지 아무말 없더니 갑자기 '사정상 올해부터 활동 중지'
나같으면 한 번 뽑아나 볼듯. 물론 지금이야 절대 저렇게 안 쓰지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