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공터에서'

5.5

by Benjamin Coffee

‘공터에서’는 그 외적 형식에서 드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한 심리적인 소설이다.


얼핏 ‘공터에서’는, 예컨대 성석제의 ‘투명인간’, 혹은 영화 ‘국제시장’과 같이 시대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소설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근대까지의 시간을 전반적으로 아우른다. 또한 출간 시기(2017년 2월)를 고려하더라도 ‘공터에서’는 어떤 강렬한 시대적 요구, 호명과 외따로 있을 수 없는 맥락에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공터에서’는 결코 시대극이 아니다.


우선 ‘공터에서’는 시대극으로서 그것이 마땅히 다루어야 마땅한 사건들을 외면, 또는 배제한다. 그나마 꼽자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군정, 베트남전쟁 등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대부분에서 시대적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에 그친다. 실제로 마장세와 마차세가 서로 맞물리기 시작하는 부분 이후에서 시대는, 일부 세태적인 묘사를 제외하고, 단지 숫자(몇년도)로 간단히 제시될 뿐이다.


또한 들쭉날쭉한 시간의 흐름 또한 ‘공터에서’를 시대극으로 고려할 수 없는 요소다. 일반적으로 시대극은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어나간다. ‘국제시장’이 그렇듯 시대극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물리적이며, 그 속에서 개인은 특수한 존재가 아니라 일반의 표상에 그친다. 덕수(황정민)은 특정 개인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의 ‘아버지’로서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존재다. 반면 ‘공터에서’의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이는 소설의 시간이 시대, 혹은 일련의 사건들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공터에서’의 시간은 심리적이며 개인적이다. ‘공터에서’는, 예컨대 대한제국, 식민지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시간 대신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오장춘, 김정팔, 김오팔, 이도순 등 여러 개인‘들’의 시간들이 중층적으로 엮여있다. 여기서 시간은 일종의 모순이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운동하는 마그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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