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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08. 2019

New York 1

13.8

2013년 8월 7일 미국에 갔다. 전역한 지 약 2주 만이다. 군대 동기였던 L과 함께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을 2주가량 돌았다.
당시 쓴 낙서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여행 중에 틈틈이 핸드폰으로 기록한 것들이다. 고단한 일정을 고려하면 정말이지 '필사'의 기록들이다. 모든 비용을 부모님이 대줬는데, "여행기를 남겨오겠다"는 구두계약을 했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일기는 끝난다. 계약 파기지만, 늘 그렇듯 위약금을 물진 않았다.



인천공항이다, 간만에.




공항열차라길래 뭔가 했더니 신호음도 게이트도 완전 지하철을 쏙 닮았다. 공항 내 지하철이라니. 그 규모가 실감 난다.





107번 게이트로 가는 길. 수많은 면세점을 지나니 이내 다 사라지고 덩그러니 게이트들만 남아있다. 면세점에서 100달러짜리 선글라스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 열 번쯤 생각하니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제자리에 뒀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현명한 선택.





여권과 항공권 두 장. 1이라 적힌 게 인천서 호놀룰루, 2라고 적힌 게 호놀룰루서 뉴욕으로.




아시아나(실제로는 대한항공이었다)를 등지고. 무사귀환을 빌며.





생각만큼 비행기가 좁다. 퀴퀴한 냄새도 난다. 기장인지 부기장인지를 스치듯 봤는데 완전 배불뚝이다. 혈압이 있어서 갑자기 동맥경화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거다. 더욱 큰 일은 그 배불뚝이가 기장이라도 된다면 부기장이 혼자 조종해야 된다는 것.

 



계속해서 일기 쓰는 L. 좁은 창 옆으로 보이는 아시이나. 저기는 꽤나 넓고 쾌적하겠지.





이미 다 먹어버렸다. 나는 언제나, 라고 하기엔 경험이 얼마 없지만, 기내식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나름 신선한 샐러드와 달달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드레싱. 메인 요리는 버섯소스에 곁들인 치킨 덮밥. 마지막 대망의 디저트 하와이 초콜릿. (언제였더라,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기억이 있는 브랜드다. 역시 맛있다.) 거기다 아일랜드 산 맥주 프리모까지.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약간의 취기가 돈다. 아직 일곱 시간 남았는데. 이제 책 읽다가 눈 좀 여야겠다.





호놀룰루 즈음. 구름 위.





조식? 간식? 한국 시간으론 새벽 여섯 시 근처니까 조식일 테고, 호놀룰루 시간으로는 낮시간이니 간식이겠군. 조식이란다. 맛은 그럭저럭. 뉴질랜드 버터가 나왔는데 밍밍했다. 바나나는 기내에서 다 먹어야 된단다. 농산물법이나 관세법에 걸린다나. 왜 이런 규제가 생겼을까.





L이 바다가  보인다, 고 한다. 사진 좀 찍어달라 했더니, 웬걸 사진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다. 원래 둘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서도. 하늘서 보니 더한 것 같다.





공항입구. 드디어 하와이 도착. 장장 8시간 45분 만이다. 시간은 과거가 돼버렸다. 낯선 과거로 온 기분. 날씨는 생각보다 선선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L은 이곳이 좋단다. 더워도 안 짜증 난다고. 특유의 향내가 공항 실내 전체에 퍼진다. 스튜어드에게서도 비슷한 향이 났다. 그때는 그저 개인적인 취향인 줄만 알았는데, 국가적인 취향인가 보다. 미국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텐데 걱정이다. 하와이까지 오는데도 몸이 찌뿌둥한데. 더 긴 시간을 가야 하다니. 어서 가자,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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