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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15. 2019

New York 11

13.8

아침에 센트럴 파크 행 지하철에서 본 광고. 우리나라로 치면 차 없는 거리 뭐 이런 것 같다. 번잡한 뉴욕 차도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것도 깨나 기분 묘할 듯.


E라인을 타고 가다 50st에서 업타운 방향으로 갈아타는 중에 메트로 카드 돈이 떨어졌다. 당황하지 않고...(당시 유행어 - 편집자 주) 먼저 통과한 L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무인 발권기에 가서 카드를 충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제 선택항목이 코인, 카드뿐이었다. 지폐밖에 없었다. 이걸 어쩌지, 하며 에라이 일단 코인을 누르고 지폐를 넣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돈을 줘도 거부하는 자판기와 몇 번 씨름하고 있는데 어떤 흑인이 나를 치더니 자판기 위를 가리켰다. 오늘 지폐를 받지 않는다, 는 문구가 있었다. 아저씨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쌩유, 와 함께 엄지를 치켜 보였다.


L에게 동전을 빌리려는데 아저씨가 그걸 보더니 또 날 툭, 치고는 커몬, 이라며 개찰구로 이끌었다. 약간 불안해하며 따라가는데 갑자기 본인 메트로 카드를 긁어주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배려를! 매우 감사해하며 쌩유베리 머치, 를 뇌까렸다.


게이트로 갔다. 그때 흑인이 갑자기 나를 붙잡고 돈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했다! 아 이거 뭔가 큰일 났다, 싶었다. 흑인에 대한 선입견에 더해, 앞 행인들한테 뭔가 계속 말을 걸면서도 역에 계속 머물고 있던 모습 등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지하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돈을 더 뜯어내는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L에게 받은 동전을 최대한 지키자는 생각에 되는대로 두 잎 정도 건넸다. 표정이 갑자기 굳으면서 커몬, 커몬, 거리며 손을 흔들어댔다.


이거 제대로 걸렸구나, 큰일 났다. 땀이 온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돈을 지켜내야 된다는 신념으로 한 닢씩 하우 머치, 하우 머치, 하면서 조심스레 주었다. 마침내 있는 동전을 다 줬는데 아직 1달러 몇 센트밖에 안 줬다며, 계속 커몬 커몬 그러는 게 아닌가. 이러다 파산 나겠다 싶어 아이 해브 노 머니, 라며 불쌍한 표정을 꾸며냈다.


지폐만은 지켜야만 한다생각. 몇 번을 대거리 한 끝에 아저씨는 뭐 저런 놈이 있냐는 표정으로 그냥 가라, 고 했다. 얼른 뒤로 돌아가며 나는 뭐 저런 아저씨가 있냐 하는 제스처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까닥거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하철 입구로 가는데 불현듯 지하철 표값이 2달러가 넘는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다시 물에 빠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도망가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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