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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16. 2019

New York 12

13.8

역에서 내리자마자 건너편에 센트럴 파크 서편 입구가 보였다. 선선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공원으로 들어갔다. 스트로베리 필즈가 먼저 보였다. 존 레논을 기리는 곳이었는데 한 벤치에서 길거리 음악가가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잘하는 건 모르겠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깨나 애틋했다. 사람들이 돈을 꽤 적선했다. 때마침 가이드를 동반한 관광객 무리가 왔다. 설명을 대충 들어봤는데 이 공원의 모든 것, 나무벤치를 포함한 모든 것 하나하나가 계획적으로 배치돼있다고. 모 책에서 그런 내용을 봤던 기억이 난다.


쉽매도우를 지나 아무 잔디밭에 들어갔다. 숙소 앞 델리에서 산 튜나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서다. 가격에 비해 양도 많고 맛도 있어서 다음부터 아침은 델리서 해결하기로 했다. 원래 정해놓은 코스가 있었는데 걷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뭐 때문인지 무시하고 다음 예정지인 메트로폴리탄으로 걸어갔다. 중간중간 여러 동상들, 명소들이 나왔다.





센트럴 파크를 이리저리 돌고 돌아서 메트로폴리탄에 도착했다. 거의 한 블록 전체가 박물관이었다. 사진 한 장에 다 못 담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게다가 장벽 같은 걸 건물 앞에다 세워놔서 웅장함이 가렸다. 경탄의 소리를 연이어 내뱉으며 건물로 들어갔다. 도네이션 요금을 내기 위해 카운터로 갔는데 L이 50달러를 내면서 5달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직원이 이상한 눈빛을 보내자 아차, 하더니 노노, 파이브 달러. 아임 풀, 거리는 거였다. 직원도 황당했는지 피식 웃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백팩을 맡기고 전시관으로 올라갔다. 여러 점의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을 대충 훑어보고 남아메리카 전시실에서 아즈텍 문명의 유산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유적들에는 아는 게 전무하고 별로 흥미도 없던 터라 회화나 봐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회화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했다. 특히 예상치 못한 베이컨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들이 수도 없이 전시돼있었다. 아쉬운 건 메트로폴리탄이 너무 커서 도무지 한 번 대충 전체를 훑어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회화들은 다 봤기 때문에 만족한다. 배터리도 떨어지고 회화들도 다 보고해서 그만 박물관을 나오기로 했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몇 번을 헤매고 직원에게 길을 물어보고 겨우 출구를 찾았다.





다음 목적지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네이션이 5시 반부터 가능했다. 그전까지 시간이 비었다. 그동안 뭘 할지 고민하면서 메트로폴리탄을 나서는데 웬 흑인이 헤이 바나나맨, 이라며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바나나 그림이 그려진 앤디 워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씨디를 여러 장 들고 있었는데 나와 L에게 한 장씩을 쥐어주면서 자기가 무슨 힙합을 하는데 이번에 앨범이 나왔다고, 들어보라고 했다. 약간 기분이 싸했지만 오전의 기억도 있고 해서 여러 감탄사를 동원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매직을 꺼내 들며 내 이름을 묻길래 힘들게 힘들게 철자 하나씩 가르쳐 줬다. 그 흑인도 힘들게 힘들게 철자 하나씩을 받아 적었다. 그러더니 나를 스무스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내 이름 위에다 스무스를 적어 넣었다. 자기가 젤 좋아하는 단어라고. 그 담엔 L에게도 똑같이 이름을 물어 적더니 이번엔 쿨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다 됐나 싶어 가려는데 자기 음악의 발전을 위해 도네이션 좀 해달란다. 일반적으로 20불 정도가 좋다고. 이게 뭐 강매도 아니고.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L은 그래도 태연히 노, 노, 우린 학생이라고 돈 없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난 있는 돈에서 제일 작은 단위인 5달러를 줘버렸다. L은 좀 더 깎아내리려는 듯하더니 내가 5달러를 주는 걸 보고 그냥 5달러를 줬다. 흑인 래퍼는 표정이 완전 굳어버린 채 전혀 감사하지 않는 말투로 쌩유라고 했다. 흑인을 떠나면서도 왠뒤가 섬뜩했다. 맞지나 않을는지.


몇 발자국도 가서 흑인 똑같이 접근하는 게 아닌가. 웨얼 알 유 프롬, 하면서. L이 노노, 하면서 그냥 지나가길래 나도 그 뒤를 따라 쏜살같이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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