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휘일기

그러니까

3.5

by Benjamin Coffee

[부사]

1.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근거 따위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

;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라는 거 아니냐?


2. ‘그리하니까’가 줄어든 말.

; 네가 자꾸 울고 그러니까 애들이 놀리는 거야.


3. ‘그러하니까’가 줄어든 말.

; 부장님 성격이 그러니까 비위를 잘 맞추어 드려야 돼.




결과적으로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그러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탐스러운 눈송이가 쏟아져내릴 무렵, 내 얼굴은 정월 대보름 아이들이 돌리는 쥐불놀이의 잔상이 그대로 옮겨간 보름달처럼 발그스름했다. 그건 취기 때문이기도 했고, 온기 때문이기도 했다.


-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중




웃긴 얘기지만, (가장 애정하는 소설가로서) 김연수는 나에게 '그러니까'라는 한 단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연수의 모든 텍스트는 '그러니까'라는 부사를 중심으로 나뉜다(고 나는 규정한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그러니까' 앞에 있는 부분이 핵심이고 그 뒤로 언급하는 것들은 부연에 불과하지만,김연수가 김연수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모든 문학이 문학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쓰잘데기 없는 과잉덩어리뿐일 후자가, 범박하게 말하자면 '팩트' 그 자체인 전자를 압도해버린다는 데 있다.


위 텍스트에서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라는 객관적 시간은, '그러니까' 뒤로 굳이 써제낀 '이루 말할 수 없이 탐스러운 눈송이가 쏟아져내릴 무렵'이라는 주관적 묘사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러니까'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단 한 문장도 떠올리지 못하던, 그러니까 문학이 내 세계의 전부인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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