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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trong Jan 06. 2019

독일 아이들이 그네 타는 법

독일 베를린에 살던 집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큰 놀이터가 있었다. 대략 축구장 절반 크기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 놀이터는 흙밭이다. 우리나라 놀이터 대부분은 말랑말랑한 우레탄으로 바닥을 바꾸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우레탄 놀이터를 찾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흙으로 된 놀이터가 더 정감이 간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학교 운동장은 모두 흙이었다. 흙을 깊게 파서 오른 손을 넣고 왼손으로 흙을 쌓아 살짝 빼면 작은 굴이 생긴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손톱 사이로 파고드는 가슬가슬한 흙이 좋았다.


지금은 아마 흙으로 된 놀이터가 있다고 해도 부모들이 비위생적이라며 그 놀이터에서 놀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설령 놀게 하더라도 흙을 파며 놀지 못할 것 같다. 학원을 다니느라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시간도 사실 없다고 한다.


독일은 달랐다. 놀이터에는 언제나 아이들로 붐볐는데 대략 2살짜리 아이부터 1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있었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는 대부분 나무로 돼 있다. 아이들이 밧줄을 잡고 경사진 나무판을 밟고 올라가게 만든 집, 철봉, 평행대, 그네 등이 있었다.


아이들은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날이 아니면 놀이터에서 놀았다. 신기해보였다. 2~3살 정도인 아이들이 방수 재질로 된 옷을 입고 흙밭에 주저 앉아 흙을 파면서 논다. 부모는 옆에서 같이 흙을 파거나 벤치에 앉아 다른 부모와 수다를 떤다. 어떤 아이들은 다른 또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지 마냥 웃으며 뛰어다닌다. 겨울인데도 이 아이들은 외투를 벗어놓고 뛴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온다.


우리 아이도 놀이터에서 놀게 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도 흙은 조금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독일 아이들처럼 놀이터에서 흙을 만져보며 놀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처음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3분쯤 지나자 흙밭에 앉아 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은 흙을 만져보고 손으로 비벼가며 촉감을 느끼는 듯 했다. 더 놀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흙 맛을 보고 싶었는지 입에 넣고 먹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와야 했다. 흙을 먹게 놔두기는 힘들었다.

14개월째인 아이에게 그네를 태워봤다. 좋아했다. 그 때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게 신기했다.


살살 조심스레 아이를 태우는 사이 바로 옆 그네에 독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녀를 태웠다. 우리 아이보다 1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그네를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주기 시작했다. 열심히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얼굴 표정까지 일그러뜨리며 밀어줬다. 그 그네에 탄 아이는 얼굴이 다소 경직돼 있었고 공중에서 몸이 거의 드러누운 자세처럼 높아졌을 땐 ‘윽’ 하는 소리까지 내뱉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멈출 줄 몰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독일 아이가 탄 그네가 움직이는 반경이 180도라고 보면 우리 아이는 40~45도 정도에 불과했다.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이 각도를 60도, 90도까지 높여 봤는데 우리 아이가 더욱 좋아했다. 내 딴에는 아이가 공포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살 밀어줬는데 아이는 오히려 더 세게 밀어주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비록 우리 부부 모두 독일인 조부모만큼 담대하지 못해서 180도까지 밀어주지는 못했지만 처음 그네에 태울 때 보다는 세게 그네를 밀었다.


나중에 한 독일인에게 물었다. “왜 독일인들은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놀게 놔두느냐”고. 그는 “그럼 어떻게 놀아?”라고 반문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근데 그네는 왜 그렇게 세게 미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그럼 그네를 어떻게 타?”라고 또 반문했다.


독일인들은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밖에서 뛰어놀아야 면역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실제로 남자 아이,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근육을 키운다. 낮에 잘 뛰어 노는 아이는 밤에 잠도 잘 잘 것이다. 잘 자면 성장 호르몬이 풍부하게 나와 잘 클 것이다. 잘 자면 면역력도 강해질 것이다. 잘 뛰어놀면 운동이 되니 또 성장판이 자극이 돼 잘 클 것이다.


그렇게 튼튼하게 크니 독일 여성들이 아이를 안고 품에 둘러메고 유모차를 끌고 장을 보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다. 기초 체력이 어렸을 때부터 근육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체력이 결국 평생 이들의 삶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밑바탕이 된다.


우리 아이들도 뛰어놀며 강해지면 좋겠다. 평생 항생제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자연히 생겨나는 면역력이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마 이 바람은 바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사시사철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에게 뛰어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독일의 맑은 공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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