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 대한 재정의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인간에게 '부'는 쳇바퀴를 무한히 돌릴 도구일 뿐

by 김수김


#1.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열심히 살다보면 문득 '뭐하러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건 아마 스스로 열심히 사는 것의 목적을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다. 혹은 사실 성공을 그렇게 바라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보고 싶었다. 한 달 동안 퍼질러지고 싶은 대로 한 번 퍼질러봤다. 번아웃 안 느끼기, 현재를 만끽하기, 뭐 이런 것들을 하겠다는 이유로 러닝을 시작했고 독서에 빠져들었다. 엔트로피가 커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듯이 무방비 상태, 무념무상 상태가 됐다.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버렸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온전히 느끼자는게 가장 큰 관심사였고 나의 추구점이었다.


의식적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다 내려놓아보았다. 근데 그렇게 하니까 내가 지금 힘들면 하지 않아야 하고 내가 지금 행복하면 그것을 끝없이 추구해야 했다. 시험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했고 음식을 먹고 싶어서 마구 먹었다. 그리고 생산성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투자 공부도 멈췄고 영어 공부도 멈췄고 심지어 전공 공부에도 몰입하지 않았다. '공부'라는 것의 의미를 단순히 '지금 나의 흥미'에서만 찾았다. 기존에는 '미래를 위해서'라는 의미가 어느 정도 있었다면 이 당시에는 정말 내 지적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공부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기존에 쌓아온 토대가 무너지기 시작하기도 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삶이 허기졌다. 계속 공허함이 느껴졌고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을 꾸역꾸역 계속 집어넣었다. 내 관심은 온통 음식이었다. 그 외의 것에는 관심을 아예 꺼버렸다.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를 음식 외에는 못 찾았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나는 뭔가를 좇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비록 허상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뭔가를 열정적으로 추구해서 공부하고 움직이는 것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냥 나는 태생이 그런 것 같다. 그것에 반하여 사는 것은 좀 억지스럽고 어색하다. '안분지족'이라는 게 나한테는 맞지 않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목표 없이 좋아하는 자연을 느끼면서, 커피 향과 햇빛, 여유를 느끼면서 사는 것? 그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적당한 스트레스와 자극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결국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상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좇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이 세상에 '적응'을 못한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 이건 적응의 문제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잘 적응해 녹아들어 산다는 것은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얻고 높은 지위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이방인을 읽다보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는 생각이 드는데, 마지막 뫼르소의 생각에서도 나오듯 인생은 오히려 무의미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채우든 모두 나름이지만 이왕 살 거 풍족하게 살면 좋지 않은가..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어떻게 보면 멍청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너무나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생각에 기대어 살아야만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그게 비록 표상일지라도 그냥 그것에 속아주면서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속으면서 사는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두 영역의 경계에서 여기에도 속하다가 저기에도 속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거다. '돈', '풍족함'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으니, 이제 나는 단순히 좇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몰되지 않고 그저 삶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뭐하러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리고 고통이 없는 삶이 행복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은 고통을 유발한다.


끝없는 욕망 속에서는 고통을 느낀다.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열심히 살아나간다는 사고 자체가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 도구 중 하나이다. 그 도구가 없다면 하루를 지루하고 따분하게 살아야 한다. 가장 빠르게 자극과 재미를 주는 일차원적인 것들, 가령 끊임없이 먹는 것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데, 절제되고 정돈되지 않은 삶에서는 욕망이 끝없다. 끝없는 욕망 속에서는 고통을 느낀다.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욕망은 고통스럽다. 우리는 정돈된 삶에서 무욕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살면서 삶을 정돈할 때, 욕망을 절제하고 고통 없는 상태로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2. 인생은 '한동안 무엇을 좇으면서 살 것인가'의 반복이다.


인생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의 반복이다. 그게 사랑일 수도 있고 추구하는 목표일 수도 있다. 존재 이유를 찾을 대상이 없는 것이 고통이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일'에서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윤리적인 소명 같은게 있지 않은 이상, 일을 하는 것 자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자기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고차원적이라고 해야 할까, 한단계 더 나아간 목표를 추구하는 것인데, 일을 함으로써 '부'라는 허상에 도달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일 그 자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통해 부를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품고 살아가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의지를 찾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인간은 재미없고 따분한 공간인 우주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결코 편하지도 않고 어떤 의미를 찾지도 못한다. 결국 하루를 살고 움직이고 의미를 찾기 위해선 어떠한 ‘표상’을 추구해야 한다. 나의 경우 추구하기에 좋았던 것이 '물질적인 풍족함'이었다. 쉽게 갖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본인도 모르는 새에 내 안의 열정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무언가’를 찾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지 않아서 사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 삶을 잘 경영해서 살아가게 해주는 동력이자 도구가 된다는 점은 비슷할 것이다. 가령 마라톤, 사업, 시험 공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결국 ‘한동안 무엇을 좇으면서 살 것인가’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부를 이룬 성공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부'는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 특성이 과장되었을 뿐이다. 행복은 최종 목표로 두는 게 아니라 삶의 매순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행복이라는 감정을 체험하기 위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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