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찾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현금은 쓰레기다’
올 웨더 포트폴리오로 유명한 브리지워터의 설립자 레이달리오가 했던 말입니다. 화폐가 계속해서 발행되고, 현금 외 자산들이 오르는 시기에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쓰레기를 보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한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 속 화폐 가치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이는 타당한 의견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그 가치가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 주식과 부동산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등락을 반복하며 꾸준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미국 주식은 약 4배, 대한민국 부동산은 2배가 되었습니다. 현금 외 자산들이 올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같은 기간 동안 현금의 가치가 1/4배, 1/2배로 줄어버렸다는 뜻입니다. 현금의 이런 특성을 생각해 보면 쓰레기라는 표현도 과언은 아닌 듯합니다. 입출금 통장에 현금을 넣어놓고, 계좌에 찍혀있는 금액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른 자산들이 우상향하는 한, 현금의 가치는 계속해서 줄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투자라는 활동을 통해 현금을 다른 자산으로 바꿔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현금은 보유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투자를 하다보면 현금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달리오가 한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현금 외 자산들의 가격이 오를 때 현금의 가치는 줄어든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현금 외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질 때는 현금의 가치가 상승한다’
는 뜻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시장에 위기가 찾아와 투자한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반대로 가치가 상승하는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락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리스크를 현금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금 보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락장에서 투자자가 리스크에 노출되었을 때 현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하락장에서 투자자가 겪을만한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보유한 자산의 가격이 하락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투자를 위해 사용한 레버리지가 부담을 줄 때입니다. 이 두 가지 리스크를 어떻게 현금을 활용하여 대응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1) 보유한 자산의 가격이 하락했을 때
시장에 위기가 찾아오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그 가격이 크게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투자한 자산이 있는 상태에서 하락장을 만나게 되면 제아무리 좋은 자산을 들고 있어도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앞에서 안전자산의 효과에 관해 설명했던 것처럼, 현금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실이 줄어듭니다. 보유한 현금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전체 자산 중 투자한 자산의 비중이 줄어들어 손실 규모를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저렴해진 자산을 추가로 매수할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이라면 상급지로 갈아타는 방법으로, 주식이라면 추가 매수를 통해 평단가를 낮추며 대응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만일 현금 비중이 높은 투자자라면 하락장이 오히려 좋은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추후 상승기가 돌아왔을 때 남들은 손실을 회복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데 비해, 보유한 현금을 이용해 자산을 더 저렴한 가격에 추가 매수할 수 있으므로 높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투자를 위해 사용한 레버리지가 부담될 때
‘양날의 검’이라는 표현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레버리지는 자산 가격이 상승할 때는 투자의 이익을 키울 수 있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면 손실을 키우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투자자는 남들보다 하락장이 더욱 괴롭게 느껴집니다. 자산 가격 하락이 가져오는 손실이 더 커질 뿐만 아니라, 레버리지가 주는 부담까지 가중되므로 괴로움이 배가 되는 것입니다.
레버리지를 과다하게 사용하고 하락장을 만나 투자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상환해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주는 데미지를 줄이는 것이 마음 편한 투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현금입니다. 갭 투자를 한 부동산의 전세금이 하락하는 상황이라면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 부족해진 보증금을 돌려주고, 사용한 대출의 이자가 높아져 현금 흐름이 나빠진 경우에는 원금을 상환하여 이자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현금이 농구 경기의 식스맨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스맨은 5명이 플레이하는 농구 경기에서 스타팅 멤버가 아닌 대기 선수지만, 중요한 순간에 게임에 투입되어 팀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를 말합니다. 투자에선 현금이 이런 식스맨과 같은 모습입니다. 평소엔 통장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지만, 시장에 위기가 찾아오면 현금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투자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의 경우 현금이 놀고 있으면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자산에 넣어두고 불릴 수 있는 현금을 통장에 가만히 놔둬야 하는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투자자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순간에 가지고 있는 현금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현금 없이 보유 자산을 100% 투자자산으로 세팅해 둔 상태에서 하락장이 찾아온다면 어떨까요? 아마 기존에 보유한 자산이 다시 오를 때까지 손실이 발생한 상태로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반대로 참을성을 가지고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투자자들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자산의 빅세일 기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자산들을 쓸어 담을 수 있습니다.
이미 충분한 비중을 투자자산에 넣어둔 상태라면, 느긋한 마음으로 15~30% 정도의 현금은 통장에서 놀게 놔두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은 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달 독감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A형, B형이 동시에 걸렸더군요. 신나게 앓아보고 나니 재테크도 좋지만 건강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