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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l 19. 2021

남편에게 받은 생일 선물, 샤넬보다 '이것'

샤넬도 주면 좋겠지만


구 남친이자 현 남편인 그에게 지금까지 받은 생일 선물을 생각해 봤다. 기억에 남는 건 7년 전 받은 샤넬 카드지갑. 그거면 됐다. 지금까지도 매일 지니고 다니는 지갑은 남편이 생일선물로 준 고마움을 날마다 인식하게 해 주니까.



남친이 남편이 된 지금, 그에게 더 이상 물질적인 생일 선물을 받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생일 아침 정성 가득 들어간 미역국 한 그릇과 축하카드 한 장 이면 샤넬 카드 지갑을 선물 받았을 때만큼 기쁘기 때문이다. 기쁨의 바로미터가 되는 눈물샘을 통해 눈물이 찔끔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낀 감동이 뇌로 전달되고 신경경로를 통해 흘러들어가 눈물샘을 자극한 게 아닐까.


 



게양대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아침, 후루룩 쩝쩝 소리에 눈을 떴다. 그와 함께 살며 맞이하는 네 번째 생일날이었다. 생일 한정 방긋 웃음을 장착한 채 생일 축하한다며 손을 뻗어 일으켜 주는 그의 모닝콜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어젯밤부터 미역국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러웠던 그를 모른 척하고 잠들었는데 식탁에 미역국이 냉면그릇째 차려 있었다. 조개와 쌀떡이 들어간 미역떡국을 한 술 떴다.



'오! 아침을 번쩍 깨우는 자극적인 맛!'


남편에게 맛의 비결을 물었다.


"마늘이랑 국간장으로만 간 하고 다시다는 여봉생일이라 안 넣었지. 멸치랑 다시마가 다했어."


불 앞에서 멸치를 덖고 다시마를 찬장에서 꺼내 냄비에 투하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늘, 국간장, 멸치, 다시마와 미역. 이 5가지 재료만 있으면 생일날 미역국으로 가성비 좋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한 술 까지 야무지게 뜨고 떡을 꼭꼭 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중에 한 켠에 연핑크색 종이가 보였다.






포스트잇인 줄 알고 옆에 치워 놨는데,

그가 쓴 카드였다. 미역국을 다 먹고 카드를 열었다. 언제 썼냐고 물으니 전날 회사에서 썼다고 한다. 크크... 회사 근처 문구점에 가서 핑크색 생일카드를 샀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웃음이 삐져나왔다.



남편이 꼭 우리 아빠랑 닮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필체를 볼 때다. 아빠의 다이어리에 쓴 정갈한 필체를 보면 아빠가 가장 멋져 보이는데, 남편 필체는 아빠 필체를 닮았다. 남편 필체를 향유하는 마음으로 꼭 생일이나 기념일에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그래 봐야 500원짜리 작은 카드에 길어봐야 다섯 문장도 채 안 되는 글이 들어가지만 나는 그의 손편지를 꼭꼭 받아서 모은다.



핑크색 카드에 쓴 그의 편지 줄은


 '어느덧 삼삼한 나이가 되었네요.'


라고 시작했다. 천천히 그의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평생 꽃길만 걷게 해 줄 수는 없지만
 가시밭길에서는 당신을 업고 가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회사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니. 이 정도면 됐다.


지난겨울,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을 때 남편 등에 업혀 교회를 왔다 갔다 했던 때가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업힌다는 경험이 거의 30년 만이어서 업힌 그 순간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업어준다는 말은 사랑 표현의 단계 중에 최상급 일 테다. 그것도 가시밭길에서는 나를 업어준다라니. 그냥 말 뿐이어도,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귀한 문장이었다.


하트 모양의 입체적인 생일케이크도 그려져 있었다. 물론 생일카드의 남은 칸을 채우려는 요량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의 예술 세계로부터 이런 케이크가 나올리는 없을 것 같아 물어보니 케잌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린거라고 한다. 2D 아닌 3D 로 그려준 생일 케이크 실물 케이크 만큼의 기쁨이었다. 이 기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냉장고에 잘 보이도록 생일카드를 붙였다.



정성 한 술 들어간 미역국핑크색 손편지는 줄 서서 산다는 샤넬백도 부럽지 않은 생일 선물이었다. 물론, 미역국과 편지 그리고 샤넬백의 삼종세트를 받아 본 적은 없어서 그 기쁨의 크기를 정확히 측량할 수는 없겠지만.





남편에게 철통보안 비밀로 쓰고 있는 남편 에세이 <남편이라는 세계>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주차까지 달려왔습니다. 4주 동안 들키지 않은 걸 보면 역시 그는 제 브런치에 관심이 없었던 게 틀림없네요.


지난주 글이 많은 사랑을 받고 실은 남편에게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는데요. 마지막 주까지 비밀로 하고 남편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마지막 주 까지 많관부*!


*많관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위즈덤 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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