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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브래드슈 Jul 15. 2021

화장대를 뺏긴 아내

고대기 경력30년 차남편

여행 준비물 중 가장 중요한 물건은 '고대기'. 그것의 주인은 남편이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예쁜 화장대를 나의 화장품과 귀걸이 등으로 세팅했다. 하지만 출근 준비 시간 화장대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화장에 공을 들이는 편도 아니고 머리손질에 신경을 쓰는 편도 아니다. 머리숱이 워낙 많아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툭툭 말리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끝이다. 가끔 여유가 있으면 드라이어로 물기를 말리는 정도. 그런데 세수를 하고 나오니 남편이 내 화장대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는 꼼꼼하게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말리는 동안에는 고대기를 뜨겁게 달궈둔다. 그리고 머리를 다 말린 후 비장하게 고대기를 집어 든다. 그리고 앞머리를 지나 옆머리 그리고 뒷머리까지 꼼꼼하게 펴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루 이틀 해본 실력이 아니었다.


아내 : 어떻게 이렇게 머리를 잘 펴?
남편 : 중학교 때부터 폈는데, 20년도 넘었네. 나 기술자야~ 미용실보다 잘 펴. 자기도 펴줘?

 

머리 펴는 것에 진심인 남편. 기다리면 내 머리도 예쁘게 펴주겠다는 남편에게 내 화장대를 기꺼이 양보했다. 남편이 머리를 펴는 이유는 머리가 심한 곱슬머리이기 때문이다. 매일 펴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헤어숍에 가서 매직 파마를 해보라고 권해보았더니 안 해본 양반이 아니었다. 이미 어린 시절 해봤는데 너무 펴져서 너무 이상해서 다시는 헤어숍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의 루틴은 머리 펴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헤어스타일에 민감한 편인데, 특히 비 오는 날이나 땀날 때 예민해지는 편이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머리를 만지면 버럭 화를 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동료들은 자신이 생머리인지 안다며 머리 펴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말을 할 때는 조금 귀엽다. 


결혼 7년 차. 이제는 여행 준비물로 내가 먼저 고대기를 챙겨주고, 숙소에 헤어드라이어는 있는지 확인해준다. 오늘도 화장대에서 열심히 머리를 펴는 그에게 언제까지 머리를 펼 것이냐고 물었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꼬부랑 할아버지가 돼서도 펴겠단다. 아들이 조금 더 커서 곱슬머리가 된다면 자신이 예쁘게 펴주고 기술도 전수해주겠다며. 화장대의 주인이 누구면 어떤가. 잘 사용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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