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첫사랑에게 대차게 까였다. 반쪽이 없어지면 있어빌리티는 매일이 하한가 갱신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질척거릴 수 있다니! 연애로 반쪽을 찾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 후의 연애는 전투였다. 누굴 만나도 줄기차게 싸웠다. 누굴 만나도 싸우고, 안 싸워도 내가 이별을 말했기에 나는 결혼을 못할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어느날 저녁 6시, 엄마 친구 아들 A에게 전화가 왔다.
“누놔아, 이따↗가(딸꾹) 누놔랑 소개륑 할 늠즈가 전화하(딸꾹)거야. 내가 쮜인짜 신경 써서 찾아낸 늠즈야. 기르니까 잘 받아. 아랐쒀?”
“또 술? 대체 몇 시부터 마신... 소개팅은 또 머야.”
A는 대답없이 끊어버렸다. 얘가 돌았나.
3시간 후, 진짜 전화가 왔는데 이상하다. 본인 중학교 동창의 여친에게 내 번호를 받았다는데 둘다 A를 모른단다. A가 쮜인짜 신경 써서 찾았다는 그 늠즈에게 내가 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세요? 제가 A에게 전해 들은 게 이름밖에 없어서...”
인생에서는 꼭 뛰어넘어야 할 어떤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회피하면 성장의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 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온다. 누구와 절반을 나누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믿었는데달랑 이름 하나 알았던 그와 결혼해서 남편이라는 세계가 내 절반을 차지했고 종종 그 '순간'에 맞닥뜨린다.
절반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서운함과 오해, 삐쭉빼쭉한 유치한 감정, 실체 없는 허무함 등, 그러니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못난이가 되는 그런 말들을 꺼내는 용기가 필요했다. 말했어도 들었어도 상대도 나도 쭈구리 만들지 않고 토닥일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일, 그게 남편이라는 세계에서 내가 감당할 일이었다. 있어빌리티가 또 하한가를 치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조금씩 자랐다고 믿는 일들 말이다.
남편이라는 세계는 내 통제 밖반쪽(이라고 믿지만 어쩌면 더 큰 세계)다루기를 배운다. 잘 다뤄서 결국에는 온전한 하나이면서 온전한 둘도 되는, 반쪽 때문에 내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배우는 일이다. 말장난 같지만 장난 아닌 일들을 해나가며 그전보다 조금은 마음평수가 커진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결국에는 나 자신까지 껴안을 여유를 갖는 것, 남편이라는 세계에서 배우는 중이다.
내일은 캐리브래드슈 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