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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생맥 네 잔이요

가장 어색한 날

by 아코더



그날은 함께 웃고 혼자 울었다.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피해 이직을 하며 친정이라고 하는 첫 직장을 떠났다. 팀원들에게 퇴사인사 메일을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누른 순간, 아쉬움 순도 100%로 가득 찬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화장실로 튀어 들어갔다. 신입사원으로 입사 한 이후,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린 날은 손에 꼽았다. 일흔을 바라보는 위원님이 퇴사하던 날이 아쉬워 눈물을 흘린 날, 친했던 부장님이 자리를 빼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다. 퇴사 메일을 보낸 그날의 눈물의 의미를 파고들자면, 그 또한 7년간 부대낀 선후배와 동료들 사이의 정 때문일 테다. 점심을 먹기로 한 선배들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눈물을 훔쳐내고는 눈이 시뻘게진 채로 화장실을 나왔다.



시뻘건 눈을 보고는 한 선배는 “으이그~” 하며 팔짱을 껴 주었다. 여의도에서 돈까스가 제일 맛있는 ‘여의도돈까스’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여의도돈까스의 돈까스 맛도 그립다.) 돈까스 4개를 시키고 정적이 흐르는 와중에 언니들과 나는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동 외쳤다.



“여기 생맥 4잔이요.”



맥주가 빠지면 섭섭했다. 예전 같으면 점심에 생맥주를 시키며 주변에 회사 사람이 있나 눈치를 봤지만 그날은 홀가분했다. 맥주와 돈까스가 나오고 우리는 유리잔을 부딪히고 퇴사토크를 시작했다.


동종업계로의 이직이어서 내심 섭섭해할 것 같았다. 퇴사하는 순간의 아쉬운 무드를 유지하고 싶은 마지막 욕심이었을까. 맥주잔을 기울이면서도 이직 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 하지 않았다. 그날 서로 주고받은 어색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일도 모레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내일부터 그 사람의 자리가 빈다는 낯선 감정이 언니들의 눈빛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지겹게 봐오던 익숙한 날들이 이제 정말 끝이라는 사실이 나의 눈빛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 이젠 안녕, 015B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언니들, 어디 가서 이런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친정이라는 회사를 7년을 다녔는데,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어떡하나. 속으로 후련하면서도 부대꼈다. 이직한 지 이제 3년이 되었음에도 전 직장 동료들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서 가끔 꿈에도 나오기까지 하니 말이다.


일로 만난 사이일 뿐이고, 일을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사람들인데도 헤어짐의 순간에서 결국 남는 건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직을 하고 나서 가장 힘든 건 또다시 동료와의 관계이다. 정이 들면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헤어짐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강약 조절을 하기가 여전히 어렵고 전학 온 학생 마냥 여전히 수줍다. 다가가면 정들고 멀면 외로우니까 나는 주변을 빙빙 맴돌며 서성이고 주저한다. 그렇게 이직러의 시간은 간다.


다시, 이구동성으로 "여기 생맥 4잔이요."를 외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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