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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기혼여성이 자기계발 하기 좋은 골든타임

삼십 대 기혼여성의 삶을 가장 호사스럽게 보낼 수 있는 시기

by 아코더

옆집 아이는 밤이 되면 비명을 지르듯 울어댔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울음을 듣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미세한 그 소리를 옆집 새댁이 들었는지 주말 아침에 빵을 한 아름 갖다 주었다. 그날 이후로도 아이는 밤낮 가리지 않고 울었다. 옆집 부부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적잖이 신경 쓰였을까. 하루는 우리 집에 아기가 있는 꿈을 꾸었다. 옆집 아기처럼 소리 지르며 우는 통에 나와 남편은 멘붕이었다. 그 핏덩이 같은 작고 어린 아가를 다룰 줄 몰라 진땀 흘리는 여름날, 안에서는 아이가 울어대고 밖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정신없고 환상적인 꿈이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집에 어린 아기가 있다면 영혼을 갈아 넣는 자격증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기간 동안 나는 (평일에는) 집안일에 완전히 손을 뗐다. 세탁기는 수건들을 토하고 있었으며 오색빛깔 덴비 식기들이 설거지통에 쌓여 갔다. 방바닥은 맨발로 밟자니 자꾸만 발을 씻고 싶어지는 먼지의 지뢰밭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전쟁통에 살고 있었다.


여기 전쟁터에 아이까지 있다면... 24시간을 아무리 조립해 보아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고 공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좋은 엄마도 아내도 김대리도 딸도 되지 못하다가 결국 나는 펑하고 터지고 말 것이다.


그 꿈은 신이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보낸 메시지였다. 지금 이 시기에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한층 단단졌다. 곰곰 되짚어보면 삼십 대 기혼여성의 삶을 가장 호사스럽게 보낼 수 있는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회사 Task Force Team으로 나온 사무실은 집과 가까워져서 이동시간도 줄었고, 엉겁결에 맞이한 코로나 덕택에 모임도 줄었다. 엇보다도 돌봐야 할 아이가 없다.


1살부터 100살까지 인생곡선을 그리자면, 그 때가 바로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황금 같은 30대 시절이었다. 워킹맘 아닌 워킹우먼으로 살아가는 30대의 날들이 얼마나 있을까. 시간적 여건이 갖춰졌고 나만 공부하면 되는 일이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기에 시간 낭비 없이 초수에 끝내자는 다짐이 견고하게 세워졌다.




스터디카페와 집 회사를 오가던 어느 날, 딸인지 아들인지 모를 옆집 아이와 아이 엄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었다. 옆집 아이 엄마에게 아이의 양말색깔을 물었다. 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너 구나~ (밤새 울던 녀석이)"


얼마 후 옆집에 검은콩 두유 한 박스를 갖다 주었다. 우는 아이를 보는 일 또한 고된 일일터였고 무엇보다 남일 같지 않았다. 문득 생각 없이 크게 내쉰 한숨이 미안해졌다. 쭈뼛거리며 건넨 두유 한 박스는 옆집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는 소박한 인사였다.





공부하며 보내는 동안 옆집 아이는 두 돌이 되었다. 의젓해진 옆집 왕자님은 애기때만큼 울지도 않았다. 아이를 낳은 내 친구들은 자신의 인생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고생의 나날은 잊혀져서 아이만 바라보면 힘이 난다고, 그래서 둘째를 가질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고 한다.


물론 이까짓 자격증 따위가 한 생명의 잉태와 탄생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의 30대도 기술사 필기 합격 전후로 나뉜다고 (아직까지는) 말할 수 있다. 열 달 동안 심신의 압박을 견디고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종종 또다른 기술사 자격증을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만 들 뿐, 하나만 갖기로 했다) 어려운 자격증을 따는 과정 속에도 임신과 출산 과정만큼의 고생과 기쁨이 있다면, 한 번쯤 젊은 시절을 갈아 넣어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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