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면 야근수당이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9시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도망치듯 튀어나갔다. 9시까지만 야근을 올렸다고 말하며 내가 해야 할 도면작업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했다. 아마도 자리에 남은 동료들은 집에 꿀단지라도 숨겼나 싶었을 것이다. 몇 분만 더 앉아 있으면 야근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하고 말이다.
쌓인 피로와 없는 시간 속에서 밀린 공부는 나를 건조시켰다. 자기 불신에서 나오는 불안은 피부를 푸석하게 눈을 뻑뻑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상 앞에 앉는 것뿐이었다. 야근수당 몇 푼과 내 시간을 맞바꾸고 나는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9시 반쯤에서야 스터디카페에 도착했다. 하필, 필통을 안 가져왔네. 언젠가 사 둔 볼펜 리필심 여분이 다행히도 가방 안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고 리필심을 부여잡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겨우 쥔 0.5mm 리필심을 바라보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한참 들었다.
허나 퇴근 후의 내 시간은 소중했다. 9시에 스터디카페에 도착하면 체력에 따라 11시 혹은 12시까지 공부했다. 그날은 야근도 하고 억지를 부려 스터디카페에 왔건만 공부가 잘 안됐다. 가스레인지로 치자면 공부의 재료를 팔팔 끓이며 뇌 속에 삶아 넣지 못하는 날이었다. 약한 불을 켜놓고 은근하게 익히며 그저 온도만 유지하고 말았다.
고독한 시간을 삼키던 그 실패한 날, 나는 성실한 바보였다. 리필심을 손에 쥐고 손바닥만 한 수첩에 용어 정리를 하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금세 절여왔다. 소심하게 리필심을 집어던지고는 정리해 둔 노트를 뛰적뛰적 넘겨 보며 시간을 채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야근으로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내일을 위해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아니었다. 스터디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 최선이었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비록 필통이 없어서 더 고독했던 날이었지만 정신력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어차피 내일로 모레로 아무리 미뤄봐야 결국엔 누구도 대신해 줄 공부가 아니었다.
공부를 끝내고 시간을 때우고 집에 돌아가 침대에 쓰러져 한숨 푹 자고 나면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 또 생겨났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머리를 감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래도 머릿속에 어제 공부한 것이 희미하게 한 겹 남아 있었다. 힘들더라도 스터디 카페에 기어들어가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선택을 하길 잘했다는 안도감과 억지로라도 하루를 버텨냈다는 티끌 같은 성취감이 줄어든 디데이를 살게 했다.
평일의 긴장은 이어져 갔고 그 흐름을 유지하는 쪽이 최선이라는 판단은 늘 옳았다. 지구력을 기르며 달력 속 하루하루를 뚫고 나가다 보니 어느덧 디데이는 두 자릿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