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상관없이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감이 지수적인 상승세로 J자 커브를 그린다. 슬럼프는 상승하는 불안 곡선의 가장 높은 임계점에서 나를 기다렸다.
"어서 와, 번아웃은 처음이지?"
시험 준비를 하다가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평소와 달리 약해진 나를 제 3자의 시점에서 보며 불안감을 느끼면서 불을 확 지피게 된다. 나의 뇌에 마치 블루스크린이 뜨는 것처럼 잘 풀던 문제 앞에서 버퍼링이 걸리면서 무한 재부팅이 된다.
그러다 보면 슬금슬금 찾아오는 불청객이 바로 '번아웃'이다. 가스불 켜진지 모르고 나갔을 때 냄비가 타듯 번아웃은 단어 그대로 나 자신을 솥에 담아 부글부글 끓이다가 기어이 타버리게 만든다.
주말에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뇌 속에 저장한 기억들을 갉아먹는 세포가 있는 것처럼 멍청해지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는 완전히 좌절했고 불안했다. 그러면 부정적인 가정법 화법으로 나 자신을 채근했다.
'만약 실전에서 기억을 못 하면 어떡하지? 공부하던 것도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아예 모르는 문제들로 범벅이 된 문제지를 만나면 어떡하지? 설상가상 시험 당일 계산기나 신분증을 안 가져간다면...' 걱정 가득한 가정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안 되겠다. 하고는 바로 내 생활을 셧다운 했다. 공장에서는 셧다운이라는 말이 있다. 공장에서는 기계 하나만을 끄거나 공정 (공장 아님)의 일부 혹은 공장 전체를 끄는 경우 셧다운이라는 표현을 쓴다. 셧다운을 하고 고장 난 부분을 보수하거나 점검하는 일을 하는데, 나의 뇌도 셧다운 된 것이다.
섣불리 정상 가동을 하려고 나서기보다는 일단 잠시 환기를 시키고 나 자신을 보수하고 점검했다. 이를 테면 마스크팩을 한다거나, 머리를 단정히 자르거나, 혹은 예쁜 옷을 사거나 하는 방법으로 뇌를 끄고 나 자신을 다시 정비하는 거다. 공부하느라 신경 안 쓰던 냉장고에서 오래된 반찬을 꺼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으며 집안 구석구석 지저분한 부분을 살폈다. 한동안 미뤄뒀던 가계부도 보수를 하고, 밀렸던 가스 검침도 야무지게 했다. 공부 말고 내가 돌봐야 할 나 자신과 내 생활을 보수하고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서너 일쯤 지나고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시작하니 뇌 속에 퉁퉁 불고 꼬여있던 기억 회로들이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혼잣말로 나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외쳐주며 뇌에 기름칠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슬럼프가 왔을 때 꼭 나와 대화를 나눠주던 사회 선생님이 있었다. (사회 과목은 안 좋아하는 사회 선생님하고는 절친이었다) 하지만 어른의 공부에는 슬럼프가 왔을 때 나를 도닥여 줄 담임 선생님이 없다. 내가 하겠다고 시작한 일이기에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말 못 하며 앓게 되는데 그때마다 스스로를 토닥여 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수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는 삶 속에서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나를 바로 세우기란 힘든 일이지만, 균형을 잃었을 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헤쳐나가는 어른이야 말로 진짜 어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의 과정을 통해 겪어봐야 아는 것 같다. 때가 되면 쉬어주고 나 스스로를 보듬어 주는 일은 나를 부글부글 끓이는 일만큼 중요하다. 이제는 그런 번아웃이 왔을 때 알아채고 "자, 자, 그만 하자!" 하며 접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