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 덕분에 긴장 풀린 결전의 날

by 아코더



우황청심원을 마신 신부


결혼식 날, 구두가 보일만큼 웨딩드레스를 번쩍 들고 퇴장하는 신부가 있을까. 그게 나였다. 우황의 기운을 과하게 입은 나는 신부대기실에서부터 한껏 텐션이 업 되어 있었다. 양손 들어 쌍 따봉을 취하며 호탕하게 웃는 웨딩 사진 속 내 얼굴을 보면, 날 새벽 메이크업샵에서 털어넣은 청심원의 맛이 알싸하게 느껴진다.



사실 그 전에도 우황청심원을 먹은적이 있었는데 바로 대학교 4학년 취업준비생 시절, 신입사원 최종 임원면접 날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그 우황청심원을 또 먹어야 했다.






D-Day AM 8:40 장한평역 스타벅스


오전 9시 경, 장한평역 앞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2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배와 머리가 동시에 아픈,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였다. 가져간 종이 쪼가리 자료는 더 이상 눈에 안 들어온다는 걸 이미 작년에 겪어서 알기에 그저 앉아서 심호흡만 했다.


들숨에 "후~~웁" (그래, 괜찮아, 할 수 있어, 진정해...)

날숨에 "어휴우~~" (아니야, 무서워, 도망가고 싶어, 불안해...)



스타벅스를 떠나기 직전, 전쟁터에 나가려고 말에 오른 장군이 칼을 빼내듯, 비장의 무기인 우황청심원을 늠름하게 꺼내들었다. 그리고 원샷 드링킹!!



내 생에 세번째 우황청심원 이었고 나는 우황의 기운을 믿었다. 플라시보 효과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길 때 마다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청심원을 살 때, 약사 아저씨가

"6000원 짜리 있고, 8000원 짜리 있고, 10000원 짜리 있어요."

라고 말했고 나는 "제일 싼 거 주세요." 라고 답했다. 아묻따, '제일 싼' 우황청심원 달라고.


효능은 모르겠고 그저 플라시보 효과만을 취하겠다는 심산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제일 싼' 이라는 단어가 우러나왔다.




D-Day AM 9 : 40

어서와, 두번째니까 익숙하지?


작년에는 건물에 진입하면서도 기가 빨렸는데 이제는 긴장도 안되었다. 우황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작년의 나는 소개팅에 처음 나가는 어설픈 숙녀 마냥 쭈뼛거렸지만 오늘은 마치 돌싱녀가 소개팅 나온 짝으로 비교적 담대했다.


뭐 이렇게 썼지만은, 속으로는 승전의 기운이 담긴 찬송가를 부르고 주기도문을 읊으며 애써 내 속에 불안에 떨고 있는 자아를 진정시켜야 했다.


면접장에 9시 30분에 도착했고 들어간지 1시간 반 쯤 후에 면접장에서 나왔다. 면접은 끝이 났으니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날의 이야기가 바로 이 글 이었다.

https://brunch.co.kr/@kimsunga/301




그로부터 20여일 후, 발표날이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60 점이라도 좋으니 그냥 합격하게만 해 주세요. 머릿속으로 희망회로를 돌리며, 발표일까지 잠 못이루는 몇날 밤을 보냈다. 그리고 발표 당일에는 더 잠을 못 자서 새벽 1시까지 잠을 못 이루다, 새벽 3시에 한번, 4시, 5시, 6시에 한번 잠에서 깨고 말았다.


발표 당일 아침 9시. 화이자가 온몸에 퍼져 왼팔이 욱신거리던 백신 접종 이튿날인 아침 이었다. 결과에 대한 긴장 뿐 아니라 백신 주사 때문에라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합격자 발표인 9시를 앞두고 새해 보신각 종 앞에서 카운트 다운 하는 마음으로 10초를 세었다.


10, 9, 8, 7....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임에 틀림 없다. 누군가에게는 빠르고 누군가에게는 느린데, 이 날 나는 1초 단위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오전 9시. 으악! 내 손은 나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 주는 큐넷 담당자의 손 보다 빨라서, 축하 문자가 오기 단 몇 초 전에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합격사실을 먼저 알았다.



이 얼마나 보고 싶은 두 글자 이던가.


어제 내가 쓴 글을 같이 사는 반려인이 읽고는 뭐 이런글을 쓰냐고 했지만 나는 기어이 써야 했다. 어제 발행한 몇일 전 쓴 글에는 무기력과 우울, 불안이 담겨 있었고 이를 해소하려고 쓴 글이었다면, 오늘 쓴 글은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쓰는 글이다.


기술사라는 터널을 통과한 해방감. 수능 끝난 고3 처럼 고삐 풀린 채 나만의 시간을 누린다.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취미로 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가치로운지 알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게 글을 쓴다. 그리고 앞으로 더, 가능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글을 더 쓰고 싶다.


아무튼 나는 드디어, 여성 기술사가 되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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