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 놀기 좋은 5월이었지만 고맙게도 한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시험 날이었다. 시험장인 여의도 중학교로 아침 8시 10분에 도착했다. 학교 정문에서는 계산기와 펜을 팔고 있는 상인이 있었는데, 설마 계산기를 안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섰다. 비 오는 아침의 눅눅한 공기를 비집고 교실 안에 도착해서 수험번호에 따라 정해진 내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 온 요약서를 꺼내었다. 시험장에는 8명의 수험생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장갑을 끼고 시험을 봐야 했다.
10문제를 풀어야하는 1교시 시험이 끝났다. 100분이 정신없이 지나갔고 시험이 끝나서야 ‘1교시가 정신없이 지나간다는데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1교시가 끝나고 요약해 둔 종이에서 1교시에서 내가 풀었던 문제에 엑스표를 그었다.
2교시부터 4교시는 서술형 시험이다. 6문제 중 4문제를 골라 답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선택한 4문제를 한 문제당 3페이지가량의 답을 적어내야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2교시 서술형 시험지를 받고서 다행히도 연습했던 문제가 2문제 나와서 놀라기도 하고 떨렸다. 반면 우리말로 쓰여 있는 문제임에도 문장조차 해석이 안 되는 문제들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다차원 나노물질을 사용하는 고분자 복합체의 종류와 문제점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같은 문제랄지...
긴가민가 한 문제들 중 쓰다가 멘붕이 올 것만 같은 문제는 과감하게 제꼈다. 역시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요령이다.
2교시 끝나고 점심시간
남편표 도시락은 떡갈비와 무장아찌, 그리고 볶음밥으로 푸짐한 진수성찬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까지도 시험의 열기가 식지 않아 괜히 심장이 떨리고 팔에 힘이 빠져서 도시락을 다 먹지는 못했다. 주변 수험생 대부분은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을 사 와서 간단히 먹는 듯 보였는데 나는 남편이 아침 일찍부터 정성스레 만들어준 도시락에 괜스레 뭉클한 마음이었다.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아서 3교시가 시작하기 전까지 남은 부분을 살펴봤다. 예상되는 부분은 역시나 핫한 분야인 수소 제조나 수소 저장 공정에 관한 내용일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수소로 가득해 펑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3교시를 정신없이 넘기고 마지막 4교시, 드디어 4교시로구나!
펌프 계산문제, 수소제조, 도면 문제, 컬럼, 플랜지, 역삼투 문제가 나왔다. 역삼투만 빼고 나머지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우, 이건 정말 신이 주신 기회다. 실수하지 말자.’
마지막 바퀴에서 분노의 질주를 하는 쇼트트랙 선수의 집중력으로 달려 나가야 했다. 시험장을 나서면서 한 스푼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마지막 문제는 3페이지를 빼곡히 채워 채점자가 무릎을 탁 칠 만한 답안을 적어내고 싶었다.
마지막 계산문제를 3번쯤 다시 풀어보고 결국 답안지를 제출했다. 마라톤의 골인 지점을 통과한 러너가 맛볼 수 있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실감했다. 그동안 준비해 온 공학 지식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며 불사른 400분이었다. 힘들게 준비한 날들이 무색하리만큼 허무하게 끝났지만 이보다 잘 치룰 순 없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 후, 한 달 후 있을 시험 결과 발표 날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는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