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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대학 등록금 타는 부장님들이 부러워서라도

그 날이 올까

by 아코더

11월 중순이 되면 수능날씨가 찾아온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두꺼운 패딩으로 꽁꽁 싸맨 채 어느 여고에 가서 수능을 봤던 그날의 기온을 옷차림으로 기억한다. 올해 수능 전 날, 팀장이 상무에게 가서 아들이 수능을 봐서 응원 해야 한다고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이제는 그 말을 들으면 부럽다. 내 자식이 언제 세상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판인데, 설령 자식이 태어나 무려 19년을 살고 수능을 치고 입학하여 졸업을 할 때까지 과연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으려나 하는 불안도 몰려온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물가 상승에 더불어 대학 등록금은 전고점을 가뿐히 갱신하고 있다.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들으면 문득 내 자식이 대학 가는 날이 올까,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에게는 까마득한 미래의 일을 팀장님이 살아내는 것을 보면 쌍따봉이 절로 들린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공과대학 등록금이 입학금을 포함하여 거의 50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대는 의대 다음으로 살인적인 등록금을 자랑하는데 도대체 그 이유를 이해 할 수 없다.)


기특하게도 내 자식이 국립대에 가거나 장학금을 받는 효도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는 한 20년 후에도 결국 학자금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돈이 회사에서 나온다니. 그렇다면 국립대든 장학금이든 필요 없는 거 아닌가. 한두 푼도 아닌 큰 비용을 말이다.



대학 등록금은 예비 부모들에게 커다란 숙제다. 그 숙제를 회사에서 말끔히 해결해 준다면 애사심이 학자금 액수만큼 생겨날 것이다. 1-2월 쯤에 학자금 지원 공지가 뜬다. 그 공지를 통해 학자금을 지급받은 부장님들을 보면 내가 내 준 것도 아닌데 꼭 커피 한잔이라도 얻어 먹고 싶어진다. 내가 못 먹는 떡이라 남이 먹는 건 또 못 봐주겠다는 고약한 심보다.


자식들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자연스레 정년퇴직이 임박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정년 나이는 대개 만으로 58세 쯤이 된다. 정년 이후에도 일하시는 무적의 철밥통을 가진 부장님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전문위원 이라는 호칭을 달게 되고, 그 분들이 사는 세계를 우스개소리로 사후세계(그 사는 죽을 사가 아니라 일 사 가 아닐까.)라 부른다.


10년을 넘게 달려 온 것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렇게 두 바퀴를 더 달려야 대학등록금을 탈까 말까 한다. 그 때쯤 되면 명예퇴직 혹은 퇴물이 되던지 아니면 칙칙폭폭 죽는 날까지 회사에 다니는 생명연장의 특권을 얻은 불사신, 사후세계의 슈퍼부장이 되어야 한다. 어쨌거나 그런 부장님들이 부러워서라도 오늘도 성실한 직장인 모드로 20분 일찍 출근해 사원증을 태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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