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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를 찾아야만 하나요

by 아코더

부캐열풍에 동참하겠노라고 팔을 걷어붙이고 좋아하면서도 굶지 않을 일을 찾기위해 맹렬히 고민한다. 여기 이 곳 회사는 나와 안 맞는 공간이며 하루 빨리 탈출하기 위해 본업 아닌, 전공 말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뒤엉켜 수도 없이 많은 일력을 넘기며 헤맨다. 이런 내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건지 좀처럼 찾지 못한다.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찾으리라, 야근을 해도 지치지 않는 나만의 일을 찾으리라 탐색하지만 단단한 벽돌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문득 스스로 벽을 만들어 가두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을 만드는 첫번째 이유는 명료했다. 옆자리 최 부장이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천년만년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월급이 최 부장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최 부장이 나로 하여금 벽돌 쌓는 세포들을 키우게 만든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한명만 데쓰노트에 이름을 쓸 수 있다면 최 부장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 지면서 내 인성 마저 갉아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내 안에 쌓아 둔 벽돌을 깨부수고 정면 돌파 하는 거다. 이 구역에 미친 여성이 바로 나, 하루살이 김 대리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아침 하루치 건강을 챙긴다. 그런 맥락에서 책상에 올려 놓은 홍삼이나 비타민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나를 지치게 하는 건 높은 확률로 윗사람이었지만 때로는 나 자신이었다. 그럴 때는 기꺼이 월급루팡으로 살겠다고 나 자신에게 선언한다. 너무 잘 하려는 마음을 과감히 내려놓는다. 육체의 자아와 정신의 자아를 나누어 본다. 정신의 자아가 육체의 자아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정신의 자아는 100점 짜리 일을 만들겠노라는 일념으로 A부터 Z까지 더듬이를 곤두 세우며 육체의 나를 채찍질한다. 일과 딴짓의 밸런스를 잘 잡을 때 정신이 육체를 사로잡아 결국 쓰러뜨리는 불행을 피할 수 있다.


고분자 소재는 양손으로 잡아당겨 죽 늘어나는 정도와 망치로 톡 때렸을 때 무르거나 강한 정도를 지표삼아 4분면으로 나눌 수 있다. 죽 늘어나면서 무르거나, 늘어나지 않으면서 강하거나, 죽 늘어나면서 강하거나, 늘어나지 않으면서 약하다. 정도에 따라 그 고분자가 유리에 가까운지 고무에 가까운지로 나뉜다. 늘어나지 않으면서 강한 상태의 성질은 적소의 재료가 될 때는 이롭지만 직장생활 전반에서는 마이너스다. 이 바빠지면 금세 늘어나지도 휘어지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단단한 유리가 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니, A부터 Z까지의 더듬이 중에서 모음의 갯수 정도 만큼은 접어두는 것이 월급쟁이의 삶에 이롭다.


결국 '부캐찾기' 카드를 내려놓았더니 '현실안주' 카드를 스스로에게 들이민다. 현실에 안주했다는 마음 가짐은 또다시 나를 갉아 먹는다. 건강챙김과 딴짓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내 안에 벽을 쌓게 하는 최 부장과 정신의 자아를 무찌르며 현실안주도 부캐찾기 카드 없이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축구에서도 적당한 파울이나 옐로우 카드는 경기를 끌고 나가는데 오히려 플러스 요소가 된다. 레드카드 받기 전까지의 옐로우 카드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부상과 옐로우 카드로 부침을 겪으면서도 최후에는 승리하며 경기장을 나가는 모습을 그리며 월급쟁이는 탁상달력을 집어 들고 오늘 날짜에 파란 대각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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