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 수험 준비를 하던 6개월의 기간 동안, 내 일상은 단 3가지 형광펜 으로 칠해질 수 있었다. 집에서 쉬는 시간을 노란색,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파란색,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붉은색으로 말이다.
직장을 다니며 혼자 공부 하는 일상을 유지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사 공부를 하며 200 여일 간 일과 휴식 그리고 공부의 균형을 맞춘 건 앞으로 소개할 네 가지 루틴 덕분이었다.
첫째, 비공개 인스타그램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공부하는 공간으로 나를 밀어넣게 되었다. 꾸준히 스터디카페에서 출석했던 비결은 이 타임리포토에 있다. 타임스탬프나 타임리포토나 어떤 어플이든 좋은데 나는 둘 중 디자인이 심플하고 인터페이스가 단순한 타임리포토를 골랐다.
매일 퇴실하면서 시간과 날짜가 스탬프로 찍히도록 어플을 이용해 책상이나 사물함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출석인증샷은 비공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누구도 볼 수 없는 계정이었음에도 왠지 자극이 되었다.
둘째, 떡볶이 아니면 참치김밥
퇴근 후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길게는 12시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야근을 한 날에는 9시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밥 먹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지독하게도 한 분식집만 갔다. 떡볶이 1인분 어묵 2개 또는 참치김밥 1줄 어묵 1개 정도를 번갈아 먹었다. 여러 메뉴를 조합해 먹어봤지만 포만감에 졸지 않을 정도의 식사량이 나에겐 딱 이정도 였다. (너무 많은가?)
의자가 없어 서서 먹어야 하는 포장마차 같은 분식집이었지만 어차피 오랫동안 앉아 공부해야 하니 서서 먹는 것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셋째, 내가 보는 내 상태 기록표
MBTI 검사 결과 ESTJ인 나는 파워 J 성향의 계획파 인간인나는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엑셀파일의 이름은 PECI2020.Xlsx이었다. (PECI는 Professional Engineer Chemical Industry 의 약자이다)이 파일은어제의 내가 넘겨준 바톤을 오늘의 내가 손에 쥐고 또 내일의 나에게 이어 주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해결해야 하는 기출문제마다번호를 매겨 리스트를 만들고 O, X로상태를 파악했다. 비고란에는 현재 상태에 대해 간략히 적었다. 가령 어떤 자료를 통해 기출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계획을 적거나 정말 모르겠으면 "GG.포기"라고 썼다. 그렇게 쉬운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다 보니 마치 유리병에 큰 돌멩이부터 작은 모래까지 담아 넣어 결국 유리병을 가득채우고야 마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넷째, 가족의 응원
밤 11시 혹은 12시가 되면 스터디카페로 와준 남편이 이제와 생각해 보니 참 고맙다. 너무 피곤해서 스터디카페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상 내가 정한 시간을 채우려 했던 건 남편이 늦은 시각에 와서 기다려 주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소개한 '타임리포토'가 눈에 보이는 효과라면 백마탄 왕자님의 기다림(차 끌고 와서 기다리는 남편)은 심적 압박이었다. '와이프는 늦게 까지 공부하는 사람이니 그 때 데리러 가야 겠다.'라는 그의 믿음과 헌신이 있으니 그 때를 채우지 못하고 이른 시간에 가면 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야말로 심적 압박을 위한 두번째 장치였다.
내게 다른 기술사도 도전해 보라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지만 나는 단칼에 포기했다. 왜냐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상 속으로 다시 걸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따분한한 땀 한 땀이 모인 하루하루들이었는지를 그 땐 몰랐고 글로 쓰다보니 새삼 실감이 난다. 그 기간에 내게 주어진 숙제를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나 혼자 버텨내야 했으며그건 마치 머리 위에 물양동이를 이고 개울가를 건너는 심정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많았지만 결국 그 작은 루틴의 실천들이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합격이라는 마지막 피스를 넘어뜨린 것이다.
30대 초반 나 자신에게 던진 도전을 이뤄내면서 자신감을 얻은 건 덤이었다. 나 자신을 더 멋진 버젼의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여정은 생각보다 작은 행동의 실천들로 연결되었다. 무언가를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내 작은 루틴을 늘어놓은 투머치 인포메이션이 담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