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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n 06. 2023

엄마를 떠올린 순간들

아래로 피는 꽃



엄마의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세었고 나풀나풀 늘어졌다. 오늘내일 돌아가실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엄마는 나에게 의지하려 했다. 엄마와 아직 안 가본 데도 많고 한 마리에 100만 원 한다는 제주 다금바리도 못 잡숴 봤다. 엄마에게 받은 만큼 주고픈 사랑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한 순간에 병약해지시니 눈앞이 아득하고 후회가 몰려왔다. 다행히 꿈이었다. 아침에 따릉이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꿈이 자꾸만 맴돌았다. 꿈이란 때로는 등골 서늘한 아침을 맞이하게 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5분 컷으로 화장을 하는 동안 꿈의 내용을 모두 잊었다.

점심에 돼지고기가 들어간 하이라이스를 먹고 당산 초등학교 주변을 산책했다. 초록빛을 잔뜩 머금은 나뭇잎파리는 반짝였고 정지 표지판의 붉은색은 태양빛을 받아 평소보다 채도가 쨍하게 올라갔다. 양산을 쓰고 거닐다가 아래로 고개를 숙인 꽃을 보았다.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내주려고 이름 모를 꽃을 사진으로 남겼다.

평소보다 점심산책을 오래한 건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 아까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꽃의 이름이 문득 궁금해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검색해 볼까 고민하다가 ‘아래로 피는 꽃’이라고 검색했다. 표면은 리넨 소재 원피스처럼 하늘하늘하고, 개중에 어떤 꽃잎은 가지의 채도를 20%로 준 만큼 연한 보랏빛을 띄기도 했다. 꽃의 이름은 ‘초롱꽃’이었다. ‘초롱꽃’이라니 이름도 어찌나 청순한지, 꽃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나만 알고 싶은 카페를 만난 듯 나는 설렜다.

퇴근 후 집에 걸어가는 길에 엄마에게 초롱꽃 사진을 보냈다.
나 :  ‘꽃이 너무 예뻐어.’
엄마 :  ‘딸이 더 예뻐어.’


엄마와 이렇게 카톡 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데 엄마가 갑자기 병들어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꿈속에 나타난 엄마가 떠오르며 불안이 급히 내게 노크했다. 초롱꽃을 발견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늘 건강하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훗날 손 흔드는 날이 오더라도 엄마의 인생 동안 딸에게 받은 사랑도 컸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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