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 사진이 없어서 돌잡이 때 뭘 잡았는지 알 수 없다. 엄마에게 30여 년 전 내 돌잔치는 있었는지, 있었다면 돌잡이는 했는지 물었다. 엄마는 조촐한 돌잔치를 했었고 연필을 잡았다고 했다. 요즘이야 돌잔치 때 돌잡이 사진을 다 남기곤 하지만 나는 돌잔치 사진 한 장 남지 않았으니 그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연필을 잡았다는 말이 그냥 마음에 들어서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 삶을 살펴보면 연필을 정말 잡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한다는 뭐 그런 거 말고, 정말로 필기구를 손에 쥐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삶을 지속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친정집에 가서 문득문득 놀랄 때가 있다. 자영업을 하시는 아빠가 일에 대해 빼곡히 기록해 둔 노트를 보면 당신의 인생에 성실과 열심이 묻어난다. 아빠는 해가 지난 나의 회사 다이어리를 가지고 계속 사용 중이다. 본의 아니게 4살 조카가 붙여둔 빨강 노랑 파랑별스티커들로 '표꾸' (다이어리 표지가 꾸며진)가 되어 있는 몰스킨 라지 사이즈 노트인데 퀄리티가 좋은 제본형 다이어리라 오래 쓰고 계신다. 다 쓰시거든 날짜도 맞는 좋은 노트로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절대 사지 말라고 한사코 말린다. 그냥 있는 노트 쓰면 된다며.
설교시간에는 교회 주보나 작은 교회 수첩에 설교 내용을 적는 우리 엄마, 전 권사님. 그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나도 성경공부를 하며 혼자 쓰는 노트를 따로 마련했고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들을 때 그 노트에 끄적이곤 한다. 예배가 끝나면 사진을 찍어서 성가대 사람들 단톡방에 공유해 주곤 하는데,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정리를 잘했다고 종종 칭찬해주시기도 했다.
업무 기록도 교회 기록도 모두 아빠와 엄마에게서 보고자란 대로 배우며 컸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파워 노트 유저가 된 게 아닐까. 분명 스마트폰이 있음에도 펜과 종이를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심지어 스마트폰도 갤럭시 노트를 오랫동안 썼는데 이제는 노트펜이 없는 핸드폰을 고를 수 없다.
집현전 한켠에 노트들을 죽 모아둔 이동식 트레이가 있다. 보통 A6사이즈 노트를 즐겨 쓰는데 트레이 사이즈 가로폭이 마침 딱 맞아서 보관해 두기 좋다. 트레이 안에 노트들이 한 권씩 쌓여 가는 걸 보면 뿌듯하고 그 노트 안에 얼마나 많은 내 추억과 생각과 기쁨과 슬픔이 들었는지 알기에 더욱 보물 같은 트레이다. 필기구를 쥐고 노트에 끄적이는 이 삶이 싫지 않고 오히려 점점 좋아지는 걸 보면 나는 정말 돌잡이 때 연필을 잡은 게 맞나 보다.
100살까지 산다고 보고 인생의 3분의 1 지점인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 교회에서 하는 일들까지 나는 리더자리에 있기보다는 서기를 도맡아 했다. 전생에 내가 만약 관료직에 있었더라면, 한지 뭉탱이와 문방사우를 들고 다니며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으로 남은 3분의 2 인생도, 계속 이렇게 손에 필기구를 쥐고 쓰는 이 마라톤을 이어갈 것 같다. 나보다 30년 이상을 먼저 가고 계신 엄마 아빠의 '쓰는 삶'을 바라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