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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Dec 11. 2020

합정 말고 당산이 신혼집이라 다행이야

사실 우리는 동거인이었다


스물다섯 살, 사회생활을 시작한 3년 차가 되었을 때 자취를 선언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유교걸 성향이 강했고 모태 신앙인 내가 20대 인생 최대의 반항을 했다.

자취를 하겠다고 했다.

서울대 입구역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살았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래가지 못한 반항이 끝나고 집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빠의 호통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아버지의 호통.


너 그럴 거면 집 나가!



그 길로 나는 집을 나왔다.




자취의 서막을 이야기하기 위해 스토리를 짧고 굵게 펼쳐 보았다.



그리하여 자취를 시작했다. 첫 자취방은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 위치한 곳이었다. 회사는 을지로 입구역, 본가인 인천에서는 공항철도를 타야 했기에 딱 중간인 홍대입구역으로 정했다. 미친 자유의 나날을 보냈다. 홍대의 스웩을 느끼느라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의 감성을 고대로 살려서 한 자 라도 더 끄집어냈더라면 지금 보다 더 재미난 글을 많이 썼을 텐데) 새벽 2시에 살사바 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혼자 봉9비어에 가서 혼술도 했다. 재밌는 이야기가 더 많은데 여기까지 한다.



아무튼,



홍대입구에서 자취하며 주체할 수 없는 20대 에너지를 뿜어내다가 회사가 금융의 메카인 여의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여의도까지 다니기에는 거리상 멀지 않았으나 콩나물시루 같은 9호선의 혼잡함을 며칠 느끼고는 이사를 결심했다.



내 명의의 인생 첫 이사였다.

혼자 사는 자취러가 되고 처음 이사한 집은 영등포구청역 도보 7분 거리 당산로 ΔΔ 204호였다. 9평 남짓의 오래된 다가구 주택이었다. 204호에는 체리 주방가구가 있었다. 이해를 돕고자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창문은 오른쪽으로 돌리면 잠기고 왼쪽으로 돌리면 열리는 문고리가 있었다. 아마도 연식이 좀 되신 분은 어떤 문고리인지 아시리라.


그렇게 오래된 곳에서 나 혼자 살았다. 내가 스물여섯 살 때였다. 전세 6천5백만 원이었다. 그 당시 당산역 부근 원룸 치고는 싼 가격이었으나 26살인 나의 체감 가격은 거의 6억 5천 아파트 수준이었다.


그곳에서 살다가 진급도 하고 사내연애도 했다. 사내 연애를 하며 만났던 과장님은 우리 집 '동거인'이 되었다. 나보다 7살 많은 과장님은 사우디아라비아 '움 우알'이라는 지역에서 출퇴근을 했다. 한마디로 남자 친구가 해외 파견을 가서 호적상 동거인이라는 얘기다.



사우디에 가기 전, 과장님이 민트색 상자속 반지를 건네며 프로포즈를 했다.


Would you marry me?


여자는 작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OK, 승낙이다.

결혼을 약속했다. 눈물이 났다.



그 이후 몇 년의 세월을 영등포구청역 부근에서 살다가 동거인인 과장님과 결혼을 했다.

서울 부동산이 어떻든 저떻든 간에, 살면서 편했던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서 신혼집을 구했다. 당산동에 살아서 참 좋다.



홍대입구역에 살았다면 몰랐을 거다.

출근길 양화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63 빌딩의 아름다움을

퇴근길 양화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선유도의 저녁노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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