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를 안무하다 - 장소

살레르노의 밤

by 김성용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의 작업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먼저 장소를 기억한다. 그곳에서 나는 살레르노 출신 안무가 Claudio Malangon과 함께 듀엣 작품을 만들었다. 함께 춤추고, 함께 안무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동작을 교환하기보다 서로의 상태를 오래 바라보며 통과하고 있었다. 협업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각자의 삶이 잠시 겹쳐지는 밀도의 시간이었다.


Claudio는 정신과 의사 이기도 했다. 그 직업은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룬 결과라고 담담히 말하곤 했고, 나는 안무가가 나의 첫 번째 직업이라고 조금은 단호하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예민함과 따뜻함은 분리된 성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태도와 선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나는 편안해졌지만, 작업 이야기가 시작되면 늘 긴장하게 되었다. 그 긴장은 불편함이 아니라, 용기와 배려를 동시에 요구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늘 협업자로서 정확한 거리와 집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살레르노의 기억은 감각으로 먼저 남아 있다. 따가운 햇살, 푸르른 바다, 지나가는 행인의 짧은 머리카락까지 흩어지게 만들던 바닷바람. 그리고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피스타치오와 민트 맛의 젤라토. 그것들은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 그곳에 머물던 나의 상태를 구성하던 요소들이었다. 나는 그 도시를 이해했다기보다, 그 안에서 특정한 감각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달 남짓 머물며 리허설을 했던 공간은 에어컨이 없는, 깊이 없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스튜디오였다. 우리는 리허설을 할 때마다 늘 땀범벅이 되었고, 숨이 가라앉을 틈 없이 몸을 다시 움직여야 했다. 그 공간은 쉬이 관대해지지 않았고,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버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그 장소의 조건을 끊임없이 몸으로 계산하며 작업하고 있었다.


리허설이 끝나면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식탁 위에서는 각자의 노트를 꺼내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고, 그날의 선택과 망설임을 다시 짚어보았다. 우리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했기에, 이 시간은 언제나 더 신중해야 했다. 제한된 언어 안에서 정확한 뉘앙스를 전달해야 했고, 말해지지 않은 감정까지 함께 다뤄야 했다. 이견이 생기는 순간도 종종 있었는데, 콩글리쉬 수준의 나의 영어로 예의를 지키며 통역을 거쳐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의미는 조금씩 미끄러졌고, 그 미끄러짐을 다시 붙잡는 데에는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이 끝난 뒤에도 늘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지지 못했다. 더 무거워진 생각과 걱정, 새롭게 드러난 문제, 그리고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해결의 가능성을 동시에 안은 채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작업은 리허설실을 벗어나서도 계속되고 있었고, 몸은 멈췄지만 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작품은 함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싸우면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이때만큼 실감 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이 있다.

연이은 리허설로 피로가 쌓여 우리는 점점 더 예민해졌고, 다음 날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나 욕구를 만들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던 밤이었다. 저녁 식사와 회의를 마치고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 즈음, Claudio가 갑자기 자기 집에 가서 수영을 하자고 말했다. 순간 나는 이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이 시간에, 수영이라니.


하지만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제안을 쉽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단호하면서도 애절한, 부탁에 가까운 권유였다. 결국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에는 살레르노의 기운을 그대로 품은 정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눈사람을 닮은 모양의 수영장이 놓여 있었다. 지역의 아름다운 식물들로 둘러싸인 그 공간은, 낮의 뜨거움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팬티 차림으로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차갑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 그 감각마저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살레르노의 하늘에 반짝이던 별들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 중 가장 정신이 또렷해졌던 경험으로 남아 있다. 생각은 멈추고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통역 없이 함께 있었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 설명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시간 속에 잠겨 있었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졌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밤 이후 우리의 작업은 다른 리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치 그 시간이 우리를 다시 정렬해 준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가 정신과의사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밤의 수영이 어쩌면 우리를 위한 하나의 처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몸을 차갑게 식히고, 말을 멈추고, 상태를 잠시 리셋하는 일. 그 처방은 동작보다 먼저, 우리를 다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데려다주고 있었다.


작품을 만들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안무는 결코 추상적인 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품은 언제나 현실의 물리적 조건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장소, 기후, 함께 작업하는 사람의 이력과 언어,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갈등의 밀도까지. 그 모든 것들이 동작 이전에 이미 몸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


살레르노에서의 듀엣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장대한 개념에서 출발한 작업이 아니라, 그곳의 공기와 공간, 싸움과 침묵, 그리고 별 아래의 차가운 물속에서 잠시 멈추어 섰던 상태에서 비롯된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나 세부는 흐릿해져도, 그때의 상태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안무한다는 것은 움직임을 배열하는 일이기 이전에, 피할 수 없는 조건 안에서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부딪히며, 언제 멈출지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살레르노의 그 밤처럼. 그 선택들이 쌓여 하나의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은 끝내 그 시간을 살아낸 우리의 상태를 닮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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