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주지 않는 책임
이 방식을 함께 겪고 있는 프로세서들, 그러니까 이 작업에 참여하는 무용수들을 생각하면 나는 종종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안에서 그들은 단순히 안무를 전달받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들을 무용수이기 이전에, 하나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용수’ 대신 ‘프로세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그 부담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이 그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process init은 분명 친절한 작업 방식이 아니다. 미리 정해진 동작을 주지 않고, 도착해야 할 형태도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프로세서들은 매 순간 자신의 몸 상태를 먼저 살피고, 지금 이 움직임을 선택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종종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들이 리허설 공간에서 멈칫거리는 순간들을 알고 있고, 그 망설임이 결코 게으름이나 준비 부족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흔들린다. 적어도 이 장면만큼은 명확한 안무를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이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움직임은 누구를 설득하려는 것인가. 이 방식은 정말 이 프로세서들의 몸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로 향한다. 이 방식을 택한 내가, 과연 이들을 충분히 지지하고 있는가.
process init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 방식이 프로세서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방식만이 그들의 몸을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남게 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동작을 주는 순간, 프로세서의 몸은 다시 누군가의 선택을 정확히 재현하는 도구가 된다. 반대로 지금의 방식은 불안정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컨디션과 한계,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든다. 나는 그것이 기술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다만 이 방식이 주체성을 요구하는 만큼, 나 역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효율을 이유로 침묵을 방치하지 않기, 질문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 그리고 설명하지 않는 대신 듣는 시간을 더 확보하는 것. 프로세서들이 막연한 불안 속에 홀로 서 있지 않도록, 내가 어떤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는지, 무엇을 아직 유보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공유해야 한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는 함께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여전히 효율적이지 않다. 작업은 느려지고, 프로세서들 역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움직인다. 때로는 나조차 이 장면을 왜 남겨두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방식 안에서의 효율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의 밀도에 가까워진다. 내가 그들의 몸을 대신 설명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이상, 그 선택이 방치로 읽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나는 이 프로세서들이 이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길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몸의 상태에 더 민감해지길 바란다. 잘 보이기 위한 동작보다, 지금 남아 있는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움직임이 무대 위에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건 그들의 몸에서 출발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내 몫이다.
그래서 이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고집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겠다고 선택한 이상, 그 솔직함을 프로세서들에게만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방식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가혹하다. 나 역시 설명을 유예하고, 확신 없는 결정을 견뎌야 하며, 때로는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함께 걷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길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작품은 남고 사람은 남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이 프로세서들이 걱정된다. 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이 방식을 버리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더 잘 듣고, 더 천천히 가고, 더 자주 이유를 묻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지시하기보다는 구조를 다듬고, 답을 주기보다는 함께 견디는 방향으로. 이 방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작업과 이 사람들에게 가장 정직한 방식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process init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