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그리고 자기 언어를 안무하는 시간
베트남 호치민 국립무용학교에서 현대무용 기초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을 위한 교육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서른 초반의 나는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고 호치민 땅에 첫발을 디뎠다.
처음 만난 선생님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가지고 있었다.
발레를 전공한 사람, 전통무용을 몸에 익힌 사람, 현장에서 활동하던 안무가, 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한 이, 군인 신분으로 무용을 택한 이까지. 그들의 몸에는 각자의 문화와 훈련의 기억이 이미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현대무용을 가르친다는 것은 새로운 움직임을 얹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겹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몸은 언제나 과거를 품고 있고, 교육은 그 과거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그때 내 곁에 있던 사람이 Tan Loc이었다. 그는 나의 통역이었지만, 사실은 이 도시와 나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존재였다. 단정한 인상과 조용한 태도 뒤에 강한 의지를 품고 있던 사람. 매우 동안이었던 그는 나보다 일곱 살 많은 형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도시 외곽의 낡은 건물 2층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춤을 배우고 싶지만 배울 곳이 없는 젊은 무용수들이 모여 있었다. 발레리나, 스트릿댄서, 아크로바틱을 연습하는 청년들, 현대무용을 갈망하는 아이들. 좁은 공간은 뜨거웠고, 그 열기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곳은 훗날 Arabesque Dance Company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베트남 최초의 민간 프로페셔널 컨템포러리 무용단. 그러나 그 시작은 제도나 지원이 아니라, ‘춤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결심이었다.
이후 나는 세 번이나 호치민 국제 무용축제를 찾았다. 국가의 지원 없이 국제 축제를 운영하는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조건이 아니라 방향이 먼저였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대나무였다.
그 땅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가볍지만 강하고, 유연하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존재.
그는 대나무를 소품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을 구조로 삼았고, 움직임의 선으로 삼았으며,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삼았다. 대나무는 그의 안무에서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었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동시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품는 매개.
그는 오랜 시간 같은 재료를 반복하며 자기 언어를 다듬었다.
자기만의 재료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 그것이 결국 그의 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언어는 국경을 넘었다.
Cirque du Soleil이 Avatar를 바탕으로 제작한 공연 **TORUK – The First Flight**에서 그는 총괄 안무자로 참여했다. 도시 외곽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대나무의 움직임이 세계 최대 규모의 무대로 확장된 제임스카메론과의 협업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분명히 배웠다.
자기 언어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안무되는 것이라는 사실.
반복하고, 실패하고, 다시 다듬으며, 자신이 선택한 재료와 끝까지 씨름하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일 때 비로소 하나의 색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색은 결국 세계와 만난다.
이제 Loc 형과 나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함께 작업을 만들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각자의 길을 응원하는 관계가 되었다.
나는 그를 통해 또 다른 질문을 얻었다.
예술가는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는가.
아마도 답은 단순하다.
자기만의 재료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
대나무는 그의 재료였고, 동시에 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또 하나의 춤의 이유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