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에서 춤추다
서울 삼청동에 새롭게 문을 연 BARAKAT의 오프닝에서 의미 있는 축무를 부탁받았다.
이 공간의 대표는 Fayez Barakat. 오랫동안 예술적 동료로, 허물없이 지내온 친구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가문은 4대째 고대 예술을 수집하고 소개해 왔고, BARAKAT은 그 유산을 바탕으로 세계 주요 도시에 자리해 온 공간이다. 그리고 이제, 그 흐름이 서울로 이어졌다.
나는 먼저 그 공간이 궁금했다.
갤러리의 안과 밖을 천천히 걸으며, 이 장소가 축적해 온 시간과 공기를 몸으로 가늠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나의 질문이 따라붙었다. 정해진 식순 속에서, 마지막 차례가 될 나의 공연은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가.
이곳에서의 춤은 단순한 축하의 제스처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이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적 밀도에 응답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느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세단, 벤틀리 한 대가 서 있었다.
여러 색의 물감과 거친 붓질로 범벅이 된 그 차는 하나의 추상적 조형물처럼, 갤러리 건물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으로 그 자리를 점유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실내에 있던 관객들이 마지막 공연을 함께하기 위해 모여들 수 있는 이유이자 장소로, 그 마당과 그 차는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회화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한 Fayez Barakat은, 자신의 애마였던 그 차를 운전하다가 떠오른 영감을 따라 길가에 차를 세우고 며칠 동안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워낙 고가의 차이기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이 작품은 중동에서 서울 삼청동까지 옮겨오는 일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차와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동안 나는 그 차 주위를 맴돌며, 나와 나의 움직임이 이 존재와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을지를 탐색했다. 점점 차가 품고 있는 색감이 하나의 생물체처럼 느껴졌고, 그 생명력과 나의 몸이 서서히 하나의 상태로 겹쳐지는 감각이 찾아왔다. 조심스레 접촉을 시도하다가, 결국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매달리고, 올라타도 괜찮겠느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더 힘껏 해도 괜찮아. 무엇이든 염려 말고, 모두 해보고 그 안에서 찾아봐.”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가장 비싼 작품 위에서 춤을 추는 경험을 했다.
나와 그 벤틀리가 하나의 상태가 된 순간들로, 식순의 마지막을 채울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모여 있던 하객들 앞에서 그가 나를 소개하며 덧붙인 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돈과 권력보다, 예술의 가치가 더 높습니다.”
그 말은, 그날의 춤이 놓여 있던 자리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