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오라고 말하기까지
Process init으로 무브먼트 리서치 워크숍을 오래 이어오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장면들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구조를 완성하지 않은 채 열어두고, 각자의 감각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두는 시간. 그 안에서 무엇이 생겨나는지 지켜보는 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과정 속에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무용수 각자의 고유한 날것의 결이 부딪히고, 밀리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묘한 밀도. 그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설계한 결과도 아니었다. 다르지만 함께라는 말이 그 순간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장면들이 워크숍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기록되지 않은 채 흩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작품이 될 수 있기를, 아니 어쩌면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Process init으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따라왔다.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았고, 나 역시 완전히 체화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방법을, 내가 믿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대 위에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무용수들에게 “일단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두려웠다.
선택하는 순간, 그 결과가 내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망설였고, 몇 번은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정해야 했다. 안무가는 피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밀어붙인 이유를 지금 돌아보면, 확신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보았던 어떤 가능성, 설명하기 어려운 밀도, 함께 서 있던 순간의 떨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완성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그 장면들이 진짜라는 감각이 더 컸다.
멈추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그 순간들이 너무 빠르게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준비된 안무가라기보다, 사라지기 직전의 장면을 붙잡고 서 있는 사람에 가까웠다.
지금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Process init 역시 닫힌 이론이라기보다는 계속 수정되고 흔들리는 구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선택한다. 열려 있던 것을 고정하고, 가능성 중 하나를 남긴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감당한다.
아마 안무란, 확신에서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결정을 미루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망설임 끝에
하나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