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를 안무하다 - 기준

말로 할 수 없는 말

by 김성용

며칠 전 렉처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작품을 본 뒤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에 몇몇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느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의 느낌을 말하기 전에 맞는 답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비교와 평가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 왔다. 더 정확한 답을 찾는 방법, 더 효율적인 방식,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준. 그 과정은 분명 필요했을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점점 자신의 감각보다 먼저 기준을 찾는 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느꼈는지 묻기보다 무엇이 맞는지를 확인하려는 태도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술을 경험할 때도 비슷한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작품을 본 뒤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의미를 알고 싶어 하는 모습. 무용은 특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야기처럼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 하나의 해석으로 정리하기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날은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채 지나가기도 한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느 날은 마음에 오래 남고,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듣기도 한다. 외부의 조건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의 경험은 분명 다르게 남는다.


작업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다. 동작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보다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떤 날은 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어떤 날은 계속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들. 그 차이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려 할 때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무엇을 계속할지, 무엇을 멈출지, 무엇을 조금 더 지켜볼지. 아주 작은 선택들이 이어지면서 하루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창의적인 생각도 그렇게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기보다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들 속에서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 누군가 정해 준 답이 아니라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해 보는 순간. 그래서 예술을 경험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라기보다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이 기억에 남았는지, 무엇이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그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기술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질문에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래서 예술교육은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무용은 특히 논리로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만큼 자신의 감각을 그대로 두어 보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무엇을 보았는지 돌아보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기준은 조금씩 또렷해진다.


나는 무용을 이야기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만,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분명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된다.


삶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순간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익숙한 방식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기준 속에서 선택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스스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 속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낯설게 마주하는 무용이 어쩌면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잠시 머물게 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바라보게 되는 시간. 그 짧은 머무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


그래서 나는 무용을 소개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하게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해하기 전에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들,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오래 남는 감각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언어로 정확히 옮기기 어려울 뿐이다.


어쩌면 예술은 그 말해지지 않는 부분을 그대로 두어 볼 수 있게 하는 시간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경험.


그래서 무용은 특별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쉽게 말해지지 않는 감각을 다시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말로 할 수 없는 말.


아마 우리는 이미 그 말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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