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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나처 Nov 04. 2024

연민 그리고 정

스토리 #8

창 너머로 농부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어제는 커다란 트랙터가 바삐 움직이더니 아주 예쁜 이랑과 고랑 만들어 놓았습니다.

작은 초록 식물이 한 땀 씩 수놓아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작물 심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느티나무님이 저와 같이 창밖을 내다보고 계시길래 여쭤 보았습니다.



“어르신 밭에 일하시는 저분들 뭘 심고 계실까요?”

“콩이요 콩 심고 있어요”

“어? 어떻게 아세요?”

“지금 콩 심을 때예요”

“지금이 몇월달 인데요?”

“육월이요. 열무, 얼갈이 심었다, 다 뜯어다 팔고 지금은 콩도 심고 깨도 심어요. 들깨, 참깨요.”

“어르신도 젊어서 농사 지으셨어요?”

“그럼요, 농사 져서 애들 가르치고 먹고살았죠. 이 손으로 평생 농사 졌어요. 우리 안식구 하고…” 잠시 멈추고 저를 돌아보며 “우리 안식구 고생 많이 했어요” 하십니다.

느티나무님 손을 보았습니다.

커다란 손 마디마디가 둥근 구슬 하나씩 얹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창밖 초록색이 느티나무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나 봅니다.

오늘 느티나무님은 점잖은 마을 이장님 향기가 납니다.

평소에는 아주 폭력적이시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자주 하시곤 합니다.

방금 식사하셨음에도 “이 개 같은 년들 밥 가져와 배고파” “이년들이 날 굶겨 죽일려고 밥을 안주네”하시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십니다.

욕 하기 시작하시면 손 찌검도 같이 하시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욕 하실 때 특효 약이 있습니다.

느티나무님의 흥분 누그러뜨리는 우리들만의 비법입니다.

너무 신기할 정도로 딱 멈추십니다.

그 비법은 댁에 계신 할머니 존함 말씀 드리며 “ㅇㅇㅇ님 아세요? 누구세요?”

“우리 안 식구야 고생 많이 했지…”하시며 찰나의 평온함으로 돌아오십니다.



같이 살아오고 고생하셨던 그 세월이 연민의 정으로 남아 있어서 자식들 이름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느티나무님 안식구 존함만 기억하고 계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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