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36
살짝 들어간 부분을 엄지 손가락 끝에 힘주어 주황색 껍질을 벗겨냅니다.
속살도 주황색으로 코끝에 향기를 던져주며 입속으로 들어가는 귤의 상큼함은 더할 나위 없는 싱그러운 맛입니다.
그 뒤로 나이에 빌붙어 따라온 시린 잇몸이 제 얼굴에 오만상을 그려 줍니다.
괜스레 서러워집니다.
보란 듯이 환한 표정으로 귤 하나 더 먹어봅니다.
오후 간식으로 나온 귤을 까서 어르신들 치아 상태와 소화력에 따라 잘게 썰거나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드립니다.
물론 통째로 그냥 드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어 합죽입을 하고 계시는 튤립꽃님 앞에 갈아진 귤 담은 컵을 놓아드렸습니다.
"선상님 나는 왜 귤 안 줘요?"
"어르신 치아가 없어 드시기 좋게 갈아드렸어요 주스처럼 드세요"
"이게 무슨 귤이에요? 난 이 없어 잇몸으로 사과도 베어 먹을 수 있어요"
"통째로 줘요 내가 까서 먹을 거예요" 하고 역정을 내십니다.
우리는 통째로 드리고 잘 살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튤립꽃님은 귤을 입에 넣으시고 오물오물 치아가 다 있는 듯 씹으시며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귤 즙을 츄릅츄릅 흡입하시며 맛있게 드십니다.
튤립꽃님과는 가끔 이렇게 식사나 간식 시간에 실랑이가 오고 가곤 합니다.
그럴 때면 치아가 없는 이유를 옛 회상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열아홉 살에 큰따님을 낳으셨다고 합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출산을 해도 몸조리는 고사하고 밥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호사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출산하고 기진맥진해 누워계실 때 시어머님이 옥수수를 쪄다 주셔서 허겁지겁 드시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입에 있는 것을 뱉어보니 치아가 빠져나왔다고 하십니다.
"어찌나 옥수수가 맛있었는지 이가 빠진 줄도 모르고 먹었어요 한꺼번에 왕창 다 빠져서 밭고랑에 파묻었어요 그 뒤로 그냥 여태껏 잇몸으로 살았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놀라워하며 우리들은 반신반의하며 들어 드렸습니다.
참으로 삶을 단단하게 다지며 살아오셨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튤립꽃님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 잇몸은 잘 간 칼 보다 더 잘 자르고 씹을 수 있어요"
"이깟 귤쯤이야"
귤 하나 다 드시고 하나는 주머니에 넣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