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48
남자 어르신 생활관 쪽에서 천자문 읽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옵니다.
옛서당에서 읽는 것처럼 박자감까지 맞춰 읽고 계십니다.
살며시 다가가 보니 전나무님이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겨가며 읽고 계십니다.
'하늘천'하시고 한 장 넘기시고 '따지' 하시고 또한 장 넘기시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으실 때마다 책장을 넘기십니다.
글을 보시고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예전에 외우셔셨던 천자문을 생각나는 대로 읊고 계시는 겁니다.
전나무님은 입소하실 때 각종 상장과 상패 훈장들을 커다란 가방 가득히 가져오셨습니다.
그 속에는 여러 권의 책도 있었습니다.
"내가 ㅇㅇ경찰서 서장이었어요"
"표창장도 내가 다 휩쓸고 대통령 훈장도 받은 사람이요"하시며 다른 어르신들께 자랑하시곤 하셨습니다.
전나무님은 자랑스럽게 말씀하시지만 다른 어르신들은 반응이 없습니다.
그럴 때면 침상에 걸터앉으셔서 꼭 책을 펴 놓으시고 천자문을 읊으십니다.
아무도 들어 드리지 않습니다.
천자문 읊는 소리가 나면 저는 전나무님에게로 갑니다.
눈이 침침해지시고 귀도 어두워지셔서 답답하실 텐데 몸을 좌우로 흔드시며 박자에 맞춰 읊으십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읊으시는지 눈으로 안 보면 정말 글자를 보고 읽고 계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관객처럼 옆에 서 있는 저를 보시면 더욱 큰소리로 읊으십니다.
한 글자에 책장 한 장씩 넘기니 천자문은 금방 끝납니다.
그다음은 옆에 있는 제게 가방을 올려 달라고 하십니다.
가방 속에 물건이 어찌나 많은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무겁습니다.
그때부터 상장과 상패들을 하나둘씩 꺼내시며 "이건 내가 ㅇㅇ파출소 근무할 때 받은 거 또 이건 나쁜 놈들 많이 잡아서 받은 거..."
"나만큼 하는 사람이 없었어"
"내가 그런 사람 이요"하시며 끝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이렇게 라도 자랑하고 싶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에 한참을 들어 드립니다.
전나무님의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천자문을 읊게 하시고 상장들을 보고 또 보시게 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