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분석부터 정책적 함의까지
*현재, 관련한 조사가 스페인 당국, 유럽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제한된 정보와 추론을 통해 작성된 바로 향후의 조사결과에 따라 모호한 지점들이 보다 명확해질 것입니다. 본 글은 현 시점(2025년 5월 15일 기준)에서 최대한 틀리지 않은 선에서 작성해봤습니다.
스페인 전력망은 2025년 4월 28일 정오 경 전례 없는 대규모 정전 사태에 직면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 그리고 프랑스 남서부 일부까지 순식간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수천만 명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스페인 역사상 최악의 블랙아웃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설비 고장이나 운영 실수 이상의 복합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본고에서는 해당 사태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과학기술적 분석과 정책적 평가를 통해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각 장마다 사건의 맥락과 기술적 배경을 설명하고 의미를 해석하며 향후 대응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스페인 대정전은 현대 전력망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과제들을 드러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전력망에 대한 교훈과 대비책도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1장. 지진 발생 메커니즘과 송전망에 대한 1차 충격
1.1 상황 개요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강타한 대규모 정전 사태의 초기 원인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되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초기 비공식 추측 중 하나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특히 그라나다 인근에서 국지적인 지각 운동이나 자연 현상이 전력 인프라에 충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안달루시아는 유럽-아프리카 지각판 경계에 인접해 있어 역사적으로 중규모 지진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정전 당일 스페인 내에서 특이한 지질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으며, 지진계에 뚜렷한 진동 기록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진이 원인이라는 가설은 현재로서는 근거가 부족한 추측에 불과하다.
관련해서 나오는 말들을 정리하면,
“정전 원인을 규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복잡한 문제로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단순한 답변은 없을 것”
"우리는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분석 중입니다. 또한 발전 손실이 발생한 위치를 식별하는 데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이미 그라나다, 바다호스, 세비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력 손실은 ”전력망 외부 원인"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이는 발전소 자체나 REE가 관리하지 않는 소규모 전력망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발전량 손실의 가능성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전압을 조사 중이다"
"조사팀이 REE 전력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전력망 용량 부족을 모두 배제했다"
https://www.reuters.com/business/energy/power-generation-loss-spains-blackout-started-granada-badajoz-seville-2025-05-14/
1.2. 기술적 배경
자연재해, 특히 지진과 같은 물리적 충격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 피해와 연쇄적 효과로 구분된다. 강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송전 철탑의 기초가 흔들리거나 구조적 약점이 있는 철탑이 붕괴할 수 있으며, 고전압 송전선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단락(스파크)이나 애자 파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변전소 내 변압기나 차단기 같은 주요 설비도 지진의 동하중에 취약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이 감지되면 발전소의 자동 정지(스크램)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을 위해 미세한 진동에도 정지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화력발전소나 수력발전소 역시 보호 계전기가 작동해 발전을 중단한다. 이러한 1차 충격은 송전선 단선, 철탑 붕괴, 변전소 정전 등 물리적 피해를 초래하며, 전력 공급 경로가 차단되어 대규모 정전의 단초가 될 수 있다.
1.3 해석
스페인 정부는 2025년 4월 28일 정전 사태의 초기 충격 지점으로 그라나다 변전소를 지목했으며, 이곳에서 시작된 발전 손실이 세비야와 바다호스 지역으로 거의 동시에 확산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단일 지점의 물리적 고장뿐 아니라 복수 지점에서 동시다발적인 충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초기 추측에서는 지진이나 기상 현상이 원인으로 거론되었으나, 정전 당일 스페인 내에서 특이한 지질 또는 기상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으며, 지진계에 뚜렷한 진동 기록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물리적 충격의 구체적 원인은 여전히 불명확하며, 현재로서는 기술적 고장이나 외부 요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와 같은 물리적 충격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유사 사태에 대비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된다. 지진뿐 아니라 화재, 폭발 등 다양한 물리적 충격 시나리오가 전력망에 유사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4. 정책적 함의
자연재해로부터 전력 인프라를 보호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송전 설비의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주요 변전소에 실시간 진동 감지 및 자가 차단 시스템을 정교하게 적용해야 한다. 또한, 대형 발전소가 물리적 충격 발생 시 즉각 정지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출력을 감소시킨 후 안전 정지하는 알고리즘을 도입하면 전력망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일본과 같은 지진 다발 국가의 사례를 참고하여 전력망 비상 복구 계획을 수립하고, 자연재해가 계통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여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경기도 수원, 화성시와 같은 산업 밀집 지역에서는 지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기상 재해에 대비한 송전망 내구성 강화와 비상 복구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는 지역 내 반도체 제조업과 같은 전력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장. 1차 충격 이후 송전선 단선과 주파수·전압 붕괴의 연쇄
2.1 붕괴 개요
전력계통의 안정성은 발전-수요 균형과 계통 관성(Inertia)에 의해 좌우된다. 관성은 회전하는 발전기(화력·수력)의 운동 에너지가 주파수 변동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며,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는 이 관성이 낮아 급격한 주파수 변화에 취약하다. 사건 당시 스페인의 발전 조합은 태양광(59%), 풍력(12%), 원자력발전(11%)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71%에 달해 관성이 크게 감소한 상태였다. 다만, 관성은 대규모 충격에서 시간을 벌어주는 안전판 역할을 할 뿐, 대규모 충격을 온전히 막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고 방지의 핵심은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발전 - 수요 균형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순동예비력 혹은 빠른 응답자원이 얼마나 있는지가 좌우한다.
12시 33분 18초, 계통 주파수는 48Hz로 급락했고, 이는 유럽 표준(50Hz ±0.2Hz)을 크게 벗어난 수치다. 주파수 하락 속도가 초당 1Hz를 넘어서자, 언더프리퀀시 로드셰딩(UFLS)이 가동되어 4,000MW 이상의 부하가 차단되었으나, 손실 규모가 방어 체계의 한계(초당 0.5Hz 이내 복구)를 초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동시에, 유효전력 공급 감소로 인해 송전선의 무효전력 흐름이 변화하며 일부 지역에서 전압이 420kV까지 상승(정상 400kV)하는 이상 현상이 관측되었다. 이는 고장 조류/전류(Fault Current)가 임피던스가 높은 송전선로를 통해 흐르면서 발생한 "반동적 과전압"으로 해석된다.
<쉽게 설명하면>
1) 주파수 = 발전기가 달리고 있는 ‘엔진 RPM’
- 50 Hz는 발전기 축이 1초에 3,000번(50×60) 도는 속도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60 Hz)
- 연료가 부족해 엔진 힘(유효전력)이 꺾이면 RPM이 급락한다. 이번엔 48 Hz까지 떨어져 ‘허용 오차(±0.2 Hz)’를 벗어났다.
2) UFLS(저주파수 부하 차단) = 엔진이 꺼지기 전 ‘짐 덜어내기’
- 주파수가 빠지면 계통은 즉시 일부 부하(4GW)를 떼어 내 RPM을 회복하려 한다.
- 하지만 속도 저하가 초당 1Hz로 너무 급격했다. 설계 기준(초당 0.5Hz 이내)보다 가팔라 ‘짐 덜기’가 따라잡지 못했다.
3) 전압 = 송전선 내부의 ‘압력’
- 장거리 송전선은 전기를 흐르게 하는 동시에 축전기처럼 무효전력(전압을 유지하는 힘)을 품고 있다.
- 갑자기 전기를 적게 실으면 남은 무효전력이 선로에 반동을 일으켜 압력, 즉 전압이 솟구친다. 정상 400 kV 회로가 420 kV까지 올라간 이유다.
4) 왜 ‘임피던스 높은 선로’가 문제를 키우는가
- 임피던스가 큰 선로는 길고 가는 배관과 같아, 고장 전류가 지나갈 때 에너지 손실이 크다.
- 손실을 메우려는 전압 파동이 더 크게 반사돼 과전압을 증폭시킨다.
5) 두 충격이 동시에 오면 생기는 위험
-주파수 추락(=엔진 RPM 급락): 발전기·모터가 동기 상태를 잃고 자동 정지
-전압 급등(=배관 압력 급등): 변압기·차단기 절연 파괴, 과전압 트립
*주파수·전압 보호계전기는 서로 다른 물리량을 지킨다. 두 신호가 동시에 한계를 넘으면 차단기가 연쇄적으로 열리며 대정전 도미노 위험이 커진다.
참고문헌
2.2 연쇄 과정
1) 초기 발전 손실(12:32:57–12:33:17 CET):
- 그라나다 변전소에서 시작된 2.2GW 발전기 탈락이 세비야·바다호스로 확대되며 총 15GW 손실 발생.
- 계통 주파수 49.5Hz로 하강, 전압 420kV로 상승.
2) UFLS 가동 및 실패(12:33:18–12:33:21 CET):
- 주파수 48Hz 하강 시 4,000MW 부하 차단 시도.
- 그러나 손실 규모가 너무 커 초당 1.2Hz의 급락 속도를 막지 못함.
3) 동기화 손실 및 연계선 차단:
- 12:33:21 CET: 프랑스-스페인 AC 연계선(2.5GW)이 동기화 손실 보호계전기에 의해 차단.
- 12:33:24 CET: HVDC 연계선 추가 차단으로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 본토와 완전히 격리.
4) 계통 붕괴:
- 격리된 이베리아 계통은 잔여 발전기(주로 태양광)의 출력 불안정으로 47Hz 이하로 주파수 붕괴.
- 12:33:24 CET 기준, 스페인-포르투갈 전체 전압 0kV로 기록되며 블랙아웃 완료
참고문헌
그림 설명 - 28 일 12:33 발생한 단일 송전 고장이, 낮은 계통 관성과 보호계전 연쇄 트립으로 이어져 스페인 전력망을 ‘0 GW’까지 추락시켰고, 이후 수력-가스-재생 순의 블랙 스타트로 밤늦게 겨우 정상화되었음을 이 그래프 한 장이 보여 준다.
1) 정오 이전 : 태양광 급증, 수요 대비 여유 전력 = 수출·양수 저장 증가
2) 12:33 사고 : 단 한 번의 고장이 ‘전(全)계통 0 GW’ → 초저(低)관성 환경의脆약성 드러냄
3) 14 ~ 22 시 : 블랙 스타트 — 가장 기동성이 좋은 수력 → 가스 → 재생에너지 순 재접속
4) 22 시 이후 : 믹스 복원·수요 충족, 그러나 총발전은 여전히 사고 전(≈30 GW)보다는 낮음
2.3 연쇄 붕괴 메커니즘
1) 연쇄 붕괴 메커니즘 개요
이상의 연쇄 과정을 보면, 1차 사고 이후 불과 수십 초 만에 전력계통이 도미노처럼 붕괴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는 5초 만에 15GW에 달하는 발전량이 한꺼번에 계통에서 이탈하였으며, 이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 전체 수요의 약 6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레드 엘렉트리카(REE) 운영 데이터에 따르면, 4월 28일 12시 32분경 26,968MW에 달했던 스페인 전체 부하가 정전 직후 13,000MW 미만으로 급감하였다. 이는 발전과 부하가 거의 절반씩 동시에 상실된 것으로, 계통의 정상적인 운영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충격이었다. 평소 ±0.05Hz 내외의 미소한 주파수 변동만 보이던 계통 주파수는 사건 시 급격히 하락하였고, 보호계전기의 단계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구역별로 주파수 추이가 달라지는 등 심각한 동기 상실 현상이 발생하였다.
2) 해석
이러한 인과 구조를 통해, 한 번의 1차 충격이 어떻게 다단계 방어장치를 뚫고 대정전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다. 애초에 송전 인프라 물리적 피해가 없었더라면 주파수 급변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동일본계통(이베리아 반도 내부)의 발전-수요 불균형 문제다. 스페인 사례에서 드러났듯, 발전 손실 규모가 크고 계통 관성이 낮을 경우 주파수가 너무 빠르게 떨어져 부하차단 등 1차 방어책이 제 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언더프리퀀시 로드셰딩이 작동했으나, 이미 발전 손실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어서 계통 붕괴를 막지 못했다. 한편 대륙 유럽 본토와 연결된 프랑스 연계선이 차단되지 않았다면 추가 지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이 연계선 용량(총 3~4GW 수준)으로는 15GW 급격 부족을 메우기에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유럽 전체 계통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차단한 것이다. 결국 이베리아 반도는 에너지 고립섬(Island)으로 떨어져 나갔고 자체 균형 유지에 실패하여 주파수와 전압의 동반 붕괴를 피할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 송전선 차단은 유럽 전력망의 표준 운영 규정인 "지역화 원칙(Localization Principle)"에 따른 필수 조치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3) 정책적 함의
정책적으로는 송전망의 1차 사고가 전체 계통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중 방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 첫째, 실시간 주파수 보조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대규모 발전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자동 부하차단만으로는 주파수 하락을 막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나 동기형 콘덴서 등 빠른 주파수 응답 자원을 도입하여 즉각적으로 주파수 낙폭을 저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둘째, 계통 분리(스플릿) 운영 전략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구역 분리가 발생할 경우, 분리된 각 섬(grid)이 자율적으로 주파수와 전압을 안정화할 수 있도록 지역별 관성 자원과 급전 전략을 사전에 확보해야 한다. 이번 스페인 사례처럼, 분리된 이베리아 계통이 자체적으로 주파수 제어에 실패한 것은 향후 주요 권역별 독립 운영 능력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 셋째, 송전선 여유도 확보와 설비 이중화가 필요하다. 한두 개 거점 변전소나 송전선로의 고장만으로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요한 연계선에는 우회 경로나 이중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압 안정도에도 대비해 고속 무효전력 보상설비(SVC, STATCOM 등)를 충분히 설치함으로써 대규모 계통 동요 시 과전압이나 저전압을 신속히 보정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그림 설명 - 대정전의 날 24시간 전력공급 상황
이 대시보드는 2025년 4월 28일 스페인 전력계통의 24시간 실시간 데이터를 보여준다. 그래프 중앙의 노란 실측선은 실제 수요, 빨간선은 시장에서 배정된 발전량, 초록선은 예측 수요다.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수요는 22 GW대 저점을 유지하다 업무‧산업 가동으로 치솟아 11시경 29 GW를 찍는다. 문제의 12시 33분, 미확인 고장이 발생하자 노란선이 수직 낙하해 1만 2천 MW까지 떨어지며 사실상 ‘0 발전’ 상태가 된다. 반면 빨간·초록선은 계속 30 GW 안팎을 따라가 실측값과 커다란 괴리를 드러낸다. 이는 계통이 멈췄는데도 스케줄 값이 그대로 표출된 탓, 곧 ‘계측 공백 구간’을 의미한다.
우측 도넛 차트는 사고 직전의 발전 믹스를 스냅숏으로 잡아냈다. 태양광이 1만 8천 MW, 51 %를 차지하며 계통 관성이 낮은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도넛 외곽의 작은 색상 조각들은 풍력·수력·가스 등 회전 질량이 있는 자원인데, 비중이 작아 주파수 안정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그래프 하단 시간축을 따라 14시 이후 노란선이 완만한 V자를 그리며 다시 상승한다. 이는 수력 터빈과 디젤 보조원이 먼저 기동해 ‘블랙 스타트’를 시작하고, 뒤이어 가스 복합발전과 일부 재생에너지가 단계적으로 계통에 재접속했음을 뜻한다. 18시에는 20 GW, 22시 무렵엔 26 GW에 도달해 계획·예측 곡선과 재합류하며 주파수·전압이 안정권에 들어간다.
결국 이 한 장의 화면은 낮시간 태양광 과다 의존 → 저관성 → 단일 고장 시 전면 정전 → 8시간 블랙 스타트 복구라는 사건의 전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통 회복력을 시험한 대표적 사례다.
3장. 태양광 인버터 탈락 원인: 주파수 저하, 전압 불안정, 계통 관통 운전 (ride-through) 실패
*계통 관통 운전’(Ride-Through)이란?
전력계통에 순간적인 이상이 생겨 주파수가 흔들리거나 전압이 떨어져도, 태양광·풍력 같은 발전 설비(특히 인버터)가 계속 계통에 붙어서 전력을 내보내도록 만드는 운전 기능이다.
- LVRT (Low-Voltage Ride-Through, 저전압 관통) ― 전압이 짧게 0~80%로 떨어져도 탈락하지 않음
- HVRT (High-Voltage Ride-Through, 과전압 관통) ― 전압이 순간 110% 이상으로 솟아도 견딤
- FRT (Frequency Ride-Through, 주파수 관통) ― 주파수가 ±0.5Hz 이상 흔들려도 유지
그리드 코드(전력망 기술 규정)는 “고장 발생 후 수십 밀리초~수초 동안 설비가 연결을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무효전력을 공급해 전압을 지지할 것”을 의무로 둔다. 이렇게 해야 전체 계통이 고장을 흡수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3.1 개요 및 기술적 설명
스페인 대정전 사태에서 태양광 발전설비의 대규모 이탈은 피해를 증폭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당일 낮 시간대 스페인 전체 발전량의 59%를 차지하던 태양광 설비가 초기 사고 발생 후 약 8GW 규모로 순차적으로 계통에서 탈락하였고, 이는 약 15GW에 달하는 총 발전 손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태양광 인버터의 계통 이탈은 주파수 및 전압 허용 범위 초과에 기인한다. 스페인 그리드 코드는 태양광 인버터가 주파수 47~52Hz, 전압 85~110% 범위 내에서 최소 0.5초간 계통에 잔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 당시 주파수는 48Hz 이하로 급락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압이 420kV(정상 400kV)까지 상승하는 등 복합적 교란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다수 인버터가 보호 모드로 전환되며 탈락하였다.
FRT(Fault Ride-Through) 기능은 순간적인 주파수·전압 변동 시 인버터가 계통에 잔류하며 출력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장치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주파수 급락(초당 1.2Hz)과 전압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며, 인버터의 DC링크 전압이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이로 인해 인버터 제어 회로의 동기화 신호가 왜곡되었고, 결국 라이드스루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 채 약 70%의 태양광 설비가 차단되었다. 특히 2015년 이전에 설치된 구형 인버터는 FRT 성능이 열악해 초기 충격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태양광 인버터의 대규모 탈락은 재생에너지 확대 시대의 계통 안정성 딜레마를 보여준다. 태양광은 관성(Inertia)이 없어 주파수 변동에 취약하며, FRT 기능이 제한적일 경우 계통 충격 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증폭시킨다. 이번 사태에서는 전체 발전 손실 15GW 중 8GW가 태양광 이탈로 발생하였고, 이는 기존 화력·수력 발전기만으로는 주파수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가 필수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 아래에서도 인버터 기술과 그리드 코드의 혁신이 병행이 대규모 사고의 가능성을 낮춰준다.
3.2 정책적 함의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인버터의 계통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1)그리드 코드 개정:
- FRT 기준을 주파수 46~53Hz(우리의 경우 55~65Hz), 전압 70~120%로 확대하고, 버티는 시간을 1초 이상으로 연장한다.
- 가상 관성(Virtual Inertia) 기능을 의무화해 주파수 변동 시 인버터가 인위적 관성을 제공하도록 한다.
2)기존 인버터 업그레이드:
- 정부 주도로 구형 인버터 펌웨어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현대 인버터는 소프트웨어 수정만으로 FRT 성능을 30%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
- 업그레이드 비용의 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등 소규모 발전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3)신규 설비 의무화:
- 2026년부터 신규 태양광·풍력 설비에 주파수 응답(Frequency Response) 및 무효전력 조정(Reactive Power Control) 기능을 의무화한다. 유럽연합의 경우 2024년부터 동일한 규제를 도입 중이다.
4)지역별 완충 장치 구축:
- 재생에너지 비중이 30~40%를 초과하는 지역에는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해 계통 충격을 흡수한다.
예를 들어 안달루시아 지역에 500MWh급 ESS 10기를 배치하면 2GW 규모의 순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스페인 대정전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적인 탄소 중립 시대에 인버터 기술과 제도의 혁신이 동반되지 않으면 유사 사태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태양광의 기술적 한계를 인정하고, 인버터의 계통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이는 수원, 화성, 평택 등 같은 산업 밀집 지역에서도 재생에너지 수용성을 높이는 핵심 과제이다.
4장. 프랑스-스페인 국경 연계선 단절과 계통 동적 해석
4.1 개요 및 기술적 설명
프랑스-스페인 간 전력 연계선은 이베리아 반도를 유럽 본토와 연결하는 전력 생명선으로, 양국 간 평균 2.5GW의 전력을 상호 교환하며 유럽 단일 전력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해왔다. 2025년 4월 28일 정전 사태에서 이 연계선은 사고 발생 20초 만에 자동 차단되었으며, 이는 계통 보호를 위한 필수 조치였다. 이 장에서는 연계선 단절의 기술적 메커니즘과 계통 동역학적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연계선 구성 및 운영 현황:
- AC 400kV 송전선: 서부(갈리시아-아키텐)와 동부(카탈루냐-옥시타니) 경로에 총 2회선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선로의 최대 용량은 1.25GW이다.
- HVDC 해저연계선: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바스크-아키텐 해저 케이블로, 용량 1GW의 직류 송전 시스템이다.
- 사고 전 운영 상태: 사건 당일 정오, 스페인은 프랑스로 1,000MW를 순수출 중이었으며, 이는 유럽 본토의 전력 수요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2) 연계선 차단 메커니즘:
- 실시간 위상 모니터링(PMU): 양국 계통의 전압 위상 각도와 주파수 차이를 밀리초(ms) 단위로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 손실 동기 보호 알고리즘:
: 12:33:21 CET, 스페인 계통 주파수가 48Hz로 급락하며 프랑스(50Hz)와의 위상 차이가 30도 이상 벌어졌다. 이는 두 계통이 동기화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 연계선에 흐르는 전류가 정격 용량의 120%(1.5GW)를 초과했고, 보호계전기가 이를 감지해 AC 연계선 2회선을 동시 차단했다.
: 이 과정에서 과도 전압(Transient Voltage)이 발생하며, 스페인 측 변전소의 차단기(Disconnector)가 물리적 손상을 입었다.
3) HVDC 연계선의 추가 차단:
- 12:33:24 CET, AC 연계선 차단 3초 후 HVDC 연계선도 자동 정지했다.
- 원인: 스페인 측 전압이 0kV 근처로 붕괴되며 HVDC 인버터의 DC-AC 변환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 결과: HVDC 연계선은 동기화 문제 없이 전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전압 붕괴로 인해 기술적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4.2. 계통(전력망) 동적 해석
1) 연계선 차단 직후 영향:
가. 프랑스 계통:
- 스페인으로 공급하던 1,000MW 전력이 갑자기 차단되며 주파수가 50.1Hz로 미세 상승했다.
- 그러나 유럽 본토의 총 설치 용량(약 400GW)이 워낙 커서 10분 이내에 50Hz로 안정화되었다.
- 프랑스 남부 5개 지자체에서 5분 미만의 단전이 발생했으나, 자동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나. 이베리아 반도:
- 외부 지원이 차단되며 1,000MW 추가 부족이 발생, 주파수는 47Hz 이하로 급락했다.
- 잔여 발전원(주로 태양광)이 추가로 탈락하며 12:33:24 CET 기준 전압·주파수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2) 분리된 계통의 운명:
가. 유럽 본토:
- 국지화 원칙(Localization Principle)에 따라 스페인 문제가 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했다.
- 독일·이탈리아 등 인접국은 주파수 변동을 ±0.05Hz 이내로 유지하며 정상 운영을 계속했다.
나. 이베리아 반도:
- 에너지 섬(Energy Island) 상태로 전락하며 내부 자원만으로 균형을 유지하려 시도했으나, 15GW의 공급 부족을 극복하지 못했다.
3) 동적 시뮬레이션 결과:
가. 연계선 유지 가정:
- 프랑스가 스페인을 지원하려면 초당 3GW 이상의 전력을 공급해야 했으나, 이는 연계선 최대 용량(2.5GW)을 초과하는 불가능한 수치였다.
- 만약 연계선을 유지했다면,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의 전압 위상 차이로 인해 아크 플래시(Arc Flash)*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과부하 + 위상 불일치가 공기 절연을 뚫고 ‘거대한 번개’를 만들어 설비를 파괴할 수 있는 상황
나. 역류 현상:
- 사고 후 스페인이 수입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전압 붕괴로 인해 역류 전력이 연계선을 마비시켰다.
- 이는 마치 호스가 막힌 상태에서 물을 역류시키는 것과 유사한 현상으로, 계통 차단을 가속화했다.
4) 해석
연계선 차단은 유럽 전력망 보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2006년 유럽 대정전 당시 캐스케이드 실패로 15개국이 정전을 겪은 교훈을 반영해, 현대 계통은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으면 자동으로 분리되도록 설계되었다. 이번 사례에서도 이베리아 반도를 **"에너지 섬"**으로 격리함으로써 유럽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 "국지화 원칙": 큰 충격이 발생하면 피해를 지역에 가두는 것이 현행 계통 운영의 핵심 원칙이다. 이는 전체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희생적 결정이다.
- 역설적 결과: 연계선이 초기 몇 초간 스페인에 약 500MW를 지원했지만, 이는 15GW 규모의 손실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 HVDC의 역할: HVDC는 동기화 문제 없이 전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전압 붕괴 시 무력화된다는 기술적 한계가 노출되었다.
4.3 정책적 함의
1) 국가간 전력망 연계의 이중적 역할 관리
국가간 전력망 연계는 평시에는 에너지 거래 효율화와 주파수 안정화를 지원하지만, 대규모 사고 시 충격 전파 경로로 작용할 수 있다. 2025년 스페인 사태에서 프랑스-스페인 연계선 차단은 유럽 전체 계통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된 설계로, 이는 연계선의 이중적 역할을 극명히 보여준다.
2)연계선 용량 확대 및 인프라 현대화
- 스페인-프랑스 간 기존 연계선 용량(2.5GW)은 15GW 규모의 사고를 상쇄하기엔 부족했다.
- 이베리아 반도는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외부 지원에 의존도가 높으나, 연계선 용량 한계로 실질적 도움이 제한적이었다.
- 한국의 경우, 대륙과 망의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으나 정치적 문제 해소에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스페인 대정전은 국가간 전력망 연계가 평시 효율성과 위기시 취약성이라는 양면성을 가짐을 보여준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선 용량 확대, 국제 협약, 인프라 방재가 삼각축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나 망연계를 통한 리스크 분산이 넘어서야 할 산은 많고도 높다.
참고문헌
efaidnbmnnnibpcajpcglclefindmkaj/https://beyondfossilfuels.org/wp-content/uploads/2025/05/How-Europes-grid-operators-are-preparing-for-the-energy-transition.pdf
5장. 전체 주파수·전압 변화 시간대별 재구성: 보호시스템 동작과 분산자원 이탈 순서
5.1 개요
시간의 축에서 대정전 사태를 들여다보면, 불과 몇 십 초 사이에 전력망이 정상상태에서 완전 정전으로 추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사건 전후 주요 변수(주파수, 전압)의 변화를 시계열로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보호시스템이 언제 동작했는지, 분산형 자원(DER)들은 어떤 순서로 탈락하였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복잡한 사건의 흐름을 명확히 이해하고자 한다.
공개된 공식 데이터와 보고를 토대로 2025년 4월 28일 12시 32분부터 12시 34분까지의 계통 상태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2:32:57 (T0)
- 남부 스페인에서 “이상 진동” 발생 후 약 5초 동안 그라나다 변전소 등지에서 2.2GW 규모 발전기 연쇄 트립 발생.
- 계통 주파수 50Hz → 급하강 시작, 4초만에 약 49Hz대 초반으로 내려감.
- 고장지점 근처 전압 420kV(정상 400kV)로 일시 상승 보고.
- 계통은 여전히 유럽 본토와 연계 상태 유지.
2) 12:33:10 (T0+13초)
- 주파수 하강 속도가 빨라져 스페인/포르투갈 운영센터 비상 경보 발령.
- 1차 탈락군: 일부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가 주파수 편차로 탈락 시작.
- 전압은 지역별로 380~430kV 범위에서 불안정하게 변동.
3) 12:33:18 (T0+21초)
- 계통 주파수 48.0Hz 도달, 스페인/포르투갈 언더프리퀀시 로드셰딩(UFLS) 1단계 작동.
- 약 1,500MW 부하 순차 차단 개시. 그러나 주파수 하강세 반전 실패, 47Hz대로 접근.
- 2차 탈락군: 대부분의 분산형 태양광 인버터가 주파수 49Hz 이하에서 수백 밀리초 내 광범위하게 정지. 추가 발전 상실량 8GW 추정.
4) 12:33:20 (T0+23초)
- 프랑스→스페인 방면 연계선을 통한 외부 지원 전력 유입 시도 최대치(2.5GW) 도달.
- 동기 불일치 심화로 프랑스-스페인 AC 연계선 보호계전기 동작 대기.
5) 12:33:21 (T0+24초)
- 프랑스-스페인 AC 연계선 2회선 모두 차단(동기상실 보호).
- 스페인-포르투갈 계통이 에너지 섬으로 고립. 모로코-스페인 HVDC도 송전 정지.
- 이베리아 반도 내부 주파수 47Hz 이하로 폭락, 전역적 전압 300kV 미만으로 저하.
6) 12:33:24 (T0+27초)
- 스페인 및 포르투갈 광역 계통 전압 0kV 수렴, 주파수 측정 불능 상태 도달.
- 3차 탈락군: 잔여 화력·수력 발전기(7GW)가 언더스피드 보호로 정지.
- 이베리아 반도 전력망 완전 정전 상태 진입.
7)12:33:30 (~T0+33초)
- 스페인 전역 85% 이상 지역 정전, 포르투갈 전역 100% 정전 확인.
- 발레아레스·카나리아 제도 등 섬 계통은 정상 운영 지속.
8) 12:34 ~ 12:38
- 스페인/포르투갈 비상방재 시스템 가동:
- 중요 시설(병원·공항) 비상발전기 가동.
- 철도 시스템 안전모드 진입.
- 송전망 완전 정지로 계통 복구 모드 전환 선언.
5.2 기술적 해석
1) 보호시스템의 한계
- 1차 보호: 발전기 자체 보호(오버스피드·저전압)로 남부 발전기들이 트립.
- 2차 보호: UFLS와 연계선 차단 등 계통 방어 전략이 순차 동작했으나, 15GW 손실을 상쇄하기엔 역부족.
- 결정적 요인: 계통 관성 부족과 즉응 예비력 미비로 인해 47Hz 이하까지 주파수 추락.
2) 분산자원(DER)의 집단적 취약성
- 태양광·풍력 인버터는 주파수 49Hz 이하에서 수백 밀리초 내 집단 탈락.
- 소규모 자가발전도 인버터 보호로 일제히 오프 전환되어, 분산자원이 최초 탈락군으로 작용.
-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 시 동일한 프로토콜에 따른 집단 행동 위험성 노출
5.3 정책적 함의
시간대별 고장 전개에 대한 교훈은 명확하다: “더 빠른 대응과 더 스마트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첫째, 고속 보호계전 기술 개발이다. 예를 들어 AI 기반의 광속도 보호시스템이 0.1초 내 이상징후를 감지해 선제적으로 발전량을 보충하거나 부하를 조정하도록 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 둘째, 분산자원 협조제어 정책이다. 개별 인버터들이 각자 보호동작을 할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송출하는 계통 유지 신호를 받아 가능하면 계통에 남아있도록 유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 독일 등은 이에 대해 ‘목격치 제어’(grid code 상 승압/감압 시 인버터 출력 제한 곡선 등)를 마련하고 있다. 셋째, 광역 상황 인지 시스템 강화이다. 유럽은 PMU로 광역 동기현상을 감시하지만, 한국 등은 아직 부족하다. 전국 단위 실시간 계통 관측망을 촘촘히 구축하여 1초 미만 단위로 주파수/전압 동향을 파악하고 경보를 자동 발령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 마지막으로, 정전 시퀀스 분석 훈련을 정례화해야 한다. 송배전 운영 인력들이 대규모 정전 상황에서 각 보호시스템 동작과 복구 순서를 숙지하도록 모의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혼선 없이 대응하고 신속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6장. 스위스 치즈 모델로 본 계통 붕괴의 구조적 결함
6.1 개요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의 "스위스 치즈 모델"은 대형 사고가 다층 방어 체계의 연쇄적 결함으로 발생함을 설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각 방어층(치즈 조각)의 작은 결함(구멍)이 정렬되면 위협이 모든 층을 관통해 재앙으로 이어진다. 2025년 스페인 대정전은 전력망의 4개 방어층-예방 설계, 운영 감시, 자동 보호, 비상 대응-에 존재하던 결함이 동시에 정렬되며 발생한 전형적 사례이다. 이 장에서는 각 방어층의 허점을 과학적 데이터와 사고 역학을 기반으로 세부적으로 분석한다.
1) 1차 방어 (예방적 인프라 설계): 송전망 N-1 기준 설계, 충분한 예비력 확보, 견고한 설비 등. 이번 사고의 결함: 단일 변전소 고장으로 다수 발전기 상실 → N-1 기준 미충족 (N-k 상황). 또한 재생에너지 급증에 비해 예비력(관성, 백업발전) 확보 미흡.
2) 2차 방어 (운영 감시·제어): 계통 주파수·전압의 지속 모니터링과 운영원 조치. 이번 사고의 결함: 사고 전 두 차례 전력 진동이 있었으나 근본 원인 해소 못함. 운영자는 불안정 전조를 감지했으나 뾰족한 대응 없이 사고 맞이. 실시간 안정도 해석 및 예방조치(출력조정 등) 한계 노출.
3) 3차 방어 (자동 보호시스템): 발전소 및 송전계통 보호계전기, UFLS, 연계선 차단 등. 이번 사고의 결함: 보호시스템들은 의도대로 동작했으나, 협조 동작 면에서 허점. 예를 들어 UFLS로 부하를 떨군 시점에 이미 태양광은 선제적으로 탈락하여 효과 반감. 인버터 보호와 계통 보호가 충돌함. 결과적으로 한 층에서 막아야 할 것을 다 막지 못하고 구멍을 통과시킴
4) 4차 방어 (비상 대응): 블랙아웃 발생 시 정부·TSO 등의 대응계획. 이번 사고의 결함: 대국민 즉각 경보체계 부재, 위기 대응 혼선. (예: 철도 등 일부 인프라는 초기 대응 미비로 열차 10여 대가 터널에 정지). 다행히 복구는 비교적 신속했으나(포르투갈 12시간, 스페인 16시간 내 복구 완료), 국가 위기관리 측면에서 개선점 노출.
이렇듯 각 방어 단계마다 크고 작은 “구멍”들이 존재했고, 불운하게도 2025년 4월 28일에는 이 구멍들이 한 줄로 겹쳐져 결국 대정전이라는 사고 화살이 그대로 관통하고 말았다. 현대 전력망은 다중 안전장치로 한두 개 요소 고장으로는 대정전까지 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악재가 겹치면 시스템적 실패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이번 사례가 보여주었다. ENTSO-E도 초기 발표에서 “이번 블랙아웃은 단순 원인이 아닌 복합적인 사건 연쇄의 결과”라고 강조하였다.
6.2 해석
스위스 치즈 모델 관점에서 볼 때, 한 가지 원인만으로는 계통 붕괴에 이르지 않는다. 반드시 여러 요소의 결함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스페인 정전도 처음엔 지진(물리충격) 또는 재생에너지 과부하 같은 단일인자설이 나왔으나, 조사 결과 다중 요인임이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단일 고장만으로는 대정전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이 전력계통 설계자들의 공통된 전제다.
그 전제가 깨진 이유는,
- 첫째로 재생에너지 위주의 저관성 계통 구조(구멍1) 위에,
- 둘째로 계통 운영 미스 혹은 예측 불가 현상(구멍2)이 있었고,
- 셋째로 보호시스템의 부분적 부조화(구멍3)가 있었기 때문이다.
- 여기에 더해 이베리아라는 지리적 고립성(구멍4)까지 겹쳐 피해가 컸다.
만약 이 중 한두 개만이라도 온전했다면 사고 규모가 줄거나 방지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발전 손실이 5GW 내였다면 (구멍1 없었다면) 자생적으로 막을 수 있었고, 혹은 인버터들이 탈락하지 않았다면 (구멍3 없었다면) 주파수 방어에 성공했을지 모른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어떤 변수가 가장 결정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6.2 정책적 함의
다중 결함 대비 정책이 요구된다. 전력망 사고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대비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 첫째, 계통 리질리언스(resilience) 평가를 정례화하여, 스위스 치즈 모델의 각 슬라이스가 건강한지 점검해야 한다. 예방 인프라, 운영절차, 보호시스템, 비상대응 각 분야별로 취약점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작업을 상시화한다.
- 둘째, 다중고장 시나리오 훈련을 실시한다. 지금까지 전력망은 N-1 고장까지만 주로 다루었으나, N-2, N-3 등 동시다발 고장에 대한 워스트 케이스 시뮬레이션과 훈련을 해야 한다.
- 셋째, 사후 분석 및 교훈 공유를 강화한다. 이번 스페인 사건처럼 대정전이 발생하면, 국제 협력을 통해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개선책을 표준화하여 각국이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유럽은 이미 ENTSO-E 전문가 패널을 구성해 원인 규명과 권고안을 마련 중이다.
-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자국 계통의 안전망을 재평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요컨대, “완벽한 치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각 조각의 구멍 크기를 줄이고 두께를 두텁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7장. 대응 기술과 정책 방안: 그리드포밍 인버터, 가상 관성, 분산자원 통합, 계통 복원 등
7.1 대응 방안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과 정책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스페인 정전을 계기로 주목받는 기술로 그리드 포밍 인버터(Grid-Forming Inverter), 가상 관성(Virtual Inertia), 분산에너지자원 통합 제어, 계통 복원력 향상 등이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대안 기술들의 원리와 도입 현황을 살펴보고, 정책적 지원 방안을 논한다.
1) 그리드포밍 인버터 (Grid-Forming Inverter)
기존 인버터는 그리드에 수동적으로 동기하는 Grid-Following 방식이어서 계통 전압과 주파수를 스스로 형성하지 못한다. 반면 그리드포밍 인버터는 자체적으로 기준 전압과 주파수를 만들어 내어, 마치 가상의 발전기처럼 동작한다. 즉 전력이 없어도 인버터가 스스로 50Hz 교류를 생성하여 주변 설비들을 동기에 맞출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인버터도 관성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데, 내부 제어 알고리즘으로 회전기와 유사한 관성 응답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리드포밍 인버터는 다수 재생에너지로 구성된 미니그리드에서 이미 상용화되어 안정적 전원 공급을 입증했다. 대규모 계통에도 이를 확대 적용하면, 태양광·풍력 설비가 스스로 계통 주파수 유지에 기여하고 단독으로도 전력망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대규모 적용을 위해선 제어 설정의 표준화, 동시다발 운전시 상호작용 검증 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관성이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가 중심인 새로운 전력망에서는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2)가상 관성 (Virtual Inertia)
이는 물리적 회전질량이 아닌 전력전자제어로 관성 상응 출력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대용량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나 풍력터빈 자체의 회전운동에 여유를 두어, 주파수 변동 시 즉각 유효전력을 인가/흡수함으로써 관성처럼 작용한다. 예컨대 남호주 Hornsdale 100MW 배터리는 출력 100%를 0.15초 이내에 변경할 수 있어, 전통발전기의 관성응답보다도 신속히 주파수 낙하를 저지할 수 있다. 실제 Hornsdale 배터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Inertia Service를 AEMO로부터 허가받아 상업 운영 중이며, 확장 후 최대 3,000MW·s의 관성에 상응하는 역할을 제공한다고 보고되었다.
가상 관성은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므로 기존 인버터에도 적용 가능하다. 다만 과도하게 빠른 응답은 오히려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 제어 튜닝이 중요하다. 여러 연구를 통해 “배터리 등의 그리드포밍 인버터는 기존 화력 발전기와 동일한 수준의 관성응답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되고 있다.
3)분산형자원 통합 제어
앞서 본 바와 같이 분산자원(DER)이 개별적으로 보호동작을 하면 계통엔 오히려 악영향이 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합적 제어(Aggregation)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수천~수만 개 소규모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충전기 등을 가상 발전소(VPP)로 묶어 중앙에서 제어하는 방식이다. 중앙 관제에서 전력망 상황에 맞게 각 DER에 지령을 보내 출력/충전을 조정하거나 보호동작 임계를 조절한다. 예를 들어 주파수 급락 시 VPP는 소속 가정용 배터리들의 방전을 즉시 명령하여 수백 kW라도 공급하게 한다.
또는 태양광 인버터들에 “지속 운전” 신호를 보내 가벼운 전압강하에는 떨어지지 말고 버티라고 지시한다. 이러한 통합 제어로 분산자원들의 집단 행동을 방지하고, 오히려 계통 지원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재생에너지 지침(RED II)에서 회원국들이 분산자원 액세스와 통합 플랫폼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만 개인정보, 통신 지연 등의 이슈가 있어 단계적 도입이 진행 중이다.
4)계통 복원력 향상
완전히 정전이 발생했을 때 신속히 전력을 재공급하는 능력을 복원력(resilience)이라 한다. 이번 스페인 정전에서 그래도 선방한 점은, 24시간 내 대륙급 계통이 100% 복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블랙스타트 발전소 (수력, 양수, 가스터빈 등 무전원 기동발전기)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이러한 전통적 블랙스타트 자원이 줄어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로 배터리 기반 블랙스타트, 분산 블랙스타트 기술이 각광받는다. 큰 계통을 한꺼번에 살리기보다, 지역 소형 마이크로그리드 단위로 먼저 기동한 후 점차 연결하는 접근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나 PV 인버터가 그리드포밍 모드로 동작하며, 섬상태에서 전압/주파수를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 이런 실증이 이뤄졌으며, 성능이 개선되고 있다. 또한 복원력 강화의 다른 측면으로 수요측 복구 우선순위 관리, 비상통신 확립 등이 있다. 요컨대 사고는 완벽히 못막아도 빨리 복구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으므로, 복원 기술과 계획은 안정성 정책의 일환으로 중시된다.
7.2 해석
소개한 기술들은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기반의 미래형 전력망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스페인 사태 이후 이들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은 “모든 인버터를 2028년부터는 그리드포밍으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독일 역시 2030년까지 신규 전력변환장치(인버터 등)는 상당한 안정성 기여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보인다. 다행히 기술적 전망은 비교적 밝다. 배터리와 인버터 가격 하락, 제어 알고리즘 발전으로 전통 발전기를 상당 부분 대체할 만큼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 이미 남호주 등의 실제 계통에서 가상관성 제공 사례가 나오면서, “인버터도 석탄발전 못지않게 안정도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이 실효성 있게 적용되려면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초기 투자를 위한 인센티브, 표준 제정, 운영 규칙 마련 등이 따라주지 않으면 민간 보급이 더디기 때문이다.
7.3 정책적 함의
각국 정부와 규제기관은 위 기술들의 상용화·도입을 촉진하기 위한 다각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첫째, 시범사업 지원으로 기술 실증을 돕는다. 우리나라도 한전에 그리드포밍 인버터 실증센터를 구축하고 태양광/풍력 연계 마이크로그리드 실험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 둘째, 제도화와 표준화다. 예를 들어 가상관성 시장을 신설하여 관성 제공량(MWs)에 따라 발전사나 ESS사업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영국은 이미 유사 제도를 운영 중이고, 독일도 준비 중이다.
- 셋째, 분산자원 통합관리를 위해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수백만 소규모 자원을 실시간 제어하려면 IoT, 통신망, 표준 프로토콜이 마련되어야 하며, 정부가 이를 주도해 VPP 플랫폼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 넷째, 계통 복원 훈련 및 시설 투자다. 블랙스타트용 소형 가스터빈 유지, 양수발전 확대, 혹은 거점 변전소에 대형 ESS 배치 등으로 유사시 빠른 복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기 모의훈련을 통해 기관 간 협조체계도 점검한다.
요약하면 기술은 준비되고 있으나, 이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건 정책의 몫이다. 스페인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나라도 선제적 기술·정책 대응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다만, N-3급의 사고가 발생하면 이런 보완적 조치가 사고 0을 만들 수는 없다. 전기를 공급하는 체계는 언제든지 무너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나친 낭비는 나눠서 지불할 뿐 더 큰 경제적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 완벽한 공급체계는 없지만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운영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인력 양성 역시 필수적 요소다. 전력망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제어하는 과정이 인공지능의 활용과 자동화 장치가 일정 부분 담당하겠지만 결국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다. 실시간 상황을 감시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의 육성과 확장이 필요하다.
출처
8. 소결 : 우리가 준비해야 할 필수요소
8.1 복합적 인과관계와 다층적 대응 전략: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2025년 4월 스페인 전역을 강타한 대정전 사태는 단일 요인이나 단일 고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시스템 붕괴 사례다. 한두 개의 설비 고장으로 계통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발전소 탈락(약 2.2GW) → 주파수 급락 → 태양광 인버터 대규모 이탈(수 GW 추가 손실) → 계통 주파수·전압 복합 붕괴 → 프랑스 연계선 자동 차단 → 고립된 이베리아 반도의 전면 붕괴라는 다단계 연쇄 충격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다.
이러한 사고는 단순히 특정 설비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이라는 다층적·다중적 시스템에서 ‘동시다발적 방어선이 모두 뚫린’ 상황을 보여준다. 스페인의 경우 전력망 구조가 고립되어 있었고, 당시 태양광 발전 비중이 전체 전원의 60%에 달했으며, ESS나 관성자원(동기발전기)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조건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서로 맞물려, 결과적으로는 계통의 "리질리언스 회복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 전력망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 역시 외부 계통과 연계되지 않은 단일 계통 구조를 가지고 있고, 특정 지역(예: 전라권, 강원권 등)에 태양광·풍력이 지역 편중된 상태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으며, 관성 저하, 무효전력 보정의 불균형, 전압 지지 장치(SVC, STATCOM)의 지역 편차, 보호계전기 과민응답 등 구조적 유사성을 갖는다.
즉, 우리도 예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N-1 고장을 넘는 복합 사태가 벌어질 경우, 충분히 광역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이 이 사태를 교훈 삼아 준비해야 할 방향은 단순히 한 가지 기술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 ① 초기 충격을 감지할 수 있는 계통 감시장치(PMU, RoCoF 센서 등),
- ② 그 충격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무효전력 공급 자원과 ESS·가상관성 자원,
- ③ 운영자와 시장이 위기 시 빠르게 조치할 수 있는 긴급 대응 체계와 제도적 기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8.2 N-1 기준은 왜 적용되는가, 그리고 왜 N-3 사고는 어느 나라도 감당하기 어렵나
현대 전력망은 모두 일정한 안전 기준(security standard)을 바탕으로 설계·운영된다. 그 대표적인 원칙이 N-1 안전 기준(N minus one criterion)이다.
1) N-1 기준이란?
N-1 기준은 “N개의 주요 설비(발전소, 송전선, 변전소 등)가 있을 때, 그 중 하나가 고장 나더라도 나머지 N-1개의 설비만으로 전력 공급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전력망의 운영 안정성(Security of Operation)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계 기준이며, 예측 가능한 단일 고장에 대비하는 “예방적 리스크 완충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는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단일 고장(N-1)은 비교적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대비하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N-1 기준은 전력망 설계와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왜 N-2, N-3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가?
N-2(이중 고장)나 N-3(삼중 고장) 이상의 고장은 발생 확률이 매우 낮다. 모든 설비 조합의 이중·삼중 고장까지 고려하면 설비 규모와 설계·운영·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1,000개의 주요 설비가 있을 경우, N-1 고장은 1,000개의 조합만 확인하면 되지만, N-2는 약 499,500개, N-3은 수천만 개의 조합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과 복잡성을 초래한다. 다만, 실무에서는 단순히 가장 큰 발전기 2기나 3기의 고장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N-2 기준은 일부 국가나 특정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주로 경제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고려한 결과이다.
3) N-3 사고는 왜 감당하기 어려운가?
N-3 수준의 복합 고장은 매우 드물지만, 발생 시 전력망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어느 국가라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는 설비의 삼중 고장이 동시에 발생하거나, 초기 고장이 연쇄적으로 다른 고장을 유발하는 경우(cascading failure)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N-3 이상의 고장은 전력망의 주파수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며, 대규모 부하 차단이나 광역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N-1 기준이 설계 기준일 뿐,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100%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초기에는 N-1 수준의 국지적 고장으로 시작되더라도,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N-3 이상의 시스템 고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계통 전문가들은 N-1 기준으로 운영 중 동해안에서 이중 고장이 발생할 경우, 수도권에서 약 6GW의 부하 차단이 필요하며, 이는 2011년 9·15 순환단전 사태보다 큰 규모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스페인 사고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N-2~3 수준의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으며,
① 태양광 인버터의 집단 보호동작 탈락,
② 계통 관성 부족으로 주파수 변화율(RoCoF)이 너무 빠르게 전개,
③ 연계선의 수동적 차단,
④ 분산 무효전력 자원의 부재 등의 이유로
결국 그 이상의 복합 시스템 고장이자 대정전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N-1 기준은 설계기준일 뿐, 현실의 복합 사고를 100%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N-2, N-3 수준의 복합적 충격은 어느 국가라도 계통이 일시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전력망은 본래 완전한 시스템이 아니라, 항상 불완전하며, 위험을 완화하며 진화해온 구조”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고 발생 확률을 낮추고,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복원 메커니즘(Resilience)을 갖추는 일”이다.
8.3 가상 관성, ESS, 인버터 업그레이드, 계통 코드 개정은 병렬로 작동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동기식 발전기에서 자연적으로 제공되던 계통 안정 기능(관성, 무효전력 등)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술적 장치들이 병렬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① 가상 관성 제공 장치의 확보
- 대용량 ESS(배터리), 동기조상기(Synchronous Condenser),
- 그리드포밍 인버터(Grid-forming Inverter)를 통해
- 발전기처럼 빠른 주파수 낙하에 대응하는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② 인버터 소프트웨어 및 제어로직 고도화
- 태양광·풍력 인버터의 FRT(Fault Ride-Through) 성능을 강화하고,
- 과거 Grid-Following 제어에서 벗어나 Grid-Supportive, Grid-Forming 인버터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③ 계통 코드 및 시장제도 개편
- 재생설비에 주파수응동 능력, 무효전력 조정 능력, RoCoF 견딤 능력을 의무화하는 코드를 반영하고,
- 보조서비스 시장(관성, 무효전력 등)의 유상화를 통해
- 민간사업자가 자발적으로 계통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기술과 시장과 제도가 하나의 시스템 묶음(bundle)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기술은 있는데 설치 안 되고, 규정은 있으나 실효성 없는 제도만 남는다.
8.4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구조적 이슈들
전력망은 시간의 속도가 빠른 시스템이다. 정전은 수 초 만에 발생하지만, 정책 결정은 수개월, 제도 개편은 수년 단위로 진행된다. 기술과 제도 간의 이 시간 간극을 메우는 중간 계층의 실시간 운용기술, 데이터 플랫폼, 준자동화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물론, 불가피한 사고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복구다.
1) 스페인은 대정전에는 실패했지만, 복구에서는 ‘상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 2025년 4월 28일 발생한 스페인의 전국적 정전은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이었지만,
- 프랑스 및 모로코 연계선 복구 → 블랙스타트 발전소 재기동 → 수력·가스발전 동시 투입 → 단계적 복전,
- 이 일련의 복원 메커니즘이 12~24시간 이내 작동하며 비교적 빠르고 안정적인 복구에 성공했다.
이는 스페인이 사전에 다층적 복구 시나리오와 블랙스타트 운용 전략을 준비해온 결과이며, 이번 사고를 통해 자국 전력망의 복원력(resilience)을 실제로 검증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고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말이다.)
2) 반면, 한국은 아직 블랙스타트에 대한 실전 경험이 없다.
- 한국은 최근 수십 년간 광역 대정전 경험이 거의 없으며,
- 이에 따라 블랙스타트 시나리오의 실효성도 실제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 각 발전기별 기동 조건, ESS·가스터빈 연계 운용, 연계망 없이 구역별로 계통을 복구하는 단계적 프로토콜 등에 대해
운영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스템적 불확실성의 일종이다.
특히, 대규모 ESS, 분산형 발전소, VPP, 마이크로그리드 등 신형 자원의 블랙스타트 기여 가능성은 아직 제도화·운용화되지 않았고, 기존 화력·수력 발전소 중심의 블랙스타트 체계만으로는 미래 계통의 복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따라서 블랙스타트는 비상 시 대응 옵션이 아니라, 정상 시에도 지속 점검하고 훈련해야 할 계통의 핵심 역량이며, 복원력을 구성하는 실질적 능력(resilience capability)으로 봐야 한다.
한국도 정전 경험이 없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정전이 없었기에 복구 능력도 증명된 적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비상 복구 전략의 표준화와 실제 훈련 및 기술 실증에 나서야 한다.
8.5 이 사건은 재생에너지 전환의 축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전환을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스페인 대정전 이후, 일부에서는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방향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사고는 재생에너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재생 중심 시스템에 걸맞는 ‘안정화 인프라’와 ‘운영규범’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사실 이 사건은 재생에너지 중심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그에 맞는 산업과 기술이 확장될 기회이기도 하다.
- 그리드포밍 인버터
- 전력전자 기반 무효전력 보정 기술
- AI 기반 계통 안정도 예측
- 분산형 보조서비스 시장
- ESS를 활용한 초단위 대응 전략
이 모두는 “에너지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기반이다.
8.6 원자력 중심 해석은 기술보다 산업 생존전략의 일부이며, 계통 안정도에서 만능 해법이 아니다.
일부 보도나 해석에서는 “재생은 불안정하니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력망 기술이나 계통 해석 차원이 아니라, 원자력 산업계의 생존 전략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원자력 발전 역시 계통상 리스크를 지닌다.
- 기저 발전 특성: 수요 대응 유연성 부족, 출력 조절 한계
- 대규모 단일 설비: 고장 시 충격이 큼 (1000~1500MW급 트립)
- 블랙스타트 능력 부재: 재가동 시간 길고 조건 복잡
- 무효전력, 관성 기여 부족: 상시 운전 외 대응은 제한적
원자력은 기술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으나, 재생에너지 계통의 리스크를 본질적으로 해결해주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원자력의 역할은 다른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으나 이번 사고가 원자력을 강화해야할 이유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8.7 기술·시장·제도는 함께 진화해야 한다. 완벽한 거버넌스는 없으며, 우리는 계속 수정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번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전력망의 실패는 한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 시스템 설계, 정책 반응, 시장 구조, 기술 배치의 실패가 동시에 일어날 때 발생한다.
-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제도와 시장이 연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 규제가 있어도 기술이 성숙하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 제도가 있어도 현장의 데이터와 피드백이 없다면 현실성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완벽한 구조를 만들 수 없지만, 계속해서 수정하고, 학습하고, 실험하면서 진화하는 “적응형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요컨대 “탄소중립은 기술의 경주가 아니라, 불완전한 시스템을 끊임없이 보완해나가는 ‘재설계’의 여정이다.” 우리는 그 여정의 중간에 있으며, 멈추지 않고 전진해야 한다.
[부록] 전력망 기초 개념 이해하기: 전압, 주파수, 무효전력, 관성, 인버터란?
전력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합니다. 이 개념들은 정전 사건의 원인과 계통의 취약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1. 전압 (Voltage) – 전기의 압력
전압은 전기를 밀어주는 압력, 즉 전위 차이입니다. 단위는 볼트(V)이며, 예를 들어 가정용 콘센트는 약 220V의 전압을 사용합니다. 전압이 높을수록 전기를 더 멀리,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송전선에는 345kV(킬로볼트)처럼 매우 높은 전압이 사용됩니다.
전압은 두 지점 사이의 전위 차이이며, 이는 전류가 흐르게 만드는 힘입니다. 마치 높은 저수지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류가 흐릅니다.
전압이 너무 낮으면 가전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꺼질 수 있고, 너무 높으면 과열이나 손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력망 운영자들은 전압을 정해진 범위(예: 345kV ±5%)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변압기 조정, 무효전력 장치(콘덴서, 리액터 등)를 활용해 전압을 조정합니다.
정리하면, 전압은 전력망의 기본적인 에너지 전달력을 결정하는 요소로서, 일정하게 유지될 때 전기 품질이 확보됩니다.
2. 주파수 (Frequency) – 전기의 리듬
주파수는 교류(AC) 전기가 1초에 몇 번 방향을 바꾸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단위는 헤르츠(Hz)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60Hz, 유럽과 스페인은 50Hz를 사용합니다. 즉, 60Hz는 전류가 1초에 60번 앞뒤로 진동한다는 뜻입니다.
주파수는 전력망 전체에서 모든 발전기와 부하가 동일한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발전기와 부하가 이 주파수에 '동기화'되어야 안정적인 병렬 운영이 가능합니다.
주파수는 공급과 수요의 실시간 균형 지표입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발전기의 회전속도가 줄어들어 주파수가 낮아지고, 반대의 경우 주파수가 올라갑니다. 전력망은 일반적으로 ±0.05Hz 이내에서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부하 차단(UFLS)이나 발전기 출력 조정 등의 제어가 작동합니다.
정리하면, 주파수는 전력망의 '심장박동'과 같으며,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계통의 생존 조건 중 하나입니다.
3. 무효전력 (Reactive Power) – 전압의 숨은 지지대
전력이란 단순히 전압과 전류의 곱이 아니라, 전압과 전류의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교류에서는 전압과 전류가 동시에 오르내리지 않으면, 일부 에너지는 실제 일을 하지 못하고 회로 내에서 왔다 갔다만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효전력(Q)입니다. 반대로, 전압과 전류가 동시에 움직여 실제로 일을 하는 전력이 유효전력(P)입니다.
공식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유효전력 P = V × I × cos(φ)
무효전력 Q = V × I × sin(φ)
여기서 φ는 전압과 전류 사이의 위상차입니다. 모터, 변압기 같은 유도성 부하는 전류가 전압보다 느리게 흐르므로 위상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무효전력이 발생합니다.
무효전력은 기계에 에너지를 전달하지 않지만, 전압을 지지하고 자기장을 유지해주는 데 필수입니다. 부족하면 전압이 떨어지고, 많으면 전압이 과상승하기 때문에 무효전력을 적절히 보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역할은 자동 전압조정기(AVR), 콘덴서 뱅크, 동기조상기(Synchronous Condenser), SVC(정지형 무효전력 보상장치) 등이 수행합니다.
전압을 안정시키는 핵심 수단이 무효전력이며, 이를 통해 송배전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동작합니다.
4. 관성 (Inertia) – 전력망의 안전벨트
관성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입니다. 전력망에서는 발전기의 회전관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전통적인 동기 발전기(석탄, 원자력, 수력 등)는 수백~수천 톤의 회전자(로터)가 초당 50번 혹은 60번 회전하며, 이 회전운동 에너지가 바로 전력망의 관성을 구성합니다.
관성의 물리적 에너지는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E = 1/2 × I × ω²
(I: 회전체의 관성 모멘트, ω: 각속도)
관성이 클수록 계통에 갑작스러운 변화(예: 발전기 고장, 부하 급증)가 발생했을 때 주파수 변화가 느려져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다른 발전소가 출력을 올리거나 일부 부하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성이 적으면 똑같은 사고에도 주파수가 급격히 출렁이며, 계통 보호장치가 반응할 시간도 없이 발전기나 부하가 탈락하게 됩니다.
현대에는 태양광, 풍력처럼 인버터 기반의 전원이 많아지면서 '자연 관성'이 줄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ESS, 플라이휠, 그리드포밍 인버터 등으로 가상의 관성을 보강하는 기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관성은 전력망이 사고에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쿠션'이자, 시간 여유를 제공하는 '안전벨트'입니다.
5. 인버터 (Inverter) – 재생에너지 시대의 변환기
인버터는 직류(DC)를 교류(AC)로 바꿔주는 전력전자 장치입니다. 태양광, 배터리, 풍력 등은 직류 혹은 가변 주파수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를 계통에 연계하려면 인버터를 통해 전압과 주파수를 조정해 줘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버터는 전력망의 전압·주파수를 추종(follow)해 출력하는 구조(Grid-Following)였기 때문에, 계통이 흔들리면 인버터도 같이 흔들리고 탈락하기 쉽습니다. 특히 주파수 급락, 전압 이상이 발생하면, 인버터는 자기 보호 로직에 따라 자동으로 계통에서 떨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리드 포밍(Grid-Forming) 인버터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인버터는 스스로 전압과 주파수의 기준을 만들어내며, 전통적인 발전기처럼 무효전력, 관성 응답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ESS와 결합된 인버터는 빠른 시간 내 출력 조절이 가능하고, 가상 관성 제공, 정전 후 복구(블랙스타트) 등 계통 안정성 기여가 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인버터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수적인 장비이자, 계통 안정성을 고려한 고급 제어 기능을 갖춘 '지능형 발전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6. 주파수가 떨어진다는 것의 의미
전력망의 주파수가 기준(예: 60Hz 또는 50Hz)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전력망 전체의 발전량이 수요보다 부족하다는 신호입니다. 즉, 부하가 많아졌거나 발전기가 탈락하면서 전체 에너지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동기 발전기의 회전 속도가 느려지며 주파수도 낮아집니다.
이때 주파수를 유지하기 위해 세 단계의 제어 체계가 작동합니다:
1차 제어 (관성 응답): 발전기의 회전자에 저장된 운동에너지(관성)에 의해 수 밀리초~수 초 내에 자동으로 주파수 하락 속도를 완화합니다. 이는 물리적 반응이며 제어 시스템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 발생합니다.
2차 제어 (자동발전제어, AGC): 수 초~수 분 이내에 중앙급전소가 제어하는 자동발전제어 시스템이 작동하여, 남아 있는 발전기의 출력을 증가시켜 주파수를 다시 목표치(예: 60Hz)로 회복합니다.
3차 제어 (예비력 호출): 수 분~수십 분 단위로 추가 발전기를 기동하거나 비상 예비력을 호출하는 조치입니다. 정전 위험이 크거나 장기 불균형 상황에 대응합니다.
이 세 가지 제어 단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계통 주파수를 실시간으로 유지합니다. 하지만 발전기 탈락이 크거나, 관성·예비력 자원이 부족할 경우, 이 제어 체계가 작동할 시간도 없이 정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사례가 그러했습니다.
7. 전압이 흔들린다는 것의 의미
전압이 떨어지거나 과상승하는 것은 전력망 내 무효전력의 균형이 깨졌다는 뜻입니다. 전압은 본질적으로 지역적인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무효전력 공급이 부족하거나 분포가 불균형하면 특정 지역에서 먼저 전압 불안정이 시작됩니다.
전압이 떨어지면: 기기(특히 모터류)는 더 많은 전류를 요구하여 과부하가 발생하고, 발전기 출력도 유지하기 어려워지며, 일부 장비는 셧다운됩니다.
전압이 과상승하면: 인버터와 민감한 부하는 과전압 보호 장치에 의해 탈락하며, 이는 연쇄적인 부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주파수가 전력망의 '글로벌 균형'을 나타낸다면, 전압은 '지역 안정성'의 지표입니다. 전압은 일정 범위 내에서는 기기들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물리적 손상 또는 보호 차단이 발생해 국지 정전 또는 기기 이탈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전압의 유지 또한 주파수 못지않게 계통 안정에 핵심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압이 흔들린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라, 전력망 내 에너지 흐름의 불균형과 기기 작동의 위험 신호이며, 무효전력의 확보와 적절한 분산 배치가 필수적 대응 수단입니다.
8. 스페인 정전 상황을 1~7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2025년 4월 스페인 대정전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라, 전력망의 여러 요소가 동시에 무너진 복합 사고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전력망의 핵심 개념(전압, 주파수, 무효전력, 관성, 인버터 등)을 바탕으로 스페인 사고를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충격 – 발전기 고장 → 공급 부족: 몇몇 발전소가 갑자기 멈추면서 전력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주파수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관성 부족 – 충격을 흡수해줄 에너지 쿠션 부재: 동기 발전기의 회전 에너지(관성)가 충분했다면 주파수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었지만, 당시 재생에너지가 많아 관성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계통이 빠르게 흔들렸습니다.
인버터 기반 태양광의 집단 이탈: 주파수가 기준 이하(예: 47.5Hz)로 떨어지자 태양광 인버터들이 보호 기능에 따라 계통에서 자동으로 탈락했습니다. 태양광이 빠지면서 전력 공급이 더 줄어들었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무효전력 부족 → 전압 급락: 태양광과 발전기가 탈락하자 전압을 지탱해주던 무효전력 공급도 줄어들어, 일부 지역에서 전압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압이 너무 낮아지면 기계나 인버터가 작동을 멈추게 됩니다.
주파수 하락에 따른 연계선 차단 → 고립: 프랑스와 연결된 송전선은 주파수와 전압 차이가 커지면 보호 계전기가 작동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 본토 전력망에서 고립되었습니다.
1차·2차·3차 제어 실패 → 대정전 진입: 관성(1차 제어)으로 시간을 버는 데 실패했고, AGC(2차 제어)나 예비력 호출(3차 제어)이 작동하기 전에 너무 빠르게 상황이 악화되어 전체 계통이 붕괴됐습니다.
기기 탈락과 보호 작동 → 정전 확산: 주파수·전압이 모두 기준을 벗어나자 발전기, 인버터, 변압기, 부하 기기들이 잇달아 보호 차단을 일으켰습니다. 전기는 일부 남아 있었지만, 기계들이 스스로 꺼지며 정전이 확산된 것입니다.
이처럼 전력망의 여러 구성 요소(전압, 주파수, 무효전력, 관성, 인버터)가 상호 연계되어 있으며, 한 곳에서 문제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전체 계통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스페인 대정전은 이러한 시스템적 연쇄 붕괴의 대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