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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정면돌파해야 할 10가지 물리적 현실

맥킨지 보고서 리뷰

by The Surplus Square

들어가며,


에너지 전환은 말처럼 쉽지 않다. 탄소중립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혁명이 아니라 지구 규모의 초대형 토목공사에 가깝다. 화려한 정책 구호와 투자 약속 뒤에는 발전소와 공장, 광산과 전력망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전쟁이 숨 쉬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가 최근 보고서에서 제시한 10가지 물리적 현실은 에너지 전환이 마주한 눈에 보이는 한계이자, 깨뜨려야 할 장벽이다. 기술 혁신과 자본 투자도 결국 이 물리적 한계와 맞서는 과정임을, 아래 열 가지 현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https://www.mckinsey.com/mgi/our-research/ten-physical-realities-the-energy-transition-must-tackle


1.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은 고성능이지만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시스템은 정교하게 작동하는 고성능 머신과 같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연료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자랑하며, 단 한 척의 LNG 운반선이 미국 내 4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를 운송한다. 또한 현대의 발전소는 수요에 맞춰 출력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스터빈 발전소는 정지 상태에서 불과 10분 만에 최대 출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며,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 에너지를 신속히 전달한다. 화석연료는 산업 공정에서 고온의 열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학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플라스틱과 같은 다양한 소재의 원료로 활용되는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이처럼 기존 시스템은 에너지 밀도, 운송의 용이성, 즉각적인 출력 조절의 기동성, 안정적인 공급망, 그리고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라는 다섯 가지 강점을 통해 세계 경제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첫째,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약 3분의 2는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화석연료를 연소해 동력을 얻거나 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총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폐열 등으로 낭비되고 만다. 둘째, 환경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이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의 85% 이상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며, 이는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과제는 현 시스템이 가진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근본적인 결함을 해결하는 데 있다.


다행히 일부 분야에서는 청정기술이 기존 시스템의 성능을 따라잡거나 심지어 앞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대용량 배터리는 가스터빈 피크 발전기보다 더 신속하게 출력을 조절할 수 있으며, 원자력 발전은 가스 발전에 비해 설비 이용률이 월등히 높다. 또한 많은 청정에너지 기술이 날로 발전하며 화석연료와의 격차를 점차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디젤 연료 1kg은 전기차 배터리 1kg에 비해 약 50배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에너지 운반체들은 무게당 에너지 밀도 면에서 화석연료에 크게 뒤처진다. 게다가 전기나 수소와 같은 청정에너지 운반체는 장거리 수송이 어려워, 현재처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를 손쉽게 이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 전환의 첫 번째 현실은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제거해야 한다”는 복잡한 숙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대체를 넘어 시스템 전반의 통합적 혁신을 요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정기술의 성능 격차를 메우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 기존의 강점을 흡수하며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정책적 지원, 국제적 협력, 그리고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적이다. 에너지 전환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장기적 과제이지만, 지금의 노력이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태계를 물려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2. 2050년 필요한 저탄소 기술의 10%만 현재 배치되었다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수십억 개의 설비와 인프라를 교체해야 하는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이를 위해 약 10억 대의 전기차, 15억 대의 히트펌프(전기식 난방기), 그리고 35테라와트에 달하는 무탄소 발전 용량이 2050년까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물리적 전환을 의미한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5년 동안 판매된 승용 전기차가 역사상 누적 판매량의 90%를 차지하며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의 신규 설치 중 60%가 최근 5년 내에 이루어졌을 정도로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5년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31% 증가하며 3만 대를 넘어섰고, 2025년 내 누적 등록 대수가 1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현재까지 배치된 저탄소 기술의 수준은 2050년 목표치의 약 10%에 불과하며, 일부 분야에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수소 에너지의 경우 전 세계 연간 생산량 9,700만 톤 중 청정 수소(저탄소 수소)의 비중은 1% 미만에 그친다. 이는 대부분의 수소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으로 생산되며,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4. 전력 부문에서도 무탄소 발전 용량은 2050년 목표치의 8~12% 수준에 불과하며, 모빌리티 부문에서는 전기차의 누적 보급 대수가 목표 대비 3%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목표와 현황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이는 산업계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두 가지 신호를 보낸다. 한편으로는 최근 몇 년간의 기하급수적인 성장 속도가 희망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추세로는 2030년대 초반까지 심각한 부족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 특히, 청정 수소와 같은 핵심 기술의 상용화와 보급 속도가 더디고,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위한 기술 개발 및 투자 규모가 주요국에 비해 부족한 상황은 국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현실적 결론은 명확하다. 지금보다 몇 배 더 빠른 속도로 투자와 기술 도입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물리적 목표 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즉각적인 실행 신호는 전력망, 차량, 건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저탄소 설비의 대규모 보급을 가속화하라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청정 기술 상용화, 그리고 전환 금융 체계 마련과 같은 구체적 조치가 시급히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3. 에너지 전환의 심장은 전력 시스템의 대변혁에 달려 있다


모든 길은 전기로 통한다. 교통, 산업, 건물과 같은 거대한 에너지 소비 부문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전기를 동력으로 대체하는 대규모 전기화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는 전력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전력망부터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에너지 전환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전력 부문은 두 가지 중대한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전력 생산 규모를 폭발적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체 탄소 배출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2050년까지 전력 생산 능력(설치 용량 기준)은 현재의 5배로 늘어나야 하며, 그중 90% 이상이 태양광, 풍력과 같은 무탄소 전원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는 기존 석탄과 가스 발전이 급격히 퇴장하고, 변동성 재생에너지가 전력 공급의 주류로 자리 잡아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기후 공약을 이행하려면 전력 생산량을 2배로 늘리는 동시에 태양광과 풍력 등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현재의 3배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설비 증설을 넘어 전력 시스템의 작동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다. 태양광과 풍력은 햇빛과 바람의 변동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동일한 전력 공급을 보장하려면 훨씬 더 많은 설치 용량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향후 전력 설비 용량은 현재보다 3배 이상 증가하지만 실제 전력 공급량은 2배 수준에 그치는, 즉 “용량은 크고 이용률은 낮은” 구조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름 낀 날이나 바람이 없는 시간에도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잉여 발전 용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더라도 유연성 자원(flexibility resources)은 필수적이다. 필요 시 가동 가능한 예비 발전기(예: 천연가스나 수소 기반 피크 발전), 대규모 에너지 저장 장치, 그리고 지역 간 전력망 연계 등이 그 역할을 맡는다. 역설적이게도, 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상당 기간 화석연료 기반 발전 용량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은 상시 가동이 아닌 비상용 백업으로 활용되며, 가스 발전소와 같은 열 발전소의 용량 이용률(capacity factor)은 크게 낮아져 가동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전력 체계는 훨씬 더 거대한 설비 용량, 낮은 평균 가동률, 그리고 다층적 유연성 자원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전력 시스템의 변혁은 발전소뿐 아니라 송배전망의 대규모 확장까지 동반한다. 재생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 발전소와 달리 입지 조건이 상이해 부지가 분산되어 있고, 수요지와의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 송배전망 길이를 현재 대비 약 3배로 늘려야 한다. 이는 매년 3% 이상 꾸준히 전력망을 확충해야만 가능한 수치다. 산업혁명 이후 100여 년에 걸쳐 구축된 전력망을 불과 25년 만에 3배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물리적 도전 과제임을 보여준다.


전력망 병목현상은 에너지 전환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송전선 부족으로 인해 준공 후에도 전력 계통에 연결되지 못하고 대기 중인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속도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특히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실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력 인프라 확충과 유연성 자원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다른 부문의 전기화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실행해야 할 과제는 정부와 기업이 전력망 투자에 속도를 내고, 에너지 저장 및 백업 기술에 혁신을 일으켜 안정적이면서도 저탄소인 초대형 전력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와 수요지를 연결하는 송전망 구축, 스마트 그리드 기술 도입, 그리고 국제적 전력망 연계 협력과 같은 구체적 조치가 시급하다. 전력 시스템의 변혁은 단순히 기술적 과제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합의와 자원 배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각적 노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에너지 전환의 핵심 동력인 전기화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4. 난방의 전기화로 겨울철 전력 피크가 폭증할 것이다


건물 난방을 전기화하는 것은 건물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 과제다. 전 세계 건물에서 발생하는 CO₂ 배출의 85%가 냉난방 수요에서 비롯되며, 그중 난방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공간 난방 54%, 온수 22%). 현재 대부분의 난방은 화석연료, 특히 가스 보일러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를 전기로 전환하면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이 뛰어난 전기 난방 기술로 히트펌프(전기식 열펌프)가 주목받고 있으며, 많은 국가에서 적극적인 보급이 추진되고 있다. 히트펌프는 동일한 열을 생산하는 데 전기 히터보다 2~5배 적은 전력을 사용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대규모 확산 시 건물 난방 배출을 대폭 감축할 수 있는 유력한 해결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난방의 전기화는 전력 시스템에 막대한 추가 부하를 초래할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한겨울 최한랭기에는 전력 수요 피크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이 불가피하다. 전통적으로 전력 피크는 여름철 에어컨 수요로 인해 발생했지만, 히트펌프가 대거 보급되면 가장 추운 날 난방용 전기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건물 난방이 전기화되면 전국 피크 전력 수요 시점이 여름에서 겨울로 이동하며, 1년 중 최대 부하 수준이 현재보다 약 1.7배 증가할 수 있다. 특히 추운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심각해, 뉴잉글랜드 지역의 경우 피크 수요가 현재의 3배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난방 완전 전기화 시 최대 전력 수요가 4배까지 급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또한, 텍사스 전력망(ERCOT) 연구에 따르면 주거 부문의 난방 전기화는 겨울 피크 전력 수요를 최대 36% 증가시킬 수 있으며, 이는 약 12GW의 추가 용량을 요구한다.


히트펌프 기술 자체도 혹한기에는 효율 저하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기온 5℃에서 높은 성능을 발휘하던 히트펌프는 영하 10℃로 기온이 떨어지면 성능 계수(COP)가 절반 가까이 감소한다. 이는 극한의 추위에서 히트펌프가 동일한 열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해야 함을 의미하며, 겨울철 전력 수요 증가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히트펌프는 연간 에너지 사용량의 63%를 11월에서 2월 사이에 소비하며, 이 기간 동안 전력 소모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러한 겨울철 부하 증가는 별도의 대책 없이 진행될 경우 전력망을 압도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


이러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다각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건물 단열 성능 개선과 고효율 기기 보급을 통해 난방 수요 총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단열 강화는 겨울철 열 손실을 줄여 전력 부하를 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둘째, 열저장 시스템이나 배터리 기술을 활용해 난방 전력 수요를 시간대별로 분산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테슬라 파워월과 같은 가정용 배터리는 겨울 피크 시간대 히트펌프의 전력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셋째, 최한기에는 전기 외에 보조 열원을 활용하는 듀얼 연료 전략을 통해 피크 부하를 관리해야 한다. 바이오매스나 그린 수소 보일러와 같은 저탄소 대체 열원은 전력망 부담을 줄이면서도 배출 감축 목표를 유지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결국, 난방 전기화의 성공 여부는 이 엄청난 겨울 피크를 감당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 확충과 수요 관리 혁신의 병행 여부에 달려 있다. 전력망 용량을 확대하고, 스마트 그리드 및 수요 반응 프로그램을 통해 피크 부하를 분산시키는 기술적 해결책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수요 반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히트펌프는 피크 시간대 전력 소비를 자동으로 조절하여 전력망 부담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지열 히트펌프(GSHP)와 같은 대안 기술은 혹한기에도 안정적인 효율을 유지하며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 에너지부의 냉한 기후 히트펌프 기술 챌린지와 같이 영하 26℃에서도 작동 가능한 고효율 히트펌프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적 노력도 필수적이다.


건물 난방의 전기화는 탈탄소화를 위한 필연적 전환점이지만, 전력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력망의 안정성과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 인프라 투자,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의 노력이 향후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의 기반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5. 전기차의 잠재력을 완전히 살리려면 전력망이 더 깨끗해져야 한다


도로 위의 내연기관을 전기모터로 교체하는 전기차 전환은 대표적인 에너지 전환의 상징이다. 전기차는 주행 시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 효율도 엔진 자동차보다 높아 이상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기차도 결국 전기를 먹고 달린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전기차 자체의 배출은 없지만, 그 전기에 섞인 탄소가 사실상의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기차는 제조 단계에서 배터리 생산 등으로 휘발유차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따라서 전기차의 실제 탄소 감축 효과는 그 차량이 평생 먹는 전기의 청정도에 좌우된다.


예를 들어 전력의 상당 부분이 저탄소원으로 공급되는 유럽의 경우, 소형·중형 전기차 한 대는 내연기관차 대비 수명주기 배출을 약 45~65% 줄여준다고 한다. 이는 전기 생산에서 석탄 등 화석연료 비중이 낮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다. 반면 인도처럼 전체 전력의 75%를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과 같은 전력 믹스라면, 전기차는 최고 효율 내연기관차보다도 많은 CO₂를 배출할 수 있다. 심지어 평균 수준의 일반 차량과 견줘도 탄소 배출 저감 효과가 미미할 정도다. 전기차 보급이 오히려 탄소 감축의 공염불이 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물론 다행히도 전력망은 점점 탈탄소화되고 있다. 만일 인도가 맥킨지의 기후공약 이행 시나리오대로 전력 부문을 서서히 개선할 경우, 지금 인도에서 전기차를 산다고 해도 그 차량은 수명기간 동안 최고의 내연기관차보다 15%가량 적은 CO₂를 배출하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교훈은 분명하다. 전기차의 친환경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전력망의 동반 탈탄소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정책적 방향도 차량 보급 장려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발전 mix의 개선과 그리드 그린화(grid greening)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실행 신호로서 정부와 전력회사는 전기차 확산 속도에 발맞춰 전력 생산의 탄소집약도를 줄이고, 기업들은 EV 이용자들에게 재생에너지 전력(예: 녹색 요금제 등)을 공급하는 체계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6. 철강·시멘트·플라스틱·암모니아: 초고온 산업의 탈탄소 난제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석유화학), 암모니아... 이 네 가지 현대 산업의 핵심 재료 없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4대 재료 산업”만 합쳐도 산업 부문 탄소배출의 2/3를 차지한다. 이 부문들이 유독 배출이 많은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나는 초고온 열원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들고(용광로), 석회암을 구워 시멘트를 만들며(소성로), 탄화수소를 분해해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고(분해로),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과정(합성반응)까지 모두 섭씨 수백도 이상의 고온을 필요로 한다. 이 열을 오늘날 대부분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다. 다른 하나는 화학적 원료(Feedstock) 문제다. 플라스틱은 석유 없이 만들어낼 수 없고, 철강 제련에도 코크스(석탄)가 직접적인 환원제로 투입된다. 에너지 소비 외에 재료 자체로 화석탄소가 투입되어 제품 생산과정에서 CO₂가 발생하는 구조다. 따라서 이들 산업에서 탈탄소를 이루려면, 수백도의 공장을 전기로 돌리고, 화석탄소 투입을 대체할 새로운 공정을 찾는 이중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산업들은 이런 고민이 덜하다. 식품가공이나 종이 생산 등 대부분 산업 공정은 필요한 열의 90% 이상이 500℃ 이하의 중저온 열이다. 중저온 영역은 전기 히트펌프, 저온 폐열회수, 전기 보일러 등 기존 기술로도 상당 부분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4인방” 산업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산업계와 학계가 전기로 초고온을 내기 위한 여러 시도를 시작하긴 했다. 전기로만 철을 만드는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는 이미 상용화돼 있지만 주로 스크랩 재활용에 쓰이고, 시멘트 소성로를 위한 전기 열원 기술도 개발 단계에 있다. 석유화학에서는 전기 크래킹(e-cracker)으로 나프타 분해 열을 공급하려는 파일럿이 등장했고, 암모니아 생산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고 질소와 합성하는 그린 암모니아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들 전기화 기술은 이제 걸음마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고온 공장은 아직 화석연료 불길에 의존한다.


기술이 있다 해도 공장 전체의 설비를 갈아엎는 막대한 자본 투입과 가동 중단이 필요해,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한편 바이오연료처럼 대체 연료로 기존 화로의 불길을 대체하는 접근도 가능하나, 이 또한 안정적 연료 공급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난관이 있다. 이처럼 산업 열공정의 탈탄소화는 기술적, 경제적, 운영적 장애물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 될 기회요인이 있다. 전기화는 장기적으로 효율 향상과 비용 절감, 그리고 전력수요 유연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산업 공정이 전기화되면 남는 전력을 활용해 열을 저장하거나 생산 일정을 조정하는 등 산업 전력수요를 “수요반응 자원”으로 활용할 여지도 생긴다. 궁극적으로 4대 산업의 탈탄소 난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실행 신호는 정부의 과감한 R&D 지원과 기업들의 실증 투자다. 초고온 전기 기술,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적용, 수소환원제철 등 다양한 솔루션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시험하고 상업화해야만, 2030년 이후 본격적인 설비 전환의 길이 열린다.



7. 신기술은 기존 설비 교체 “골든타임”에 맞춰 준비돼야 한다


탄소집약적 산업 설비들은 수명이 길다. 자동차나 보일러만 해도 10~20년은 쓰고, 발전소나 제철소는 몇십 년씩 가동된다. 이런 자산이 한 번 지어지고 나면 그 기간 동안 탄소를 뿜어내며 굳건히 버틴다. 에너지 전환의 물리적 현실 중 하나는, 이러한 장수 설비들을 언제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의 문제다. 아무리 뛰어난 저탄소 신기술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기존 자산의 교체 주기라는 창(window)에 맞춰 기술이 준비되어 경제성까지 확보되어 있어야만 실제 전환이 이뤄진다. 대표적 예가 철강산업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18억 톤 철강이 생산되는데, 이는 길이 2km의 금문교 2만 4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 어마어마한 철강의 대부분은 1,400기 이상의 고로(용광로)에서 쏟아져 나온다. 고로-전로 공정은 석탄을 태워 철광석을 환원·용해하여 선철을 만들고 강철로 정련하는데, 탄소 배출이 막대하다. 문제는 이 고로들이 한 번 가동되면 10~20년에 한 번 내화벽돌을 새로 쌓는 대수리(라이닝 교체)를 거쳐 여러 세대에 걸쳐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침 앞으로 2030년까지 전 세계 고로의 60%가 라이닝 교체 시기를 맞는다. 다시 말해, 2030년 전후로 절반 이상의 고로에 대규모 투자 결정이 내려질 “기회의 창”이 열린다. 이때 각 기업들은 선택해야 한다. 수십 년 더 쓸 각오로 고로에 재투자할지, 아니면 과감히 철스크랩 기반 전기로나 수소환원제철 등 새로운 저탄소 생산공정으로 갈아탈지이다. 불행히도 현재로선 핵심 대안 기술인 수소 직접환원-전기로 공정이 상업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비용 경쟁력도 낮은 단계다. 게다가 신규 공정 도입에는 초반 막대한 투자가 들고 운영 노하우도 부족하다. 만약 기술과 경제성 측면에서 대안이 제때 준비되지 않으면, 철강업체들은 결국 눈앞의 고로 수리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해당 설비는 또 10년 넘게 화석연료와 탄소배출에 묶여버리고 만다. 이는 비단 철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전소, 정유·석화플랜트, 시멘트 가마 등 온실가스 다배출 자산들은 저마다 교체 결정의 순간이 온다. 에너지 전환 전략은 이 설비 교체의 골든타임에 신기술이 먹힐 수 있도록 앞당기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실행 신호는 정부의 정책적 유인과 기업의 선제적 투자를 통해, 노후 자산의 교체 시점에 맞춰 신기술의 상용화와 원가절감이 앞당겨지도록 하는 일이다. 늦어도 2030년까지는 철강 수소환원제철, 차세대 연료전지 발전, 전기화학적 시멘트 생산과 같은 대체 기술들을 충분히 검증하여 “카드”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8. 탄소 포집은 잠재력 높지만 적용 어려운 곳이 많다


배출이 많은 기존 자산을 무작정 조기 폐기할 수 없다면, 탄소 포집·이용·저장(CCUS) 기술을 부착해 연명시키는 방법이 있다. CCUS는 수십 년 된 기술로, 이미 자연가스 정제나 바이오에탄올 생산 등 CO₂ 농도가 높은 공정에서는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출원은 CO₂ 농도가 낮은 배기가스를 내뿜는 형태다. 예를 들어 시멘트 공장이나 가스 발전소의 배출가스에는 희박한 CO₂가 섞여 나오는데, 이를 잡아내려면 어마어마한 배기가스를 빨아들여 처리해야 하므로 비경제적이다. 전환의 물리적 현실은 CCUS가 진가를 발휘하려면, 지금까지 거의 손대지 못한 이런 “힘든 곳”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나리오상 넷제로에는 결국 시멘트, 철강, 가스 발전에도 CCUS를 다는 상황이 가정되지만, 현재 기술로 이들의 포집 비용은 기존 대비 3~4배 높다고 한다. 낮은 농도의 CO₂를 포집하려면 훨씬 많은 에너지와 설비, 신소재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배출원의 50% 이상이 이런 희석된 형태로 CO₂를 내뿜고 있으며, 35%가 중간 농도, 5~10%만 고농도 배출원이라 한다. 결국 CCUS가 “게임체인저”가 되려면 기술적 혁신으로 비용 장벽을 낮추고, 활용 가능한 배출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여기에는 분리막, 흡수제 등 신소재 개발, 공정 효율 향상, 그리고 포집 이후의 CO₂를 처리할 운송망과 영구 저장 시설 확충도 포함된다. 나아가 포집한 CO₂를 합성연료 생산 등 유용하게 쓰는 신규 수요 창출도 병행되어야 한다. CCUS는 잠재적으로 기후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인 리스크는, 이 어려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CCUS는 일부 틈새 용도 외에는 빛을 못 보고 그 많은 화석 기반 자산을 그대로 두거나 폐쇄하는 양극단의 선택만 남는다는 점이다. 지금의 실행 시그널은 정부와 업계가 CCUS를 장려하되 그 성패를 냉정히 직시하는 것이다. 대규모 데모 프로젝트를 통해 원가 절감과 성능 향상을 끌어내고, 한편으로는 CCUS가 성공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다른 감축 계획도 병행하여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9. 수소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낮은 효율의 함정을 주의해야 한다


전기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탈탄소 과제의 해결사로 수소가 각광받고 있다. 수소는 연소 시 CO₂를 배출하지 않고, 철강·화학 등 산업공정의 원료로도 쓰일 수 있으며, 고온의 연료로도 활용 가능해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에너지 저장과 운반 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예컨대 수소는 무게당 에너지밀도가 높아 장거리 운송이나 장주기 저장에 유리하며, 액체 연료 대체가 필요한 항공·선박 분야에도 후보로 꼽힌다.


이렇듯 수소는 에너지 전환의 만능 열쇠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낮은 에너지 효율이다. 수소를 활용한 에너지 사이클에는 여러 단계의 변환이 수반되는데, 그 과정마다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압축·액화하여 저장·수송하고, 다시 연소하거나 연료전지로 전기를 뽑아내는 전체 과정을 따지면, 최초 전기에너지 대비 40~75%가 손실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결국 동일한 일을 하는 데 배터리나 전기직통 장치보다 2배에서 많게는 4배까지 에너지를 더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FCEV)는 재생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차량을 달리게 하기까지 투입한 에너지 중 25~35%만 유효 구동에 쓰인다. 반면 배터리 전기차(BEV)는 전력의 80~90%가 실제 차량 구동으로 이어진다.


즉 전기차에 비해 수소차 효율은 1/3~1/4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산업용 보일러도 전기히트펌프를 쓰면 수소 보일러 대비 최대 8배 효율적으로 열을 낼 수 있고, 전력 저장도 리튬이온 배터리가 파워-to-가스-to-파워(수전해->수소저장->발전) 경로보다 3배 이상 효율적이다. 정리하면 수소는 “만능”이라기엔 너무 비싼 에너지라는 현실이 있다. 이 물리적 사실을 무시하면, 자칫 귀중한 재생전기를 비효율적 경로로 낭비해버릴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수소를 포기할 수는 없다. 수소는 분명 전기화가 어려운 틈새 영역에서 요긴한 솔루션이 될 것이다. 따라서 수소경제의 열쇠는 선택과 집중이다. 수소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예: 철강 환원제, 장거리 운송 연료, 계절성 저장 등)에 한해 우선 활용하면서, 그마저도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한 기술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차세대 고효율 수전해 기술 개발, 수소를 최종 형태 대신 중간제품(예: 철광석을 직접 환원해 만든 철괴 등)으로 바꿔 운송하는 방법, 수소 운송보단 현지 생산·이용을 늘리는 전략 등이 필요하다. 결국 실행적으로 중요한 것은 수소를 “스마트하게” 쓰는 전략이다. 수소의 물리적 특성과 효율 한계를 명징하게 인식하고, 꼭 필요한 곳에만 도입해 전력과 수소가 조화를 이루는 탈탄소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10. 저탄소 기술에는 핵심 광물이 대량으로 필요하며, 공급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기, 전기차 배터리, 송전선… 겉보기엔 깨끗한 미래 기술이지만, 그 속은 온통 광물 자원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덩어리다. 리튬, 니켈, 구리, 코발트,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자원 없이는 에너지 전환도 없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탄소중립 이행 시나리오에서 향후 몇 년간 전례 없는 광물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리튬 수요는 2022년의 7배, 니켈과 코발트는 2배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풍력 터빈과 전기모터에 쓰이는 디스프로슘과 테르븀 등의 희토류는 4배까지 뛴다.


전력망과 전기차에 필수적인 구리는 1.5배 정도 증가하지만 절대량이 커서 공급 압박이 크다. 수요 전망만 보면 “지구에 광물이 충분한가” 걱정이 들지만, 지질학적으로는 매장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공급 속도다. 신규 광산 탐사와 개발에는 보통 10년 넘게 걸리고, 정제·제련 설비를 확충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든다. 현실적으로 현재 발표된 개발 프로젝트들만으로는 2030년 이전에 수요 증가를 못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20년대 후반 리튬 등 몇몇 광물은 공급부족 위험이 중간에서 높음 수준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도 크다. 리튬, 코발트, 니켈, 희토류 등 주요 광물은 상위 3개 생산국이 전세계 생산의 50% 이상을 맡고 있고, 일부는 80% 이상을 좌지우지한다. 예컨대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 희토류는 중국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제 능력의 쏠림인데, 오늘날 배터리 핵심 광물의 60~70% 이상이 중국에서 정제된다. 이처럼 공급망이 취약하고 쏠려 있다 보니, 향후 광물 확보 전쟁이 에너지 전환의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감 있게 제기된다.


하지만 “광물 부족하니 에너지 전환 못 한다”는 패배주의는 금물이다. 물리적 현실은 분명하지만, 인간의 대응도 시작되고 있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기술 혁신과 투자로 대응 중이다. 저품위 광석을 경제적으로 캐내는 신기술, 탐사 효율을 높이는 디지털 기술, 모듈식 소형 정제 플랜트로 공장건설 기간을 단축하는 시도 등 더 빨리 더 많이 캐내는 전략이 모색되고 있다. 또한 수요 측면 해법도 중요하다. 하나는 재활용이다. 배터리와 전자폐기물 등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리사이클링 산업을 육성하면, 버려지는 자원을 재투입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대체재 개발이다. 예를 들어 영구자석에 꼭 들어가는 네오디뮴을 안 쓰는 모터(희토류 프리 모터) 기술이 이미 등장했고, 2030년에는 신모터가 신규 모터 공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거란 전망도 있다. 소재 효율화를 통해 적게 쓰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여 동일 성능에 필요한 리튬과 코발트를 줄이는 연구도 활발하다.


결국 이 마지막 현실이 주는 메시지는 에너지 전환의 성공이 산업 공급망 전략과 긴밀히 연결됐다는 점이다. 지금 실행해야 할 일은 글로벌 차원에서 핵심 광물 공급망 투자를 확대하고, 자원 생산국과 협력을 강화하며, 동시에 국내외에서 재활용 기술과 대체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물리적 한계로 보였던 자원 장벽을 기술과 순환경제로 돌파하는 전략적 안목이 요구된다.


결론: 물리적 한계는 핑계가 아닌 설계도다


에너지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그 길은 알록달록한 태양광 패널과 바람개비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열 가지 물리적 현실은 에너지 전환이 마주한 거대한 산들이다. 그러나 이 물리적 한계들은 단순히 “안 된다”는 변명의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혁신의 나침반이자 미래 시스템의 설계도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현실을 직시한 자만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고에너지밀도의 연료를 대체할 신소재 배터리, 초고온 공정을 탈탄소화할 미래형 공장, 전력 피크를 다루는 지능형 그리드, 핵심 광물 수요를 줄일 순환기술... 이 모든 해법은 바로 그 “현실의 벽”들을 마주하면서 나온 산물이다. 에너지·기후 분야의 실무자와 정책입안자들은 이제 기술과 비용 차원의 계산에 더해, 물리적 한계 조건들을 전략의 전면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


전력 엔지니어, 광산 전문가, 화학공학자, 시스템 공학자들이 기후 전략의 주역으로 등장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추상적 약속이 아니라 굴뚝, 배전선, 파이프, 지하자원으로 이어지는 물질적 도전임이 분명해졌다. 결국 물리적 현실을 직시한 현실주의적 낙관론이 필요하다. 저 거대한 물리적 장벽들은 우리가 못 넘어설 이유가 아니라, 어떻게 넘어설지를 알려주는 청사진이다. “안 된다”는 한계 인식에 머물지 말고, “어떻게 하면 된다”는 공학적 상상력과 실행력을 총동원할 때, 비로써 에너지 전환은 구호에서 현실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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