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클라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에 대한 생각
진보주의 진영은 한때 그 방안을 알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 운동이 사회 정의와 경제 정의 분야에서 획기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29년 대공황 직후에 탄생한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탄생한 무수히 많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다.
나는 기후 변화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수준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위기 앞에 섰지만,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다시금 맞고 있다. 말하자면, 기후 변화는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새로운 자원의 장악과 압제의 광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기후 변화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수준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위기 앞에 섰지만,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다시금 맞고 있다. 말하자면, 기후 변화는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새로운 자원의 장악과 압제의 광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산업 혁명 초기부터 오염과 노동력 착취는 정비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도시 거주민들이 단합하여 깨끗한 공기를 요구했을 때, 기업은 마지못해 근로 기준과 환경 기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다가 자유 무역이 출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대부분의 장벽이 제거된 덕분에 기업들은 인건비가 상승할 사소한 조짐만 보여도 당장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수많은 대규모 공장들이 인건비가 상승하는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고, 지금 또다시 중국을 떠나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방글라데시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류, 가전, 가구의 생산지는 중국이지만, 이러한 경제 모델의 생산지는 미국이다.
종합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저탄소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정책들에는 공정성이 요구된다. 부자들의 과도한 소비를 상쇄하겠다고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들에게 더 큰 희생을 떠 안겨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저렴한 대중교통과 깨끗한 경전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대중교통 수단과 인접한 곳에 적당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들을 공급하고, 도시마다 고밀도 주택 단지를 공급하고, 자전거 이용자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통행로를 마련하고, 토지 관리를 통해 도시 개발의 무계획적인 확산을 예방하고, 저 에너지 현지 생산 방식의 농업을 장려하고, 도시 계획을 통해 학교와 의료 단지 등 필수적인 기반 시설을 대중교통 인접지와 보행자 친화적인 지역에 집중 배치하고, 제조업체들에게 전자 제품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며 잉여 설비와 노후 설비를 크게 줄이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우리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기후 행동이 대대적인 규모와 속도로 전개되길 바란다면, 좌파는 우파의 행동을 재빨리 따라 배워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그런데 경제는 늘 어렵다) 보수 세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보호 정책이 절실하다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기후 행동을 지연시키고 그 흐름에 역행해 왔다. 진보 세력 역시 똑같은 일을 하면 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야말로 훨씬 안정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공공 부문의 강화 및 전환을 추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고, 기업의 탐욕을 철저하게 제어하는)을 건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우리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기후 행동이 대대적인 규모와 속도로 전개되길 바란다면, 좌파는 우파의 행동을 재빨리 따라 배워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그런데 경제는 늘 어렵다) 보수 세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보호 정책이 절실하다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기후 행동을 지연시키고 그 흐름에 역행해 왔다. 진보 세력 역시 똑같은 일을 하면 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야말로 훨씬 안정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공공 부문의 강화 및 전환을 추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고, 기업의 탐욕을 철저하게 제어하는)을 건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 두자. 독일의 재생 에너지 혁명이 출발할 수 있었던 토대는 바로 원자력 반대 운동이며(1980년대에 덴마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수많은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폐지하려는 대중적인 열망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에너지 전환은 전혀 진척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지금까지의 전환 속도로 미루어 보아 원자력과 화석 연료를 동시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2012년 독일 항공 우주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 연합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67퍼센트가 재생 에너지로 충당될 수 있고, 2050년까지는 96퍼센트 충당이 가능하다. 34 물론 이러한 예상은 제대로 된 정책이 실시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은 결코 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원자력 지지자들이 무슨 말로 현혹하더라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송하고 정련하는 과정,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가 투입된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10~19년 동안에는 줄곧 더러운 화석 연료로 생산한 전력이 소모될 것이다(이에 비해 풍력 발전소 건설에는 일반적으로 2~5년이 소요된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진정한 재생 에너지 시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원자력에 투자한다면, 우리가 원자력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이 빙하와 극지의 만년설은 계속 녹아내릴 것이다. 게다가 지구의 모든 사람 앞에는 더 위험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시설 인근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생 에너지 시설은 화석 연료나 원자력에 비해 위험성이 훨씬 적다.
빌 게이츠 역시 말과 돈 사이에 비슷한 방어벽을 친다.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2013년 게이츠 재단을 통해 대형 석유 기업인 BP와 엑슨모빌 두 회사에만 12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것은 화석 연료 투자의 시작에 불과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서 게이츠와 브랜슨은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기후 변화 문제를 인식했을 당시, 게이츠 역시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당장의 현실적인 대응책을 구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미래의 기술적인 묘책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게이츠는 테드 강연회와 기명 기사, 인터뷰 그리고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연례 서한을 통해 정부가 〈에너지 기적〉을 위해 연구 개발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게이츠가 말하는 기적이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원자로(그는 원자력 신생 기업인 테라파워 TerraPower의 회장이자 주요 투자자다)와 대기 중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기계(그는 이런 기계 개발 분야의 주요 투자자다), 그리고 직접적인 기후 조절(그는 태양열 차단을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 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고 있으며, 허리케인을 통제하는 몇 가지 특허에도 이름을 올려 두었다)을 뜻한다. 그는 기존의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등한시한다. 게이츠는 〈우리는 이미 확보한 기술의 배치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태양광 패널 같은 에너지 해법을 〈귀엽지만 비경제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귀여운 기술은 독일 전력의 25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서사의 힘, 즉 기술이 우리 행동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기적의〉 에너지를 찾겠다며 신비주의에 가까운 사업을 추진하는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시장 붕괴와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탈규제와 대대적인 민영화의 시대에 번창한 신흥 재벌들은 세계를 구하는 일에 엄청난 자산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의 기술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는 최후의 순간 선량한 천재가 나타나 우리를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리라는,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에 늘 등장하는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
2009년에 미어볼드는 〈성층권 방패 StratoShield〉라는 이름을 가진 장치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헬륨 풍선을 이용해 30킬로미터 길이의 호스를 하늘에 띄우고, 이 호스로 황산 에어로졸을 분사하는 장치였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기후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치켜세웠다. 코펜하겐 정상 회의가 끝나고 이틀 만에 미어볼드는 CNN에 출연하여 자신이 개발한 장치(그의 표현에 따르면 〈주문만 하면 당장 피나투보 화산을 배달해 줄 수 있는〉)가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홍보했다.
• 기후 변화를 야기한 인간이 태양 복사 관리를 적절하고 안전하게 규제할 수 있을까?
• 태양 복사 관리 규제와 관련해서, 지구가 우리의 이익에 맞추어 조종될 수 있다는 관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게 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 우리 입장을 삼각형에 표시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그룹별로 흩어졌던 참가자들이 각자 표시한 삼각형 마인드맵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다시 모일 때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커녕 언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질문은 무언의 질책처럼 강의실 벽에 그저 걸려만 있었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왕립 학회는 오랜 전통과 유명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과학 혁명과 화석 연료 시대의 출범을 돕는 등, 이런 문제들을 심사숙고해야 할 특별한 위치에 자리한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옛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오만함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농민이며 시인인 웬들 베리는 〈오만한 무지〉라는 표현을 썼다. 〈지나친 규모로 일을 벌이고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배짱을 우리는 오만한 무지라고 부른다.〉
요컨대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경제적 현상 유지를 깨뜨릴 기후 위기 대응책의 구상을 기피하고, 결국 희망 사항(기적의 상품이나 탄소 시장, 또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연료〉)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몹시 취약하거나 위험성 높은 이러한 해법들에 우리의 집단적인 안전을 맡기는 태도는,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는 일종의 주술적 사고다. 자칭 실용주의자들 역시 지구를 파멸적인 온난화에서 구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지금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기후 변화의 과학적 현실을 부정하는 허틀랜드 지지자들과, 기후 변화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산업계를 약간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에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망상에 빠져 있는지는, 나로서는 가려내기 어렵다.
영국의 기후 운동가이자 저술가인 조지 마셜은 이렇게 썼다. 〈누군가 근사한 금연 캠페인을 새로 구상해서, 폐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그래픽 이미지에 《건강을 지키는 건 쉽다. 한 달에 한 개비씩만 담배를 줄이라》는 문구를 달아 놓았다고 치자. 이 캠페인이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리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다. (……) 캠페인이 제시하는 목표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이미지와 문구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이 광고를 가당찮다며 비웃어 넘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우리 집 뒷마당엔 절대 안 돼 Not in My Backyard〉가 아니다. 프랑스의 프래킹 반대 행동주의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여기도 안 되고, 다른 곳도 안 돼 Ni ici, ni ailleurs〉로, 한마디로 새로운 탄소 개척지를 단 한 군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비난의 뜻으로 동원되던 〈님비 NIMBY〉라는 용어는 이제 완전히 힘을 잃었다. 웬들 베리는 E. M. 포스터의 표현을 빌려 〈환경 보호의 핵심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면 생태계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지역도 희생 제대로 격하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욕구 충족 경로를 변경해야만 한다.
우리의 시선은 휴대전화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우리의 주의력은 자극적인 기사들에 분산되어 있으며, 우리의 신의는 힘겨운 부채와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뭉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고 따를 수 있는가? 아니, 그보다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본질적으로 우리의 과업은 대안 정책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핵심 세계관을 제압할 만한 새로운 세계관을 천명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세계관은 초개 인주의 대신 상호 의존성, 독점적 지배 대신 호혜성, 권위적인 위계 대신 협력을 근간으로 삼는다. 이러한 세계관을 구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며,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기후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금껏 배출해 온 온실가스로 인해 불가피하게 맞이하게 될 뜨겁고도 험악한 기상 상황을 고려할 때, 만인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확고한 신념과 깊은 연민을 느끼는 능력은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