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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Surplus Square Mar 12. 2020

(책 읽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에 대한 생각

어떤 책? 기후변화에 대한 아주 많은 생각을 읽고 싶다면, 적극 추천

추천 이유: 비록 5년 이상 지난 책이지만, 기후변화를 다각도로 밀도 있게 분석한 책은 없을 것 같다

단점: 너무 길다. 너무 많은 주제를 동시에 다룬다. 모두 공감하기 힘들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다수도 다 읽기는 어렵다(그럼에도 다 읽은 나를 칭찬...)

그럼에도: 기후변화의 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환경은 과거에는 산업을 발목 잡는 귀찮은 존재였다면, 이제는 모든 가치 앞에 서있는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선하는 것이 되었다.


저자는?

시민운동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사람이 있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ien). 그녀는 한마디로 압도적인 사람이다. 엄청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행동을 한다.


그녀는 첫 번째 저서 No logo(1999)로 유명세를 얻었다. 거대 기업의 이면을 고발하는 책인데, 700페이지가 넘는 압박을 주지만 다른 생각을 읽는다는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The Shock Doctrine(2007) 역시 엄청난 히트를 얻었다. 그리고 이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s Everything: Capitalism vs. the Climate)는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였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본질적 원인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꼬집는다. 출간한 모든 책들이 박찬호 형님과 같다. Too Much Talk.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 모든 내용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운동가의 생각'의 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녀가 기후변화에 헌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귀찮은 환경운동가의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구글과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읽어보자.)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전자책 서고에 있었는데, 2019년 그녀의 신작 <Green New Deal>을 읽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야지 마음먹었다가... 1주일 동안의 거의 모든 여유 시간을 갈아 넣고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실제 읽은 기간은 3개월은 소요된 듯...)

*저자가 TMI다 보니 리뷰 역시 시작도 전에.. 그런 듯...



*리뷰에서의 구분은 별로 큰 의미는 없다. 평소 책 읽은 소감을 페북에 옮기면서 읽는데(좋은 책일 때), 그 순서대로 정리해보았다.

진보주의 진영은 한때 그 방안을 알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 운동이 사회 정의와 경제 정의 분야에서 획기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29년 대공황 직후에 탄생한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탄생한 무수히 많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다.


나는 인류는 어쨌든 진보해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보는 위기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일순간 이뤄지지는 않지만 꾸준한 누적과 함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위기 상황일 때, 새로운 차원으로 도달하는 진보가 나온다고 본다.


역시, 추상적이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인류가 비로소 위기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할 때 '기후전쟁'을 통해 제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후전쟁이 필요한 상황이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기후 변화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수준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위기 앞에 섰지만,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다시금 맞고 있다. 말하자면, 기후 변화는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새로운 자원의 장악과 압제의 광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의 결이 비슷한 부분이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후변화 대응은 소수의 권력자, 엘리트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에서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후변화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이를 '기후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나는 기후 변화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수준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위기 앞에 섰지만,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되살리는 정책들을 진전시킬 기회를 다시금 맞고 있다. 말하자면, 기후 변화는 쇼크 독트린의 궁극적인 실현(새로운 자원의 장악과 압제의 광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충격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소수의 수중에 놓인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권력을 다수의 대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기후변화를 풀어내는 과정은 우리 사회 전반의 체계, 구성요소 간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정의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기후변화 문제를 푸는 일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기후변화를 문제를 푸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여기에 정의와 분배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어려운 문제를 더 복잡한 문제로 바꾸는 요소가 아닌가는 생각도 일부 들었다.



기후변화를 선행적으로 감지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특징은 기존 경제, 산업생태계에서 싫어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선행적 운동가 그룹에게 신이 준 선물은 "재생에너지 비용 하락" 같다. 10년 전, 태양광과 풍력이 매우 비싼 자원일 때, 그들은 에너지 산업계 자이언트들의 질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근데, 최근 10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가능성이 실현되며 근본적 혁신, 전환이 밀어닥치고 있다. 수십 년간 비주류였던 운동가 그룹에 산업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이제 대안이 아닌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주장을 모두 다 수용하긴 벅차다. 나 역시 기존 전력산업 주류의 일원이었고 아직 상상력보다는 땅 위의 현실을 고려한다. 다만, 변화를 갈망하고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랄 뿐이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모든 참여자들은 독일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의 미친 추진이 성공해야 확산이 거세지고 그 흐름이 역행하지 못하게 강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존 에너지 산업의 거대 세력은 독일이 망하길 바라고 있는데, 독일은 여러 문제가 있지만 큰 틀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제 석탄도 줄이며, 궁극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선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탈원전이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탈원전이 재생에너지 초기 생태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균형은 근본적으로 한계성을 가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오미 클라인 역시, 기후변화 대응은 전력산업에만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철도교통과 대중교통의 확대를 주장한다.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공유차와 전기차, 자율주행이 기후변화를 극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담당할 잠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 혁명 초기부터 오염과 노동력 착취는 정비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도시 거주민들이 단합하여 깨끗한 공기를 요구했을 때, 기업은 마지못해 근로 기준과 환경 기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다가 자유 무역이 출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대부분의 장벽이 제거된 덕분에 기업들은 인건비가 상승할 사소한 조짐만 보여도 당장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수많은 대규모 공장들이 인건비가 상승하는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고, 지금 또다시 중국을 떠나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방글라데시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류, 가전, 가구의 생산지는 중국이지만, 이러한 경제 모델의 생산지는 미국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신흥 발전 국가이자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 등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열심히 화석연료를 써왔던 선진국에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찌 보면, 유럽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를 무시하는 트럼프와 무관하게 기후 대응 관련 산업과 정책이 다수의 주에서 굴러가고 있는 미국도 불행 속의 다행이라 생각한다.


종합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저탄소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정책들에는 공정성이 요구된다. 부자들의 과도한 소비를 상쇄하겠다고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들에게 더 큰 희생을 떠 안겨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저렴한 대중교통과 깨끗한 경전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대중교통 수단과 인접한 곳에 적당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들을 공급하고, 도시마다 고밀도 주택 단지를 공급하고, 자전거 이용자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통행로를 마련하고, 토지 관리를 통해 도시 개발의 무계획적인 확산을 예방하고, 저 에너지 현지 생산 방식의 농업을 장려하고, 도시 계획을 통해 학교와 의료 단지 등 필수적인 기반 시설을 대중교통 인접지와 보행자 친화적인 지역에 집중 배치하고, 제조업체들에게 전자 제품 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며 잉여 설비와 노후 설비를 크게 줄이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모든 것에 걸쳐 있다. 먹고, 자고, 이동하고, 일하는 우리의 일상사를 바꿔야 한다. 사실 이를 하나로 묶는다면 에너지가 있다. 이동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 먹는데 쓰이는 에너지. 자고 생활하는데 쓰는 에너지.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썼던 에너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우리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기후 행동이 대대적인 규모와 속도로 전개되길 바란다면, 좌파는 우파의 행동을 재빨리 따라 배워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그런데 경제는 늘 어렵다) 보수 세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보호 정책이 절실하다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기후 행동을 지연시키고 그 흐름에 역행해 왔다. 진보 세력 역시 똑같은 일을 하면 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야말로 훨씬 안정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공공 부문의 강화 및 전환을 추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고, 기업의 탐욕을 철저하게 제어하는)을 건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운동은 전통적으로 우파가 싫어하고 회피한다. 그러나(혹은 그래서)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우파적으로 개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변화는 파괴와 창조를 수반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는 산업의 문을 닫고, 지속 가능한 산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이 더 많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제공할 때, 변화는 확산된다.


에너지는 매우 정치적이다. 가령 석유를 생산하고, 이동시켜, 얻는 일은 매우 외교적이고, 정치적이고, 또 자본주의적이다.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는데, 화석연료 이외에 대표적인 에너지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이다.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와 함께, 스스로를 청정에너지(Clean Energy)로 묶는다. 탄소 배출을 하지 않으니 '클린'하다는 의미다. 재생에너지 산업계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는 청정에너지 개념으로 묶기기 보다는 재생 가능한(renewable) 에너지 단독으로 존재하기를 선호한다. 우리나라 환경 운동가들은 재생에너지(공식용어)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의미를 좀 더 구체화시키며, 원자력을 '핵'에너지라 부른다. 사실 영어로 원자력이나 핵은 모두 Nuclear이기에 핵에너지가 사전적 의미로 더 명확하다 볼 여지가 있다. 다만, 핵은 핵무기와 핵폐기물을 연상시키기에 원자력 산업계에서는 '핵'은 정치적인 사람들이 쓰는 용어로 한정하는 특징이 있다.


나오미 클라인 역시, 원자력은 답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사실, 시민운동의 시초가 반전운동, 핵무기 반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기에, 대표적 시민운동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원자력이 전기 생산에 있어 11%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현재의 추세가 지속되면 20년 이내 5% 내외로 비중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전망을 고려하면 에너지 업계의 시각은 원자력 산업의 미래가 '나쁘다'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라 생각한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우리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기후 행동이 대대적인 규모와 속도로 전개되길 바란다면, 좌파는 우파의 행동을 재빨리 따라 배워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그런데 경제는 늘 어렵다) 보수 세력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보호 정책이 절실하다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기후 행동을 지연시키고 그 흐름에 역행해 왔다. 진보 세력 역시 똑같은 일을 하면 된다.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야말로 훨씬 안정적이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공공 부문의 강화 및 전환을 추진하고, 품위 있는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고, 기업의 탐욕을 철저하게 제어하는)을 건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 두자. 독일의 재생 에너지 혁명이 출발할 수 있었던 토대는 바로 원자력 반대 운동이며(1980년대에 덴마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수많은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폐지하려는 대중적인 열망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에너지 전환은 전혀 진척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지금까지의 전환 속도로 미루어 보아 원자력과 화석 연료를 동시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2012년 독일 항공 우주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 연합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67퍼센트가 재생 에너지로 충당될 수 있고, 2050년까지는 96퍼센트 충당이 가능하다. 34 물론 이러한 예상은 제대로 된 정책이 실시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은 결코 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원자력 지지자들이 무슨 말로 현혹하더라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송하고 정련하는 과정,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가 투입된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10~19년 동안에는 줄곧 더러운 화석 연료로 생산한 전력이 소모될 것이다(이에 비해 풍력 발전소 건설에는 일반적으로 2~5년이 소요된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진정한 재생 에너지 시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원자력에 투자한다면, 우리가 원자력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이 빙하와 극지의 만년설은 계속 녹아내릴 것이다. 게다가 지구의 모든 사람 앞에는 더 위험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시설 인근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생 에너지 시설은 화석 연료나 원자력에 비해 위험성이 훨씬 적다.



기술(숭배) 주의자 혹은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바라보는 (성공한) 일부는 기후변화 역시 대기과학의 형태로 또는 기적적인 기술로 한 방에/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시각을 비판한다. 대표적 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버진 에어라인의 브랜슨 등이다.

빌 게이츠 역시 말과 돈 사이에 비슷한 방어벽을 친다.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2013년 게이츠 재단을 통해 대형 석유 기업인 BP와 엑슨모빌 두 회사에만 12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것은 화석 연료 투자의 시작에 불과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서 게이츠와 브랜슨은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기후 변화 문제를 인식했을 당시, 게이츠 역시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당장의 현실적인 대응책을 구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미래의 기술적인 묘책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게이츠는 테드 강연회와 기명 기사, 인터뷰 그리고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연례 서한을 통해 정부가 〈에너지 기적〉을 위해 연구 개발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게이츠가 말하는 기적이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원자로(그는 원자력 신생 기업인 테라파워 TerraPower의 회장이자 주요 투자자다)와 대기 중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기계(그는 이런 기계 개발 분야의 주요 투자자다), 그리고 직접적인 기후 조절(그는 태양열 차단을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 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고 있으며, 허리케인을 통제하는 몇 가지 특허에도 이름을 올려 두었다)을 뜻한다. 그는 기존의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등한시한다. 게이츠는 〈우리는 이미 확보한 기술의 배치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태양광 패널 같은 에너지 해법을 〈귀엽지만 비경제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귀여운 기술은 독일 전력의 25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서사의 힘, 즉 기술이 우리 행동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기적의〉 에너지를 찾겠다며 신비주의에 가까운 사업을 추진하는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시장 붕괴와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탈규제와 대대적인 민영화의 시대에 번창한 신흥 재벌들은 세계를 구하는 일에 엄청난 자산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의 기술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는 최후의 순간 선량한 천재가 나타나 우리를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리라는,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에 늘 등장하는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전기공학의 세부분야인 전력경제로 학위를 받은 나로서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라는 탄식을 던지게 되는 지점이 이 책 여러 곳에 걸쳐 다수 존재한다. 물론, 나 역시 친환경 운동가들의 생각이 실현되기를 갈망한다. 다만, 현실과 이상과 간격은 여전히 크다. 재생에너지가 불과 10년 전부터 빠르게 확대되었고, 새로운 가능성을 넘어 에너지 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과정 중에 있지만 재생에너지 100%는 가야 할 길이지만 언제 갈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괴짜 경제학>으로 인기를 끈 더브너와 레빗은 2탄으로 <슈퍼 괴짜 경제학>을 내며 여러 무리수를 둔다. 유튜버가 주목을 끌기 위해 지나친 과장, 자극적 소재를 선택하는 것처럼 잘 모르는 소재를 우스꽝스럽게 다룬다. 화산 폭발 후, 이산화황이 기온을 낮추는 것처럼, 하늘을 이산화황으로 덮는 지구공학적 방법이 기후변화 대응에 경제적으로 매우 효과적이라며 챕터 한 개를 소진하며 소개한다. 더브너, 레빗 덕분에 스스로의 합리성에 취해있던 다수는 이들을 지지하며 기후 변화가 과장되었고 웟 샷 설루션인 지구공학 방법을 쓰면 해결될 일이라며, 기후변화 대응에 헌신하는 집단을 조소했다.


하나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는 방식은 "지구를 반대로 돌려 과거로 돌아가는 일"처럼 간단하지만 현실 세계에 없다는 게 문제다. 지구공학적 방식은 간단하고 효과적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반대라는 게 문제다.

나오미 클라인도 이 책에서 그 부분을 지적한다. 머리가 좋고, 지식이 충분하다고 자부하는, 그리고 자본도 두둑이 있는 사람일수록 기술에 대한 환상이 심하다. 모두가 아이언맨처럼 핵융합 기술을 자유자재로 쓴다면 에너지 문제 따위겠지만... 현실이 그리 단순할까?


한편, "특정 기술이면 다 될 거야~!"라든지 "~는 신이 준 선물, 에너지"라 주장하는 부류를 오만함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오만한 무지.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이슈에서 어떤 쪽이 오만한 무지에 빠져있는 것일까?


2009년에 미어볼드는 〈성층권 방패 StratoShield〉라는 이름을 가진 장치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헬륨 풍선을 이용해 30킬로미터 길이의 호스를 하늘에 띄우고, 이 호스로 황산 에어로졸을 분사하는 장치였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기후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치켜세웠다. 코펜하겐 정상 회의가 끝나고 이틀 만에 미어볼드는 CNN에 출연하여 자신이 개발한 장치(그의 표현에 따르면 〈주문만 하면 당장 피나투보 화산을 배달해 줄 수 있는〉)가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홍보했다.
• 기후 변화를 야기한 인간이 태양 복사 관리를 적절하고 안전하게 규제할 수 있을까?
• 태양 복사 관리 규제와 관련해서, 지구가 우리의 이익에 맞추어 조종될 수 있다는 관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게 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 우리 입장을 삼각형에 표시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그룹별로 흩어졌던 참가자들이 각자 표시한 삼각형 마인드맵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다시 모일 때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커녕 언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질문은 무언의 질책처럼 강의실 벽에 그저 걸려만 있었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왕립 학회는 오랜 전통과 유명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과학 혁명과 화석 연료 시대의 출범을 돕는 등, 이런 문제들을 심사숙고해야 할 특별한 위치에 자리한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옛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오만함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농민이며 시인인 웬들 베리는 〈오만한 무지〉라는 표현을 썼다. 〈지나친 규모로 일을 벌이고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배짱을 우리는 오만한 무지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운동가의 생각과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속도'에서 차이가 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생각의 틀은 어디서 왔나?"는 불편한 느낌을 가졌다.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어, 죽은 후에 다수의 학자가 탐구할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이상, "~는 칸트, ~는 데카르트, ~는 듀이, ~는 어쩌고."에서 왔다고 정리하기 힘들듯 싶다. 그냥 추상적인 나일뿐, 뭐라고 정리하는 것은 시도하는 일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자본주의, 시장주의, 기존 체계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선보다 개혁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개선과 큰 판을 뒤흔드는 개혁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주도하겠다는 건 아니고 누군가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소심한 소시민에 그치지 않는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 책에서, 환경주의자가 바라보는 현시대는 꾸준한 개선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요약된다. '폐암 걸린 흡연자에게 조금씩 담배를 줄이라고 말하는 접근법'이 나 같은 현실주의자들이 선택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많은 공부가 되면서 더 많이 생각하라는 숙제를 던져준다. 환경운동의 역사는 '소수의 극단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결국, 뒤늦은 다수의 인정과 국가의 규제로 바뀌는 과정의 반복'으로 정리될 수 있다.

기후변화 역시, 우리는 매우 뒤늦게 그들의 경고를 '진짜'라고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땐, 이미 늦었지만 그 대응의 방식은 말도 안 되는 기후전쟁의 형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회 전체를 기후 친화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환경적 생존뿐만 아니라 (현실론자들이 강조하는) 경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언제냐가 문제이지 우리는 환경과 경제 모두를 망쳐버릴 위험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계속 미루고 있다가 산처럼 쌓인 숙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축약된 성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추격(catch up) 민족이라 하지만.


요컨대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경제적 현상 유지를 깨뜨릴 기후 위기 대응책의 구상을 기피하고, 결국 희망 사항(기적의 상품이나 탄소 시장, 또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연료〉)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몹시 취약하거나 위험성 높은 이러한 해법들에 우리의 집단적인 안전을 맡기는 태도는,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는 일종의 주술적 사고다. 자칭 실용주의자들 역시 지구를 파멸적인 온난화에서 구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지금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기후 변화의 과학적 현실을 부정하는 허틀랜드 지지자들과, 기후 변화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산업계를 약간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에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망상에 빠져 있는지는, 나로서는 가려내기 어렵다.


영국의 기후 운동가이자 저술가인 조지 마셜은 이렇게 썼다. 〈누군가 근사한 금연 캠페인을 새로 구상해서, 폐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그래픽 이미지에 《건강을 지키는 건 쉽다. 한 달에 한 개비씩만 담배를 줄이라》는 문구를 달아 놓았다고 치자. 이 캠페인이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리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다. (……) 캠페인이 제시하는 목표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이미지와 문구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이 광고를 가당찮다며 비웃어 넘길 것이다.〉



석탄,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채굴 산업은 가장 차별적이고, 파괴적이다. 저자는 책의 큰 비중을 이런 석유 산업을 비판하는데 할당한다. 신규 프로젝트는 빠르게 중단되어야 하며, 기존의 파이프라인도 잠금장치를 닫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출간된 리프킨의 <그린 뉴딜>에서는 이런 석유화학 산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며, 신규 투자를 중단하지 않으면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미래 지향적 혹은 지속 가능한 방향의 전환이 아니면 결국,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두 책의 출간 시점이 3~5년의 차이가 있으니, 이를 고려한다면 최근 5년 내 석유화학 산업에 무언가 큰 충격파가 감지되는 듯싶기도 하다. 최근 거대 오일 기업 BP의 리포트에서는 십수 년 내 피크 오일을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20~30년 내 피크 가스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현 추세로 볼 때, 오일산업의 정점이 얼마 남지 않다는 인식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후변화의 위기와 대응의 크기가 작용ㅡ반작용처럼 더 커지게 되면 오일 산업과 관련된 여러 산업 지형이 크게 요동치게 될 것이다.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밀려들어 오고, 모든 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격변의 시대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에서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BP의 ENERGY TRANSITION을 검색해보았다. 책에 따르면, 오일회사의 홍보는 담배회사와 마찬가지로 난이도가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제대로 된(혹은 그렇게 보이는) 정책이 수립되고 있는 과정으로 보이는데,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많이 부족해 보인다.


당연히 당장 석유산업에서 멀어지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책에서 땅 속에 묻힌 에너지 자원은 그대로 땅 속에 두는 게 옳다는 주장의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해보게 될 듯싶다.


끝으로 기후변화의 연대는 내 지역은 안 돼!라는 님비가 아니라 어디서든 안 돼!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사회의 변화 흐름을 크게 바꾸고 있지는 아닐까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미래를 형성할 세대인 밀레니얼과 Z 세대가 기후변화 대응을 감당할 수 있는 기질과 문화를 갖췄다는 부분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기성세대의 역할은 이들의 노력과 시도를 방해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우리 집 뒷마당엔 절대 안 돼 Not in My Backyard〉가 아니다. 프랑스의 프래킹 반대 행동주의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여기도 안 되고, 다른 곳도 안 돼 Ni ici, ni ailleurs〉로, 한마디로 새로운 탄소 개척지를 단 한 군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비난의 뜻으로 동원되던 〈님비 NIMBY〉라는 용어는 이제 완전히 힘을 잃었다. 웬들 베리는 E. M. 포스터의 표현을 빌려 〈환경 보호의 핵심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면 생태계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지역도 희생 제대로 격하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욕구 충족 경로를 변경해야만 한다.



10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리뷰하는 이 페이지조차 엄청나게 길다. 그러나 이 리뷰조차도 이 책의 진면목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리뷰하기 위해, 리디북스의 공유하기 기능을 자주 썼는데 매번 하루 가능량을 초과하기 십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발췌한 문장들의 아주 일부만 이 페이지에 담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다니... 이 책은 전체를 읽을 때, 그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는 책이니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사서 읽기를 바란다.


이 책을 두 단어로 (감히) 요약하면,


1. 재해 disaster
2. 차별 discrimination


인류는 여러 자원을 채굴했다. 그 자원의 활용으로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그 발전은 매우 차별적이었고 궁극적으로 우리 전체를 위협하는 기저 원인으로 작동한다. '기후변화'라는 인류의 위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해석 능력을 보인다. 물론, 부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는 관련 분야를 연구했던 사람으로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과 논리 전개는 생각해볼 만한 여러 숙제를 안겨준다. 이 분야를 고민하고, 정책을 만들거나 변화를 꿈꾸는 모두에게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의 숙제는 모두가 참여하고, 차별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우리 모두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으로 가득한 딴생각을 할 때쯤, 저자는 그 어려운 과제를 이미 해소했던 역사적 사실을 가져오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에너지 산업이 현재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를 떠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게 감히 가능할까?


저자는 '노예제 폐지'를 이야기한다. 1860년 미국 전역에서 노예는 가계 자산 총액(부의 총액)의 약 16%에 해당했다고 한다. 오늘날 가치로 약 10조 달러에 이르는데, 이 금액은 우리가 땅에 묻은 채 그대로 두어야 하는 세계적인 탄소 매장량의 가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노예제 폐지의 역사에서 기존 이해관계자, 관련 산업계, 정치인들의 반발은 당연히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그 무렵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대체 수단이 등장했고, 새로운 수단에 따른 새로운 이해집단이 등장했다. 물론, 선행적으로 도덕, 철학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에 대한 저항의식이 보다 보편적인 시민의식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기후변화 대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는 환경, 운동가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기술로서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 기술들. 새로운 생태계와 새로운 이해집단의 등장. 대중 지지와 국가적인 전환을 선언하는 선행적인 국가들. 이제 그 물결이 전 지구를 덮고,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념적으로 이상적으로 이 책은 올바른 길을 제시하나 구체적인 방향 제시에는 한계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이상론자일수록 역설적으로 현실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인 다수가 이상론적 방향을 들었을 때, 저항과 반감이 일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미래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게 변화의 흐름에 적합할지 고민할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이런 적확한 표현이라니...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우리의 시선은 휴대전화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우리의 주의력은 자극적인 기사들에 분산되어 있으며, 우리의 신의는 힘겨운 부채와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뭉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고 따를 수 있는가? 아니, 그보다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본질적으로 우리의 과업은 대안 정책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핵심 세계관을 제압할 만한 새로운 세계관을 천명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세계관은 초개 인주의 대신 상호 의존성, 독점적 지배 대신 호혜성, 권위적인 위계 대신 협력을 근간으로 삼는다. 이러한 세계관을 구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며,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기후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금껏 배출해 온 온실가스로 인해 불가피하게 맞이하게 될 뜨겁고도 험악한 기상 상황을 고려할 때, 만인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확고한 신념과 깊은 연민을 느끼는 능력은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결국 변화해야 하는 것은 우리다. 이 책의 결론도 이 책을 읽는 내 결론도 동일하다.


전자책 링크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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