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른 느낌의 행복

부모님 입에 음식 들어가는 행복

by TeamNotion HRD

머릿속 생각을 모두 행동으로 실천하시던 아부지. 어찌 그리 사셨는지 놀랍기만 하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으신 어르신이라고 동네 분들이 그러셨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일제시대 징용 가시고, 625 참전하시고, 박정희 정권 언론 탄압 때 백지광고 내시고 안기부 끌려가시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사회에 관심이 많으셨다. 항상 책을 보시던, 신문을 보시던, 모임에 나가시던, 글을 쓰시던, 그림을 그리시던 그것이 일상의 전부셨다. 막내인 나를 45세에 보시고 아부지는 간경화가 오셔서 "난 이제 죽는구나 저 녀석은 에비 없이 크는 불쌍한 놈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며 절 아끼셨단다. 보훈 대상자시니 서울 중앙 보훈병원을 다니시곤 했다. 머릿속의 생각을 모두 실천하시는 분이시라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셔서 96세에 돌아가셨다.


엄니는 성당과 아들들을 최우선으로 사셨다. 4남을 키우셨다. 어른으로서 체면을 지키는 것을 중요해하셨다. 자식 기죽는 것 싫어하셔서 "엄니 돈이 없으니 기가 죽어요!"라고 말을 하면 용돈을 더 주셨다. 3살 난 손주가 쌀을 갖고 노는 것 보고 내 아내가 " 먹는 거 갖고 장난치면 안 돼"라고 혼내자 울 엄니 "애 혼내지 마라 기죽는다" 라시며 쌀을 되로 퍼서 마루에 쫙 뿌리시며 "옛다 놀아라!" 이러시던 분이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모두 학부모회에 적을 두시고 자식은 모르게 하셨다.


26살에 시집와서 23년 동안 시집살이하며 아들 딸을 키운 내 아내. 기세신 시부모 모시며 울기도 많이 했다. 며느리 밥을 먹으면 살이찐다시며 칭찬하시면 울 엄닌 삐지곤 하셨다. 아내가 엄니께 음식을 올리면 내가 뭐 이런 거 먹는 거 봤냐시며 타박을 하시기도 했다. 아부지는 며느리가 음식을 올리면 이런 건 처음 먹어보셨다며 좋아하시고 엄니는 당신이 손수 하신 것만 좋아하셨다. 두 분 다 이북분들이시다. 두 분 다 냉면을 즐기셨다. " 엄니 외식하시죠 갈비 드실래요?" 이러면 "뭐 그런 걸 사 먹어 안 먹어... 냉면이면 몰라도..." 아부지도 "오늘 모임에서 냉면 먹었는데 틀려먹었어 을지면옥만 못해!" 이러셨다.


어느 날 보훈병원에 아부지를 모시고 갔다. 보훈대상자들은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건강보험에서 50%를 지불하고 보훈처에서 30%를 지불해주어서 환자는 20%만 내면 된다. 그래서 좀 멀지만 신촌에서 둔촌동 보훈병원까지 모시고 다닌다. 아버님 덕분에 우리 형제도 혜택을 받는다. 보훈병원은 수익형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와 약을 좋은 것을 쓴단다. 간호사 분들을 우리 아부지는 천사 같다고 좋아하셨다. 보훈병원에서 돌아오던 중 "아부지 뭐 맛난 거 사 드시고 집으로 갈까요? 뭐 드시고픈 거 있으세요?" 보통은 이러면 " 뭘 사 먹어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돼.."이러시는데 그날은 냉면 생각이 난다 하셨다. 차를 돌려 을지면옥으로 갔다. 가게 입구로 들어가니 어릴 때 아부지 따라왔던 느낌이 나서 마치 어제도 왔던 것처럼 신기했다. 아부지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으시더니 물냉면을 주문하셨다. 냉면이 나오니 마치 어린아이가 새 장난감을 받은 것처럼 눈빛이 밝아지시더니 겨자와 식초를 더하시고 마치 실험하시듯 신중하게 수저로 설탕을 퍼서 조심스레 뿌리셨다. 요즘 먹방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아버지 냉면 드시는 모습을 넋 놓고 보았다. 신기했다. 아버지 냉면 드시는 모습을 보며 내 아이 밥 먹는 것 보는 것처럼 흐뭇하고 행복한 장면이었다. 그리 드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부지는 차에서 잠이 드셨다. 백미러로 잠드신 아부지를 보며 이재는 내가 지켜드려야 한다는 사실에 아부지에 대한 감사와 아부지 나이 들어 가심에 슬펐다. 그날은 행복과 감사와 슬픔이 비벼진 날이었다.


엄니는 이가 없으신데 치매가 오셔서 뭐든 입에 넣으셨다. 방금 식사하신 것도 잊으시고 밥 달라 하셨다. 휴지를 입에 넣으셔서 치웠더니 비누를 드셔서 입이 부으시고, 비누를 치웠더니 고추장을 한통 다 드셨다. 결국 주방에 가로로 봉을 설치해서 못 들어가게 막고 내 아내는 그 봉을 넘어 다녀야 했다. 양로원에 모시는 방법도 간병인을 두는 방법도 있었지만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해보겠다며 아내는 그 책임을 지었다. 치매가 오신 후 소녀처럼 변하셔서 예전의 시엄니의 모습은 없고 아내가 식사를 올리면 "고개 숙여 인사하며 고맙습니다. 너무 맛있습니다"라며 며느리에게 감사하셨다. 자꾸 입에서 흘리셔서 닦아드리고 닦아드리고... 너무 더웠던 8월 어느 날 관절염이 도져서 무릎에 물이차며 걷지를 못하셔서 입원하셨다. 항문이 열리시고 대소변을 흘리셨다. 식사도 잘 못하셨다. 들은 말들이 있어 걱정에 걱정이 이어졌다. 일주일쯤 지나 점차 회복하시고 식사를 하신다. 한술 한술 입에 들어가신다. 이가 없으시니 주먹으로 움켜쥐듯 음식을 씹으신다. 잘 드신다. 엄니 입에 음식이 들어간다. 눈빛이 이제 이 세상 사람 같다.


행복의 경우는 셀 수 없이 많겠지만 부모님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행복이다. 이제는 음식 없이도 사신다. 내 기억 속에 손주들 기억 속에 특히나 며느리의 기억 속에...

엄니 돌아가시고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엄니 돌아가시니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요. 책임을 다했지만 허전함, 기억나는 많은 죄송함,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애처로움, 수많은 흔적들의 그리움, 그리고..... 함께한 시간의 감사함.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고 밥을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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