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거지 소녀였다.

엄마에 대한 단상 9

by 벌판에 서서

난 완벽한 엄마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안고 늘 그 기대를 잊지 않고 꼭 싸매고 지켜왔다. 아니 내가 지켜왔다기보다는 그것에 사로잡히어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내게는 없다는 현실을 쓰라리게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가지고 싶어 동경하였다. 내가 생각한 어머니는 나를 위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옆을 지켜주는 엄마였다. 희생하고 늘 따뜻하게 나를 보호하고 있는 느낌을 주며 지혜롭게 나를 위해 참으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잘 알고 도와주는 그런 존재였다. 내 마음의 엄마는 내 속에 자리 잡고 나를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었다. 사실 지금도 나의 엄마상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내 엄마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늘 상처를 받았고 엄마에게 화난 채로 살았다. 엄마를 속 깊이 좋아하고 믿었으면서도 늘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였다.

난 다른 사람들의 엄마를 늘 부러워한다. 거의 습관적이다. 그러는 것은 그들의 엄마의 모습에서 내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찾는 엄마가 있고 타인들은 대부분 그런 엄마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난 그들 엄마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없기에 내가 본 단편적인 모습에 내가 그리는 상상의 모습을 입혀 부러워하였다. 그 부러움은 그런 엄마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열등감과 같이 나를 휘어잡는다. 그들은 다정하게 자기 자식을 품고 자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내 생각 속에서 그 모습들이 일정하게 흘러가는 것은 내가 본 단편적인 모습에서 보지 못한 그 외의 대부분의 부분을 내 상상으로 채워 넣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단 엄마는 나를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큰 사고의 틀이었다. 난 이런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엄마에게 그렇게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리 큰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엄마를 가지지 못한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였다. 난 이러한 내 생각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난 자식으로서 받아야 할 정당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거지 소녀라는 인식이다.


그 거지 소녀가 바라보는 허공 속 커다란 풍선 속에서는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는 타인의 가족들이 있다. 타인들의 가족은 그들만의 즐거운 생활을 누리며 행복한 웃음을 웃으며 살고 있고 그 풍선들은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난 늘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고 자신의 거지꼴을 부끄럽게 여기고 몸을 숨기고는 했다. 거지 소녀가 발 디디고 있는 땅은 모래바람이 불고 황량했으며 드문드문 식물이 자라는 벌판이었다. 거지 소녀는 상상한다. 자신은 벌판에서 헐벗은 옷을 입고 추운 바람에 떨고 있는데 풍선들 속의 가족들은 행복하고 단란한 모습이라고.

그 거지 소녀가 의외라고 느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거지 소녀에 대한 반응이었다. 소녀가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주위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차갑거나 불친절하지 않다는 것이고 소녀를 거지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집에 들어오면 자기도 아버지처럼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매몰차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기가 풍선 속에서 바라보는 그렇게 깨끗하고 안락하고 부드러운 집이 아닌 이유의 대부분이 엄마의 탓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으로 엄마를 대하고 툴툴거렸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엄마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집안을 가꾸고 있었으면 좋겠고 나의 지친 몸을 위로할 수 있게 나를 맞아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바람이 잘못되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거지 소녀, 고아 소녀라고 생각했다.

난 거의 평생을 나 자신을 고아 거지 소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로 그 생각의 지배를 받았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빗겨간 직선주로를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갔던 것이다. 내 직선주로가 엄마와 만나는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순간일 뿐 내가 바라는 엄마는 거기에 있지 않다고 확신하고 살았다. 그 순간은 엄마의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고 인간 그 자체로 엄마를 수긍한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난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바라며 그 바람을 한 시도 놓치지 않았다. 엄마는 진실되고 의기 있는 사람이나 자식인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식에 대한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 그렇게 확신하고 살아왔다.

물론 엄마도 엄마의 신념을 쉽사리 저버리는 분도 아니고 또 내가 이렇게 고아 거지 소녀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을 알지도 못하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온몸을 다해 짊어지고 자기 자신을 버릴 정도로 우리를 위해 존재했고 살아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나 그때 난 전혀 그것에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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