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단상 10
따뜻함.
내 인생에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 따뜻함이 마음을 조금씩 녹여 덥혀주면 어둡게 예측되던 세상이 조금씩 녹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점점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차오른다. 그리고서는 나는 스스로를 덥혀 세상의 추위로부터 편안하게 하고 주위 사람도 좋아지게 한다.
옛이야기 속에서 효자, 효녀가 부모님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제철이 아닌 딸기를 구하러 산으로 간다. 그는 어찌어찌해서 겨울 산에서 딸기를 구한다. 그는 자신을 보호해주어야 할 부모가 병든 냉혹한 상황에서 효심의 열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 효심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겨울 산에서 그것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부모는 이미 그에게 온기를 나누어 줄 수 없는 얼어있는 냉기 상태였으나 그는 스스로 자가 발전하여 부모를 따뜻하게 하여 차가운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열매를 발견한다. 열매는 밖에서 찾아내는 것 같으나 효자가 자기 속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으로 부모님의 냉기 상태를 녹여 다시 생기를 찾게 하는 것이다. 그것(딸기 혹은 열매, 혹은 온기)이 아픈 어머니를 구하는 약이다. 그 온기가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는 소중한 것이다.
온기의 가장 좋은 점은 나눈다는 것, 또 자신을 구원하는 것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 또, 타인의 냉기를 녹여주는 것으로 쓰일 때 진정 자신을 덥혀주는 온기로 작용한다는 것, 그런 것이 온기의 특성일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상대이든 간에… 스스로 자가 발전해서 얻는 마음의 온기 그것이 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보석인 것일 것이다. 온기는 때로 동정으로도, 사랑으로도 표현되는 진정한 성숙함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엄마는 뜨거울 정도로 순수한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온 인생을 그것을 가지고 힘든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힘들게 순수하게 살아왔다. 돌아가셔서 저세상에 계시지만 나와 함께한 엄마는 아직 이 세상에 온기로 남아 있다. 난 그 온기를 모사하고 재현해 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온기가 나를 덥히고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나 자신이 온기를 뿜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엄마는 어떤 신념을 놓치지 않고 혼자 자가발전하며 불타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난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나에게 현실적인 세심한 손길을 내밀지 못하다고 느끼고 온통 회색빛 세계 속에 살았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는 자신의 신념껏 솔직하게 살았기에 늘 떳떳했었다. 끝내 나의 회색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나만 볼 수 있는 나만의, 내가 만들어 낸 세계였다.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온통 이해받지 못한다는 원망과 미움을 엄마에게 내 쏘았으나 사실 엄마가 나를 이해 못한다는 것의 대부분은 나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엄마의 세계에서 들어오는 온기를 차단하고 내가 그런다는 것을 추호도 알지 못한 채 냉기에 온몸을 떨고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먼 후일, 엄마가 돌아가시고서도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엄마가 가진 그 온기는 바로 옆에 있어 나를 지켜주었지만 미숙하고 어리석었던 난 그것이 나를 향한 온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원망했다. 그 난로는 늘 내 옆에서 활활 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이 내 안에 갇혀 있었다.
온기란 그런 것이다. 자신 스스로 문을 열고 받아들일 능력이 되지 않으면 회색빛 냉기에 떨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 엄마의 열기에 가까운 무서울 정도의 순수한 온기는 나를 지켜준 수호신이고 불빛이라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내 미성숙이 온기를 가로막는 긴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본인의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본인의 열망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타인들과 같이 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깥세상의 어두운 길을 갈 때 자신의 앞길을 비춰야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세상의 어둠을 늘 과도하게 두려워하고 그에 메어 살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삶은 그 어둠을 따른 꼴이 되었다.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했는데 그는 자신의 온기를 가족에게 주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했다. 그의 인생은 그 점에 멈춰 있었고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헐벗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보다 더 사랑한 가족인데, 자신의 온기를 줄 만큼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타인에 맞추는 삶을 살았다. 그럼 저절로 자신의 가족이 보호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나의 엄마와 아버지는 모두 자신의 온기를 가졌으나 자식들에게 온기를 느끼게 하지 못했다. 아니 자식들에게 온기를 느끼게 하지 못했다. 그 둘은 분명히 온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고 또 최선을 다해 전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주 아주 밑바닥에서는 그 두 분의 열기가 우리 가정을 존재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나 그 온기를 꺼내서 자식들과 즐기지는 못했다. 그 둘 사이도 그런 식이었다. 저 밑바닥을 흐르는 기본적인 열기는 가지고 있었으나 그 열기를 꺼내서 상대를 덥혀준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남사스럽기도 하고 손해보는 것 같기도 하여 못하기도 했다. 저 밑바닥으로 흐르는 절대 꺼지지 않는 열기를 가지고 차가운 방바닥을 묵묵히 견디며 살았던 것이다.
나도 온기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온기를 지키며 살아왔다.
이제 난 그 온기가 유일한 재산이라는 것을 알고, 온기를 나눠줄 때 내가 행복하다. 온기를 서로 주고받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때로 온기를 잘못 나눠주고, 차가운 쇠붙이 같은 냉혹함에 부딪칠 때 절망하고 아팠다. 그때, 옆에서 어리석다고 온기를 비웃어도 내 온기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내 옆의 온기를 가진 존재는 나와 온기를 나누는 존재는 가족이 주로 대상이다. 지금 바깥의 타인들에게서는 거의 온기를 느낄 수 없어 회색빛 생활인 것 같다. 사실 타인들에게서 온기를 받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은 늘 댓가가 혹독한 찬바람으로 돌아온다. 온기는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인데, 조금의 온기를 나누어주고는 같은 온기가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나의 태도를 끈질기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지 나 자신도 모르는 체 타인에게서 온기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온기 나눔은 대부분 펌프의 마중물처럼 타인에게 쏟아지고 그 마중물이 다시 더 큰물로 되돌아오지 않을 때는 실망하고 돌아서고 말 때가 대부분이다.
가족들과 나누는 온기에서는 나는 마중물을 붓듯이 하지는 않는다. 내 저 속의 따뜻한 물을 붓고 부으면서 나의 가족들이 자신의 생활에서 활기를 띠기를 바라기만 할 뿐이다. 그동안 나의 온기가 모자라서 내 가족들이 차가운 삶 속에 내 던져진 적도 있지만 그들은 내가 온 힘을 다해 그들에게 온기를 전하고자 한다는 것에는 수긍을 할 것이다. 단지, 지금은 그런 생활에서 잠시 벗어난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받기만 하던 온기를 자신이 스스로 세상에서 찾겠다고 나서는 자식들을 보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자식들이 이제 자기 갈 길을 훌훌 가는 뒷모습을 보는 허망하고 쓸쓸함. 그 서늘한 한기 속에 나는 서 있다.
자식이 아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늘 나의 온기도 찾고 느끼고 가꾸어야 한다.
내 온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내 온기는 마음의 따뜻함. 내 스스로 자가 발전하는 것. 자신감, 당당함. 사랑의 감정, 겸손함.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