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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망설이는 너에게

by 벌판에 서서 Aug 21. 2023

  어제, 네가 나에게 의견을 구한 일이 생각난다. 네가 만나던 남자에 대한 것이었다. 생긴 것이 영 마음에 안 드는데, 그쪽에서 계속 연락을 해오니 다시 안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러 왔다.

  나는 너의 지난 몇 번의 남자와의 사귐의 패턴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만남이 진행되다가 불현듯 안 되는 이유를 남자에게서 찾고 결혼으로 가는 길을 멈춰버리고만 몇 번의 사례를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이제는 상대를 알아 가기도 전에 네가 상대를 걸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아니 안 될 수 있는 이유를 좀 더 노련하게 댈 수 있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나는 그 남자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소개받고 만날 정도이면 엄청 많은 부분이 걸러진 남자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너에게 다시 한번 만나볼 것을 권하였다. 마음이 영 가지 않는다는 너의 말에도 내가 그렇게 자신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혼에 대해 내가 최근 갖게 된 조금 다른 관점 때문이지 싶다.      

결혼은 연애가 아닌 생활이고 인생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람은 결혼으로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의 인생이 시작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은 자기가 상상한 것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화려한 환상과 같은 상상 속의 모습을 결혼 생활에서 기대해서는 안 된다. 결혼 생활은 인생에 물들여지고 길들여지고 드디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요람인 것이다. 

또, 아무리 따지고 계산하고, 알아보고 결혼을 한다 해도 그 결혼이 인생이어야 되고 인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거기서 인생이 이루어지고 그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삶의 경영의 한 부분은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삶의 경영이 안 되었다는 것은 인생 실패라는 개념보다는 인간으로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정신적 성장이 멈춘다는 그런 뜻 같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인생의 깊은 즐거움 중의 중요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아니, 인생의 진정한 깊이를 알 기회를 놓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인생을 너의 짝과 그냥 편하고 순조롭게 가게 되는 것이 결혼 생활은 아닌 것 같다.

너의 짝과 뗏목을 타고 긴 물을 헤치고 가는 인생길이 결혼이다. 그 물살은 끝나지 않는다. 죽을 때는 노를 내려놓겠지… 두렵고 무섭고 망설여지는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으면 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기회만 기다리는 용기 없는 사람으로 나이가 들어 버리고 만다. 마치 고치 속에서 늙어 말라버린 벌레처럼…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결혼은 내 짝과 온 힘을 다해 침몰하지 않고 물길을 가야 하는 어려운 여정이다. 때로는 죽음과도 싸워야 하는, 때로 그 지루하고 의미 없음에 치를 떨기도 하는… 뗏목에 갇혀 내 생명이 말라가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또는 구속하는 그 뗏목에서 그냥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온다. 

그러니 그 뗏목이 색깔이 화려하든, 빨간색이든, 검은색이든 약간의 차이만 있을 것 같다. 뗏목이 화려하던 수수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물살을 가르고 나가는 것은 너희 둘이 인생을 저어가는 솜씨일 뿐이다. 뗏목의 재질도 초기에는 중요하겠지… 그런데, 때로는 어떤 물살이 오느냐에 따라 그 재질이 그 물살을 타는 것에 가장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재질이 아무리 좋고 육중한 뗏목이라도 부서질 때는 그 충격이 더 클 수 있고 더 많이 다칠 수 있다. 

물살은 잔잔하기도 하고 매섭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거의 움직임이 없기도 하고 낭떠러지도 있다. 어떤 인생이든 똑같다.

  뗏목이 빠른 물살에 마구 떠내려가 내 뜻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치달아, 겨우 중심만 잡고 있어도 다행일 때도 있다. 둘이 아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그냥 서로를 바라볼 뿐 정처 없이 물길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도 있다.     

  너무도 큰 풍랑이 대기하고 있다. 너와 같이 이겨나갈 짝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가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고, 결혼을 망설이는 것, 계산하는 것은 네가 물가에서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망설인다는 것을 핑계로 기다림 속에 안주하고 인생을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기회가 오면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해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언젠가는,

  물살에 뗏목이 다 부서지고 나 혼자서 내 아이들을 업고 나무토막 하나를 의지하여 손으로 물을 저으며 필사적으로 헤엄칠 때도 온다. 이런 때가 오지 않는 인생은 없는 것 같다. 만약 그런 안온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어리고 미숙하여 겪을 만하지 않아 물가로 밀려 인생에서 내쳐진 것일 뿐…     

  내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내 모든 것을 다해 오로지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지고 울면서 헤엄치던, 고독하고 외로운 때…      

  그때 나는 내 짝을 증오했다. 또 한편으로 증오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내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라는 자리를 내가 없애지 않기 위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도 나는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장 어두울 때가 반환점이라는 확신으로…      

먼 후일,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내 옆에서 내 짝도 그의 등에 또 다른 우리 아이들을 잔뜩 업고 조그만 나뭇등걸 하나를 의지해 손으로 물을 저으며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그 또한 외롭고 고독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묵묵히 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좀 더 일찍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지나간 세월이 그리 지독하지 않았으리. 서로 힘이 되었으리. 힘들지만 행복할 수도 있었으리. 그것을 아는 순간 행복이네. 그 물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거네.

물을 거슬러 헤엄칠 줄만 알았지, 물을 따라 그냥 둥둥 떠내려가는 여유는 알지 못하는 장님이었던 거지.     

그렇지만 아무리 늦게 알았어도 그 눈을 뜨는 순간 지나온 모든 것이 용서되네. 아니, 받아들여지네. 그냥 그랬다는 것을 내가 몰랐던 것일 뿐. 내가 그냥 눈 감고 허우적거리며 헤엄치고 있었던 것일 뿐. 그래서 암흑이었을 뿐. 내가 암흑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눈을 뜨면 그 자리가 그냥 광명일 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네.     

눈을 뜨기 위해. 뗏목을 타고 여기까지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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