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단상 5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엄마와 언니는 큰 적대관계에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언니를 아버지처럼 매몰차고 못됐다고 비난했다. 언니는 엄마를 뒤숭스럽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보았다. 언니는 다분히 아버지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았던 것 같고 그래서 엄마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말투로 대할 때가 있었다.
엄마는 큰오빠를 분신 같은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집안에서 엄마의 위치를 공고히 해 준 아들이었다.(종가집의 첫 아들) 엄마는 큰오빠에게 정성을 다하셨는데, 그건 엄마 입장에서였고 큰오빠 입장에서는 정성을 받았다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막상 오빠의 삶에 대한 고민이나 상황은 아랑곳하지 못했고 성공을 위한 공부 뒷바라지 쪽으로 맞춰준 것이다. 그것이 엄마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엄마가 생각할 수 있는 뒷바라지였던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오빠에 대한 기대가 곧 오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나 추측한다. 아버지는 오빠에 대해, 이해보다는 명령하는 아버지였고, 아버지가 생각한 대로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이 아들을 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나마 두 분 중 오빠의 삶을 조금이나마 고려하려고 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오빠가 공부로 성공 못할 것 같이 된 고등학교 때에는 아버지는 완전히 포기하였으나 엄마는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작은오빠는 큰오빠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공부 쪽으로 매진했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은 곧 형을 의미하는 것이고 형이 가는 길의 꼴을 선명히 볼 수 있었기에 공부에 매진하였고 나중에는 기대대로 성공하여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
나와 동생은 관심에서 뒤로 한참 밀려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직 늦되는 아이였던 나는 마치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듯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생겼다. 그때까지는 난 어느 한 구석에 쳐박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대학 졸업 후 어찌어찌하여 임용 시험에 합격하였다.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난 갑자기 한 어른으로 승격하였다. 오히려 부모님이 나의 관심을 받고자 하였다. 이미 난 부모님에 대한 차가운 심정으로 부모님들에게 되돌릴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이제 나를 초조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부모님들이 이제 내 인생에서 좀 떨어져 나가달라는 그런 심정이었다. 단지, 부모 없는 존재가 되면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함부로 취급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내 삶에 그 정도만 붙여 두었을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무관심에 대한 서러움을 한껏 폭발하여 앙갚음을 실컷 하였고 그런 나 자신에 대해 고개를 빳빳히 들고 스스로 정당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이고 그래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부끄럽다. 되돌린다 해도 미성숙하였던 내가 그때처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동생은 막내로 엄마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고 여기며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은 엄마의 시점에서 엄마의 필요에 의해 표현된 것일 뿐, 동생도 나와 같이 헐벗은 거지 소녀로 자라왔을 것이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도 엄마가 되었지만 어떤 부모든 자식에게는 부족하고 불만족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자식의 필요에 적시에 대응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적시에 대응 한다 해서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물음에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잘못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식의 길과 부모가 그리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