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남편, 나의 아버지

엄마에 대한 단상 6

by 벌판에 서서


나이가 이렇게 많이 먹어 초로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이제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 커졌다. 잘 알고 있다고, 아버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때 난 그것이 확고한 내 경험에서 나온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감정 덕분에 죽도록 비참하고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왜 내가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는 것인가?’를 캐보다 보니 딱히 그럴만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적이어서 기억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분히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이 나에게 스며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시각을 걷어 들이고 돌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기억나는 일화들을 엮어 보아도 더욱더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그 일화들은 거의 연결이 되지 않은 채 토막토막 끊어져 그것만 가지고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나의 이 평생의 분노를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치 큰 산이 내 바로 앞에 탁 막고 있어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하지만 도저히 그 생긴 모양이나 전체 모습을 모르겠다. 어렴풋한 상상으로 어떨 것이라는 생각이 있으나 그것은 실제의 모습과 거의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그토록 선명한 감정, 미움 증오심 이런 것들을 부여잡고 그 감정에 싸여 그 감정 너머에 아버지의 실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들은 지금도 생생할 정도이다.

지금 와서 그 묶은 감정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냥 기억나는 아버지의 모습들, 행동들을 떠올리면 그 행동들은 객관적으로는 따뜻하고 자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행동들에서 아무런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무심하거나 ‘싫다’라는 감정을 가졌을까? ‘왜? 왜 그랬을까?’ 물음을 던진다. 아니 던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엄마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내 속에 사는 엄마를 정확히 보려고 노력하고서야 이 물음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발등에 나를 태우고 춤을 추던 장면, 내 목에 뭔가 묻어 수건으로 털어주던 일. 과자를 사오셔서 나와 동생을 양쪽 무릎에 앉히고 맛있게 드시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그 장면들에서 난 나무토막처럼 별 감흥 없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순간을 나쁘지 않은 순간일 뿐 좋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어린 시절 어느 순간 아버지의 폭력적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그때 느낀 감정을 선명히 가지고 있다가 아버지에 대한 경험에 그 감정을 덧씌워 갔던 것인가?

어쨌든 난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가지게 되기까지 긴 세월 속에서 한 떨기 꽃이나 불꽃처럼 죽지 않고, 꺼지지 않고 나를 지켜내며 나를 잃지 않고 살아내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가?

내가 이렇게 잘 성장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 된 것은 분명 엄마, 아버지가 나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한(그들만의 방법이었을 지라도) 보살펴주고 사랑했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깨달음이 마음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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