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단상 7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어차피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 자기 앞에 놓인 암흑 같고 황무지 같은 곳에서 헐벗은 속에 내동댕이쳐져 혼자 이겨내고 걸어가야 하는 고독한 것이 인생길이라는 것. 그 살아낸다는 것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함께하지 못하는 것. 난 그 살아냄을 누구보다 생생히 겪었다. 그때 손 내밀고 도움을 청할 아무것도 없는 진공 같은 상황이었던 것에 대해 엄마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씨앗이 땅에 심겨지고 양육자는 물을 주고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고 바람을 막아줄 것이나, 그 씨앗은 혼자 겉껍질이 부서지고 자신이 결국 파괴되는 것을 겪는다. 자신의 세계가 깨지는 것을 누구도 같이 해주지 못한다. 씨앗은 온몸으로 차가운 어둠 속에서 겪으며 지낸다. 껍질이 깨질 때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겨우 몸이 삐죽이 터져 나왔을 때 맞이해 주는 주위 세상. 그것은 검은 암흑, 차가운 흙, 주위는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없는 막막한 세상.
내가 암흑처럼 생각하는 어린 시절은 ‘씨앗이 땅속에서 발아하는 그런 상황이었을까?’하는 질문을 하며 위안을 받는다.
내 어린 시절, 씨앗과 같이 주변이 암흑만 있지는 않았다. 온통 무력한 회색이고 미지근한 보금자리, 늘 비어있는, 보살핌을 느낄 수 없는 그런 곳이었지만 흙처럼 차갑지는 않았다. 하긴 씨앗도 자신의 몸을 허물고 밖으로 삐죽 나왔을 때 차갑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차갑다는 것은 인간의 기준인 것)
그 씨앗의 싹이 땅 위쪽으로 머리를 내보내며 계속 자라듯이, 나의 삶도 그 회색의 보금자리 속에서 어쨌든 제대로 된 쪽으로(씨앗이라면 햇볕 쪽으로) 죽- 지향해 왔다.
그렇다면 내가 늘 섭섭해하고 나를 살뜰하게 보살펴주지 않은 것에 대한(엄마에 대한) 원망은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투덜거림일 뿐이지 않나? 속 좁은 나의 시각으로 판단된 것이 아닐까?
나 자신, 자기중심적인 시선에 갇혀 오랜 세월 어린애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어둠을 엄마가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원망, 구해주지 않았고 나 혼자 힘들었다는 것에 대한 엄마에 대한 미움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해 본다. 그 어둠과 참혹함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길이었을 뿐 다른 어떤 타인(그것이 나의 운명공동체인 엄마라 할지라도)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 줄기 빛처럼 내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럼 어린아이는 모두 그런 어둠을 겪어야 하나? 이런 질문이 슬며시 솟아오른다. 그 질문도 짓밟아 치워버린다. 그냥 내가 겪은 모든 것은 내가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 했던, 온전히 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편하다. (물론 내가 편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내 엄마는 자식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별로 없었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엄마의 우리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그 어느 엄마보다 진했고 순수했고 강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선명히 느낄 수 있고 내 속에 유산으로 자리 잡고 용암처럼 치솟은 내 삶의 에너지가 되어주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는 나에게 신이 되지 못했다. 아니 나의 신은 주로 부재였다. 나만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나의 언니, 오빠, 동생도 대부분 그렇게 성장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특히 더 그런 것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조금의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엄마는 그 곁에 밀착해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은 알 수 있다.
TV나 교과서에서 표현되는 엄마는 자애롭고, 늘 자식의 곁에 있고, 목소리는 부드럽다. 무엇보다 자식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자식을 위한 결정과 행동을 한다. 살면서 그런 엄마를 본적은 거의 없다. 단지 난 아주 오랬동안 다른 이의 엄마는 모두 그렇게 자상할 것이라고 내가 본 환상을 덧씌웠다. 정말 그런지는 추호도 알지 못했으면서 혼자 지독한 열등감과 소외감에 몸을 떨고 지냈다. 지금도 그런 엄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내 깊은 곳에 남아 있다. TV나 교과서들에서 표현되는 것이 헛된 허상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지금 이미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도 지독히 그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그 헛된 허상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엄마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집과 같은 존재였다. 벽, 담들이 있어 바람과 비, 외부 짐승들을 막아주는 존재였지만 말없이 떨어져 존재하고 차갑고 무심한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난 혼자 그 속에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멍하게 있다가 기어 보다가 걸어보기도 하면서 벽을 집고 그 가장자리로 이동하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후에 집을 떠나 나 혼자 걸어갈 때 집에게 원망하고 왜 나한테 그랬냐고, 보살펴주지 않았냐고 원망했지만 집은 내 원망을 이해하지 못했고 난 답답했다. 집은 대답했다. 자신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었다고. 키워주었더니 못된 소리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