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단상 4
나의 엄마는 우리 자식들을 끈에 묶어 그 끝을 자신의 손에 꼭 잡고 오로지 앞을 보고 자기가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었다.
엄마는 한 번도 그 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엄마가 묶은 끈은 나에게 단단히 묶여 그것이 느슨해지거나 끊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끈이 나를 조여와 아픔이 내 얼굴을 찡그리게 하더라도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엄마는 주위를 돌아볼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를 부르는 것이 자식이었어도 자신의 앞을 걸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내가 어떤 꼴을 하고 따라가는지 엄마가 봐준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질질 끌려가며 거지꼴을 하고 있던, 옆에서 걷던 내 형제들이 나에게 부딪치며 발로 차거나 나를 이용하더라도, 내가 동생을 이용하여도 그런 것은 전혀 엄마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손에 끈을 꼭 쥐고 절대 놓지 않는 악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끈에 매달린 자식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못했다. 엄마의 삶 자체가 험악했고 힘에 겨웠을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눈길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끈이 끊어지지 않고 자신을 따라오면 그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나 아버지는 자식들이 필요로 하는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본인도 아마 그렇게 자라왔고 그것이 부모 역할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엄마의 맏딸이나 맏아들이 전면에 나서 엄마와 조우할 때가 있다. 그 둘이 잠깐씩 정도 관심을 받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내 동생은 막내로 잠깐씩 일별을 받기도 했다. 그 일별이란 엄마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일방적인 것일 뿐 상호교감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그 잠깐의 관심의 정도가 아주 박약하였다. 난 대인관계에 어리숙하고 모자란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난 엄마의 옆을 따라가는 한 아이일 뿐 상호교감이란 없는 그런 진공과 같은 상태였기에 세상살이에 대한 대면 기술을 부모와 자연스레 익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가끔 엄마가 대하는 사회인들의 모습을 어슴프레하게 보면서 그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영상을 모방하며 따라갈 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삶이 힘겨웠고, 또 힘겹지 않았던 자유로운 시간이더라도 그 시간은 우리 자식들을 돌아보기 보다는 바깥의 사람들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겼던 분이다. 외향적이며 순수한 성격으로 친구들, 이웃들, 친척들에게는 이익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들과 조우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였다.
우리들이 엄마의 인생을 험악하게 하는 아버지의 분신들이라 그러신 것일까? 아니면 우리들을 자신의 몸 그 자체처럼 생각하여 돌보지 않으신 것일까? 나는 두 번째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가끔 우리 자식들의 고통을 조금 치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고는 했다. 우리의 고통이, 나의 암흑이 엄마에게는 전혀 닿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왜 그렇게 몸서리치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성질 못된 딸 정도로 여겼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나는 성장한 다음에는 엄마에게 혹독한 비난을 퍼부어대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 자라고 엄마와 교감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내가 얼마나 암흑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전하고자 하였으나 여지없이 벽에 부딪쳐 전혀 엉뚱한 반향만이 나에게 돌아올 뿐이었다. 난 그런 엄마를 무시하고 미친 듯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그 화를 꼭 간직하고서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풀지 않았다. 꽁한 원망이 내 가슴을 채우고 꼭 엄마에 대한 무관심으로 내가 받아왔던 지독한 무관심을 갚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중년을 넘어선 지금 그 원망과 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의 내 삶이 처참히 망가지지 않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어둠이 하나의 통과의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이 온전하게 이어져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삶의 틀이 어느새 내 삶의 틀이 되어 나를 이끌어주고 있었다는 것과, 내 삶의 가치 있는 대부분이 엄마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나에게 복사되어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것이 나를 적절한 방향으로 일끌어 왔다는 것을 알고 고맙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자식에서 주는 방법은 내가 한평생 지독하게 그리워했던 그런 보살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자식이 그것을 그대로 복사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식을 바라보고 소통하고 이해해주는 것은 하나의 방편일 뿐, 또 그것은 지름길로 여겨지지만 독이 될 수 있는 사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소중한 것으로 그대로 나에게 전해진 것은 엄마의 삶의 자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