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뜨거웠던 여름 이야기
월드컵 첫 승, 그토록 간절한 월드컵 첫 승… 지금 생각 하면 월드컵에서 독일까지 이긴 대한민국인데 월드컵 1승이 뭐 그렇게 간절한 것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 대표팀 이야기만 나오면 TV에서 밥 먹듯이 나오던 이야기가 월드컵 첫 승이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승은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자 가슴에 맺힌 한이라는 방송 멘트를 보며 어린 나이에 어떻게 40년 넘도록 축구 하면서 한번도 못 이겼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지금까지 TV에서 우리나라 축구가 다른 나라 이기는걸 분명히 봤다고 한번도 못 이겼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100원 내기 하자면서 열을 내고 달려들던 친구가 떠오른다. 당시 학교 앞 분식집에 어묵 하나가 50원이었으니 100원이면 우리에게 무척이나 큰 금액이었다. 그렇게 100원을 수확 하고서야 월드컵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를 하였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2대2로 무승부를 거두는 것을 보고 다음 경기는 이기겠구나 라고 단순히 생각 했던 꼬맹이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월드컵 1승을 보지 못했다.
처음 월드컵을 이해하고 12년이 넘도록 그 간절한 1승을 기다린 나조차 한없이 길게 느껴졌던 그 시간이 52년을 기다린 어르신들에게는 얼마나 긴 기다림 이었을까.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토너먼트 경기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매번 월드컵 때 마다 지겹도록 듣는 것이 바로 '경우의 수'였다. 승점을 쌓고 골득실을 계산해서 다른 경기의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조별리그 방식에 익숙해져 버렸다. 월드컵 1승의 맛을 보기 전까지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단판 승부로 승자 독식의 짜릿함을 월드컵에서 경험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물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기 전부터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하면 어느 팀을 만날 수 있는지 김치국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계산 해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꿈만 같았던 월드컵 1승을 거둔 마당에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다. 더 이상 무승부 없이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고려해 가며 월드컵에서 토너먼트라는 외나무다리 승부를 보고싶어 하는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 16강 진출을 염원하기 시작했다.
“빵빵 빵 빵빵”
방과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한손에는 가방을 한손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순간 지나가는 차 한 대가 리드미컬 하게 경적을 울려댄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되어 리듬에 맞추어 외친다.
“대~한 민국”
어느덧 축구가 일상이 되었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더 이상 길에서 대한민국을 외쳐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수십년 동안 가슴에 한으로 남겨져 있었던 월드컵 1승을 달성했고 생전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월드컵 16강 진출이 가능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한민국 전역이 애국심에 타올랐다. 길을 걷다가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학교에서 야자를 하다가도 애국심이 솟아올랐고 우리는 틈만 나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월드컵 조추첨에서 무조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포루투갈을 물리치고 조 1위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한없이 감사함을 느끼며 태극기를 휘날렸고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밤새 대한민국을 외쳤다. 짝짝 짝 짝짝! 대~한 민국!
역시 한민족은 한민족이다. 비록 남북이 대치하여 총을 겨누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핏줄이다. 만약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8강에 진출한 국가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우리는 그 기록을 부러움과 함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가끔 월드컵 역사와 관련된 방송에서 1966년 북한이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던 장면을 보고 질투가 아닌 가슴이 뜨거워지는 자랑스러움을 느낀 사람은 비단 나 뿐 이었으리라 생각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36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16강 상대가 이탈리아라니.. 이것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자연스럽게 1966년에 북한이 이루어 두었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 한 일이 아니었을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나되어 AGAIN 1966을 외치던 순간 축구를 넘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참.. 혹시 이 순간 북한에 있는 축구 팬들도 같은 생각을 하며 우리를 응원하지 않았을까?
아시아 최강팀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아닌가? 일본인가? 이란인가? 우리는 언제가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렇다면 세계 축구 팬들도 우리의 의견에 동의 할까? 어떻게 알려야 할까? 그것은 세계무대에서 실력으로 증명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 세계인이 보고 있는 월드컵 무대에서 그것을 증명 했다. 유독 아시안컵과 인연이 없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강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된다는 일본과 언제나 우리의 앞길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던 이란 그리고 사우디보다 대한민국 축구가 앞서고 있다는 말을 굳이 구구절절 설명 할 필요 없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에서 아시아를 대표해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한 대한민국에게 이 순간 무슨 말이 더 필요 할까? 아시아를 대표하여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전 세계가 우리를 아시아 최강이라 여길 것이고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자존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꿈 같은 상상을 하곤 하다. 로또가 당첨되어서 강남에 아파트를 하나 사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꿈을 꾸기도 하고 슈퍼스타K나 미스터트롯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우승을 하는 꿈을 꾼다. 축구를 하다가 내가 베컴이 되어서 자로 잰 듯한 프리킥을 성공시키고 7만 관중들 앞에서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비록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꿈꾸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 아니겠는가.
그런데 난 여태까지 대한민국이 월드컵 준결승에 갈 것이라는 꿈은 꿔보지 못했다. 만약 나도 모르게 상상을 했다면 그것 또한 내가 로또에 당첨 되거나 축구장에서 베컴으로 빙의 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혼자 할 수 있는 상상속의 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그것을 2002년에 경험했고 배웠다. 누구나 꿈 같은 상상을 하지만 노력하면 그 꿈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참에 더 이상 꿈만 꾸지 말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은 냄비근성이 강하다 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냄비근성이란 무엇인가? 인터넷 사전에 냄비근성이라고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이 된다.
“어떤 일에 금방 흥분하다가도 금세 가라앉는 성질을 냄비가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모습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거 왠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기쁘거나 즐거울 때는 몹시 흥분했다가 돌아서면 쉽게 질려 버리고 몹시 화나서 분노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허허 웃으면서 쉽게 까먹어 버리곤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즐겨 듣던 음악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연애인도 새로운 걸그룹이 데뷔 할 때 마다 바뀐다. 만약 돈이 아주 많았다면 차도 계절마다 바꿨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흥분하고 잊혀지는 것이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 아니겠는가. 한국인이 냄비근성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적이라는 뜻 이고 똘똘 잘 뭉친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2002년에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 냄비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 뜨거웠던 열기와 그날의 감동 그리고 축제의 분위기는 월드컵이 끝나고 냄비처럼 식기는 커녕 가마솥 뚝배기처럼 오랫동안 후끈후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