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0만 원을 올려주세요. 보증금 1억을 올리거나. 내일 부동산 가서 사인하고 오세요."
지난겨울, 집주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나의 세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수년간 애써 지켜오려 발버둥 쳐 온 내 삶이, 이토록 얄팍한 계약서 한 장, 전화 한 통에도 속절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지난 6년 동안 ‘내 집’, ‘내 동네’라 불렀던, 그렇게 익숙했던 나의 공간들이 단 한 문장으로 뿌리째 흔들렸고 그제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었는지 깨달았다. 다행히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잠시의 시간을 벌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이미 ‘내 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가?" 나는 매일 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하루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고, 피땀 흘려 돈을 벌고, 귀한 시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왜 이토록 애쓰는지,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잘 살기 위한 내 노력들은 역설적으로 나를 점점 고립시켰고, 외로움만 쌓이게 만들었다.
좁디좁은 도시 안에서 끝없이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가? 찬란한 빛을 축복으로 받았건만, 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이 있는데, 왜 나는 이 자리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가? 발걸음 닿는 어디든 내 집이 될 수 있는데, 왜 나는 굳이 이 비좁은 공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가?
월세 20만 원을 더 번다고 내 삶이 나아질까?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정말 달라질까?
솔직히,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집은 안정을 주는 공간’이라고 배웠지만, 이곳의 벽은 안전을 약속하는 대신 오히려 내 움직임과 자유를 제한하고, 내 시간과 마음까지 가두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명확했다. 누군가의 집을 나의 집이라 착각하며 사는 삶은 더 이상 원치 않았다. 나는 나만의 집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막연히 꾸던 꿈이 하나 있었다. 나는 '노숙자'가 되고 싶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 겨우 좁은 공간만이 '나의 공간'이라 불리는 현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면 안 되는 곳, 하면 안 되는 일, 돈 있는 사람들이 땅을 사고 세상을 지배하는 구조…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이 낯설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내 꿈속의 노숙은 사회가 정의한 '노숙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규칙과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내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존재, 삶 자체가 곧 움직이는 집이 되는 그런 노숙자였다. 드넓은 자연을 거실 삼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천장 삼아 언제든 나만의 방식으로 숨 쉴 수 있는 자유.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상만 하던 꿈이었다. 그런데 이번 집주인의 전화 한 통이 마치 나를 그 ‘노숙 라이프’로 초대하는 손짓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없는 살림 속에서도 내가 가진 것이 있었다. 승용차 한 대. 나는 멈춰 선 차 안에서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 딱딱한 시트가 침대가 되어준다면, 내 집의 천장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되고, 벽은 아득한 지평선이, 바닥은 멈추지 않는 바퀴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길은 나의 삶 자체가 된다면, 이곳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나의 공간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먼저 차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이 집을 '바퀴 달린 집'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곳이 곧 나의 집이 되는 것이다. 사회가 주는 집과 안정, 규칙과 제약 속에서 허락받은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집, 능동적인 자유를 만들어가는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와 머무는 공간과의 관계는 단순히 거주를 넘어,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거대한 힘을 지닌다. 공간은 사람의 행위와 생각을 지배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일상의 루틴과 선택, 관계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퀴 달린 집은 고정된 장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공간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나만의 특별한 실험이다. 주거와 노동, 이동의 제약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삶을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통해 공간과 삶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자유와 연대, 선택과 책임이 교차하는 새로운 삶의 도구로서 공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작은 바퀴들이 나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갈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