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10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단편소설

by 김태선


“왜 말하지 않으셨을까요?”

“40년입니다. 아내와 함께 산 기간이. 안다고 생각했어요. 아내를 위해서만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쪽의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제가 낯선 곳에 서 있는 거예요. 평생 살았던 곳인데 말입니다. 도쿄도 아내도 내가 모르는 모습이 있었던 거예요.”


그가 아직도 아내에게 화가 나 있을까? 배신감을 느끼는 걸까? 알 수 없다. 하루토가 말했다.

“김 상,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내께서 왜 편지 이야기를 안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너무나 오래 무지했습니다. 이 년 동안 아내가 찾아다녔을 만한 데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면서 만난 재일 한국인을 보며 깨달았어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얽혀 있는데도 저는 그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더라고요. 그건 차라리 괜찮습니다. 제 무의식에는 그들을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나를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서는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인 사실들과 거기에 얽힌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토에게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없다. 부끄러웠다. 민서가 아무 말이 없자 하루토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죽기 6개월 전부터 정말 길을 많이 잃었어요. 아내는 점점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빨리 소진돼서 도움이 안 될 때도 많았어요. 제가 PCB 설계를 해요. 오래 해 온 일이라 내공이 있으니까, 지금은 퇴직하고 계열사에서 기술 조언을 하고 있어요. 아내가 길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회사에 조난구조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요. 일본은 좀 신중해요. 시장조사하고 검토하고 그러는 데 시간이 꽤 걸리죠. 스마트폰이 이미 위치추적이 되는데 시장성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부터, 주파수 문제로 상용화하기 어려울 거라는 의견까지···. 안타까웠어요. 이번 전시회에서 혹시 그런 시제품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없더군요. 그런데 김 상 회사의 기술에 관심이 갔습니다.”


민서는 그의 회사에서 시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낸 제안에 대해 회사에서 검토하거나 실행할 여력이 없다고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장의 실망한 모습, 다시 회사로 돌아가 자금 여력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상하게도 그다지 동요되지 않았다. 하루토 상이 말했다.

“김 상 회사 주소가 인천시 송도국제도시더군요.”

“신제품 개발과 회사 소재지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는 다시 편지 봉투를 꺼내서 민서에게 보여 주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으며 말했다.

“경기도 인천부 본정”

봉투에 한자로 쓰인 주소를 읽었다. 그리고 물었다.

“인천은 어떤 곳인가요?”


오십이 되도록 인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민서는 늘 그렇게 말했다. 도쿄와 인천으로 오간 편지의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편지가 미아로 남은 것을 보면 그들은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멀리 있는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가고 싶어 했을 장소, 오랫동안 편지를 보관한 그의 아내도 인천에 가 보고 싶었을까? 이젠 공항이 있고, 국제도시가 생겼다고 말해야 하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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