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단편소설
전시회장 입구를 나선 사장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건너편 레스토랑 앞에서 하루토 상이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파란색의 브로슈어를 들고 있었는데, 사장의 눈길을 끈 것은 회사의 브로슈어였을 것이다.
“하루토 상인데요.”
민서의 말에 사장이 되물었다.
“저분이 하루토 상인가요?”
“어제 대표님하고 상담했던···.”
“허허, 저도 기억해요. 김 팀장님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셔서요. 전 일본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겠더라고요. 가타카나도 헷갈리고요.”
받은 명함들에는 이름을 가타카나로 표기한 경우가 있어서 사장이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브로슈어에서 눈길을 거둔 하루토 상이 사장을 알아보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장을 보며 다가왔다. 손에는 여전히 브로슈어를 든 채,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야기할 적당한 장소를 찾는 듯했다. 구내식당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편의점이 전부인 것을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두 분 먼저 가 계셔요. 저는 하루토 상 얘기를 들어보고 곧 따라갈게요.”
사장은 선뜻 말해 놓고 얼굴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서툰 일본어로 그를 혼자 상대하기 어렵겠다는데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사장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황을 알아차린 듯, 하루토 상이 말했다.
“아, 함께 나가시던 길이군요.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노인은 뒤돌아 편의점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출구는 같은 방향이지만 먼저 자리를 피해 주려는 듯했다.
회를 먹으며 술이 조금 들어간 사장은 말이 많아졌다. 아직 아기가 어리다는 통역에게 회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사장의 경력 중에는 자랑할 만한 것도 있고, 야망도 컸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지금은 그런 말이 허세로 들렸다. 더구나 회사와 별 상관없는 현지 통역이 그리 공감할 만한 내용도 아니어서 사장의 말이 길어질수록 민서는 점점 불편해졌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간 민서는 명함 상자를 열었다. 하루토 명함을 찾아 회사 이름을 검색했다. 한국 내 판매망이 있는 회사로 디바이스나 전자부품 등 판매 품목이 다양했다. 내일 다시 오겠다던 노인의 흔쾌한 목소리와 달리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얼굴을 떠올리며 민서는 명함을 핸드백에 넣었다.